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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형성하고, 나를 변혁하는 성경 읽기(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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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글 ​윤관

『IVP 성경비평주석 신약』존 M.G. 바클레이, 리처드 보컴, 스캇 맥나이트 지음


* "IVP 독.서.단! Season 7" <나의 비평주석 활용기>에 우수 서평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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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정신은 너무나도 커서 어느 한 세대가 그것을 감당할 수는 없다. 그 언어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가운데 몇 줄을 읽어 그 구절의 뜻에 우리의 영이 스스로 맞아들어 가게 하는 것이다." 

-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사람을 찾는 하느님>(한국기독교연구소) 


성경, 비평 그리고 주석


수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는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으로 성경을 읽는다. 많이 읽혔지만, 여전히 읽히는 책.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침묵을 주고 또 누군가에게는 수다스럽게 말을 건네는 책. 성경 -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만큼 친숙한 성경"(10쪽) - 은 그런 책이다. 


비평은 관찰자의 자세를 요한다. 관찰은 보는 것이다. 오감을 이용해 주의 깊게, 면밀하게 살피는 작업이다. 경고! 익숙함을 경계하라. 익숙함은 관찰자의 주의를 흩뜨린다. 깊은 곳에 담긴 보석 같은 통찰에 우리가 가닿지 못하게 한다. 비평은 익숙함을 경계하는 태도다. 일종의 거리 두기다. "단순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옛 가정들에 대한 신선한 평가"(10쪽)를 시도하는 것, 바로 비평이다.

주석(exegesis)은 이끌어 내는 것이다. 기독교 경전인 성경의 말을 '번역하고', 그 말의 뜻을 '해석하고', 그 말에 담긴 문맥의 의미를 해설하는 작업을 주석이라 한다. 이를 위해 성경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다양한 해석학을 시도한다. 성경 '본문의 이면'과 '본문의 전면'을 다루는 글이 주석이며, 본문의 배경과 본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다루는 글이 곧 주석이다.

 

주석서를 읽을 때 가장 먼저 할 일


<IVP 성경비평주석 신약>은 신약에 대한 비평과 주석을 한 권에 담은 책이다. 1000쪽이 넘는 벽돌 책이라고 지레 겁먹지 말자. 어디까지나 성경에 대한 책일 뿐. 결국 27권의 신약성경 - 사실 27권의 정경 외에 외경에 대한 해설도 추가되어 있다 - 을 가리키는 책이다.

가장 좋은 건 독자가 27권의 신약성경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는 것이겠으나, "우리와 신약의 세계를 구분하는 문화적·연대적 거리"(93쪽)가 상당하니 전문가들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겠다. 어떤 전문가들인지도 참 중요한데, 안심하자. 저자들에 대한 평가가 좋아 보인다. "걸출한 학자들", "성경 각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신학적으로 균형 잡힌 학자들", "세계적 학자인 제임스 던이 편집하고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집필한 (하략)". 이 정도면 안심하고 저자들을 믿고 따라가 봐도 좋겠다.

차례를 살펴보자. 신약성경 각 권이 차례에 자리 잡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그 외 여섯 꼭지의 글이다. '전승사: 신약성경'(35쪽), '신약 전승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71쪽), '복음서 개론'(98쪽), '신약 서신서'(584쪽), '신약 외경'(1100쪽), '사해 두루마리와 신약성경'(1106쪽). 이 글들은 책을 더욱 빛나게 해 주는 신 스틸러이자 신약 전체를 조망하게 하고, 큰 그림을 그리게 하는 호루스의 눈과 같은 글이다.

나는 이 책을 받고서 먼저 여섯 꼭지의 글에 소중히 인덱스 스티커를 붙였다. 다른 글보다 먼저 이 여섯 꼭지의 글을 차례로 읽고 숙지하기 위함이었다. 학부 시절 신학교에서 배운 신약성서개론, 신약연구개론 수업보다 더 알찬 내용이 오밀조밀하게 적혀 있었다.

신약 전승사를 살아 있는 역사로 전제하고 신약의 토대 전승의 핵심과 골자는 유지하되 전승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동성을 받아들이는 제임스 던의 글을 통해서는, 신약학 대가가 어떻게 신약 전승사를 정리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증해 나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우리와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쓰인 신약 텍스트와의 시공간을 좁혀 가는 다양한 해석학적 접근을 정리한 조엘 그린의 글도 좋았다. 차례를 보면 알겠지만, 본 주석서의 장점은 신약성경 각 권에 대한 주석을 각 권 전문가들이 나누어 썼다는 점과 제임스 던이라는 신약학 대가가 주석의 짜임새를 위해 편집과 총괄을 맡았다는 점이다.

<IVP 성경비평주석 신약>에서 이 여섯 꼭지의 글을 가장 먼저 읽어 본다면, 신약성경 전체에 대한 조망은 물론 이 책의 기획 의도, 이 책이 주석 작업을 통해 의도하는 방향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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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용기: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음은 주석 사용기다. 주석서는 정독보다 발췌독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어떤 이는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본문을 만날 경우 그 부분을 찾아보기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본문에 대한 주석을 찾아보는 경우가 있겠다. 나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본 주석서를 다음과 같이 활용했다.

12월 6일은 교회력 나해, 대림절 둘째 주일이었다. 교회력에 따른 설교 본문은 마가복음 1장 1-8절, 베드로후서 3장 8-15절, 이사야 40장 1-11절이다. 먼저 본문을 읽는다 본문을 읽을 때는 여러 번역본을 참고해 본다. 개역개정성경, 새번역성경, 현대인의성경, 메시지성경, 다양한 번역본을 의식적으로 비교한다기보다는 내용 파악을 위해 쭉 읽다 보면 본문이 대강 파악된다. 이 작업은 설교할 본문을 우선 눈으로 익히고, 내용을 파악하는 예비 단계 정도라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은 본문에 대한 주석을 살펴본다. 자, 이제 때가 되었다. <IVP 성경비평주석 신약>을 집어 들자. 먼저 마가복음 1장 1-8절을 살펴보자. 시간이 있다면 98쪽의 '복음서 개론'을 읽으며 복음서가 어떤 책인지, 복음서 연구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 각 복음서 특징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좋겠다.

229쪽의 '마가복음'을 보자. 서론 부분은 마가복음과 다른 복음서들의 관계, 마가복음은 어떤 책인지, 마가복음 작성 연대와 이유에 대한 내용이다. 이 부분만큼은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한다. 설교하고자 하는 본문이 담긴 그 책에 대한 전체 내용과 저자의 신학을 알아야 본문을 해석할 때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읽었다면 1장 1-8절 부분을 본다. 마가복음 도입부에 대한 설명이 보인다.


"이렇게 마가복음 도입부는 예수님의 사역, 죽음, 부활을 구약성경과, 또 예언자와 순교자로 널리 인정받는 세례 요한이라는 대중적 인물의 사역과 연결시킨다. 요한은 자신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나타남이 그 선언을 성취한다." (233쪽)


설교할 본문이 마가복음의 도입부, '복음'의 시작에 대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제목이 달린 마가복음에 대한 설명이다.



"예수님 사역에 대한 이야기 전체가 세상을 위한 '좋은 소식'임을 전한다. 이는 구약의 이사야 40장을 인용한 마가의 의도에서 알 수 있듯,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로마제국을 겨냥하는 표현이다. '좋은 소식'이라는 표현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기원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마가의 표현(특히, '시작', '좋은 소식', '하나님의 아들')은 신적 황제에 관한 로마의 교리를 의도적으로 되풀이한 것이다. (중략) 실제로 마가복음 저자는 로마 세계를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황제는 세상을 위한 좋은 소식의 시작도 아니고 신의 아들도 아니다. 메시아 예수님이 그러한 분이다. 이렇게 마가복음의 서두는 제국 제의에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233쪽)


여기까지 읽었을 때, 느낌이 온다. 대림절은 예수를 기다리는 교회 절기다. 성탄절에 오신 예수를, 마라나타! 이 땅에 오실 예수를 기다리는 교회 절기가 대림절이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다. 예수를 기다리는 이에게 좋은 소식이다. 대림절에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는 제국이 신으로 추앙하는 메시아들과는 다른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우리는 이 예수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베드로후서 본문 주석을 읽는다. 마찬가지로 이사야서 주석도 읽는다. 이 두 번째 작업은 내용 파악 수준을 넘어 본문의 의미와 본문이 위치한 성경의 맥락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메모를 해야 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세 번째 단계는 대림절이라는 교회력의 맥락하에 3개의 본문을 연결 짓는 작업이다. 이때 주 본문을 정하고 나머지 두 본문과의 연결성을 찾는데, 내가 선택한 주 본문은 마가복음이다. 대림절은 기다리는 절기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예수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이에게 좋은 소식이란 "예수가 마침내 온다"는 소식이며, 그 예수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식이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그 기다림의 시작에 세례 요한이 있다. 그는 이사야 40장 예언에 부합하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는 자이다. 기다림의 모범이다. 기다림의 모범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다. 기다리는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대림절, 우리는 예수를 어떻게 기다릴 것인가? 회개이다. 주 본문에서 주 내용이 나왔다. 베드로후서 본문은 임박한 주님의 날을 이야기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언제 그때가 올지 아무도 모른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주님은 곧 오신다. 회개하며 기다리자.

마지막 단계는 지금까지 연구한 본문 내용을 바탕으로 설교 개요를 잡고 설교문을 작성한다.



이 책의 세 가지 장점


본 주석서의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약 본문이 속한 책의 신학과 큰 그림을 주지하게 해 준다. 맥락이 중요하다. 현대인의 입장을 신약성경에 섣불리 일대일로 대응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꼼꼼히 살펴보면 각 "성경 저자가 신학과 윤리 문제에 직접 참여했던 과정"(93쪽)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문자적으로 성경을 적용하는 것을 넘어 성경 저자의 눈을 우리 눈에 이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은 있지만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은가. 상당한 시공간의 벽을 넘어 신약 텍스트가 어떻게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우리 시대를 변혁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은 계속 제기되어야 한다. 설교라는 장르가 이러한 도전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때, 이 책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둘째, 개인 성경 연구 또는 신학 공부에 아주 유용하다. 제임스 던이 첫 번째 글에서 주지하는바, 성경의 저자는 단순한 수집가를 넘어 편집자이고, 또 편집자를 넘어 한 사람의 신학자이다. 성경 저자의 신학을 이해하는 작업이 성경 연구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각 저자들이 토대 전승을 각자의 상황에서 구전으로든 기록으로든 재진술하며 초대교회 공동체에 이어진 ①케리그마 ②예전 ③윤리에 대한 신약 텍스트의 신학을 이해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은 이러한 신학에 대한 풍부한 설명과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주의 깊게 읽는다면 신약성경에 대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셋째, 발췌독을 하기 전에 앞서 열거한 여섯 꼭지에 대한 글은 꼭 정독했으면 좋겠다. 실력 있는 주류 신약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꼭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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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성경이다

성경이 나를 형성하고, 나를 변혁하기를 바란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집어 든다. 지적 만족을 얻기 이전에,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에 성경 '덕후'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성경의 내용을 많이 안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각 성경 저자가 어떻게 토대 전승을 각자의 신학과 윤리 문제에 적용하고 녹여 냈는지 '그 과정'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 마가보다 더 마가스럽게, 바울보다 더 바울스럽게 성경을 읽자. 적어도 <IVP 성경 비평 주석 신약>에는 이러한 노력이 담겨 있다. 그래서 단권이지만 묵직하다. 성경을 읽을 때 옆에 두고 오래도록 볼 책이 생겼다.





윤관

삶을 사랑하려고 애쓴다. 전주강림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



*이 글은 뉴스앤조이(2020년 12월 9일)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IVP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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