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헨리에게(브레네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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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사진 위키미디어)
친애하는 헨리에게
당신은 모든 편지를 감사의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며 용감하게 살았고, 일상 안에서 신성한 것을 찾아 보여 주었으며, 다른 이들과 이어지기 원하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욕구를 거룩하게 만드는 데 헌신했습니다. 당신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책의 추천 서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주저 없이 동의했어요. 제가 관대해서 그랬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믿음의 위기를 겪어 왔습니다. 추천 서문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받고 답장을 눌러 그러겠다고 한 것은 저의 이기적인 절박함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당신이라면 영적 사막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내 상태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받은 뒤 몇 주 동안 원고를 펼쳐 보지 못하는 모순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표지만 힐끗 보아도 불안을 느끼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신의 글과 나의 필요가 만나는 상황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출간 시점이 얼마 남지 않고 ‘최후의 마감 시간’이 닥치고서야 당신의 편지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두려움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랑의 속성이 그렇듯, 당신의 편지들은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너그러웠고, 맹렬하면서도 부드러웠으며, 철저한 용서와 절제된 책임성을 동시에 촉구했습니다. 당신의 모든 편지 하나하나에서 믿음을 놓고 벌이는 저의 분투와 하나님을 생생하게 발견하자, 두려움은 서서히 소망으로 녹아들었습니다.
이 글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초고는 ‘연약함 연구자’인 저의 자아가 쓴 학술 논문 같았다고나 할까요? 과연 이 서간집에 걸맞은 글을 써낼 역량이 제게 있는지 의심스러워지던 터라 그런 형식이 안전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연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신과 이어지고 싶었지요. 당신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써낸 단절된 분석을 좋아할 것 같지 않습니다. 살아 계셨다면 저의 두려움을 꿰뚫어 보셨을 것 같군요. 당신처럼 저도 “약한 자들과 더불어 저의 약함을 드러내며 살고” 싶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도 지쳤습니다. 외로움과 중압감에 시달리고, 저를 괴롭히는 악령들을 분석하고 다른 것들로 그것들을 상쇄하려고 애쓰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외면한 채 말이지요. 당신은 여러 번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하셨지요. 후자는 더 간단하지만 훨씬 어렵고 경청과 시간이라는 두 가지 헌신을 요구한다고 말입니다.
이 편지들의 주제를 따로 분석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편지에서 나타나는 주요 패턴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속속들이 연구자인 저로서는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귀를 기울이라. 둘째, 하나님이 중심 되는 시간을 확보하라. 소재와 주제는 다양하지만, 당신은 거의 모든 편지에서 우리에게 경청, 기도, 고독, 묵상과 사색의 시간을 내라고 촉구합니다.
당신이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알지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이지요. 기도할 시간이 없어요. 편지 쓸 시간이 없어요.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어요. 하나님과 이어질 시간이 없어요. 당신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밖에 안 되었건만, 그 20년 사이에 시간을 내기가 정말 힘들어졌습니다. 지금은 이메일이 있어요. 스마트폰이 있고요. 문자 메시지도 있지요. 우리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일정 관리 앱으로 일정을 짭니다.
경청도 쉽지 않은 일이 되었어요. 당신은 우리보다 더 조용한 곳에서 살았습니다. 당신이 수도원에서 보낸 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세상은 예전보다 훨씬 더 시끄러워졌어요. 다들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소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이상 서로에게 귀 기울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위험한 일인 줄 알지만 자기 보호의 조치이기도 합니다. 고요한 묵상은 많은 이에게 불안을 안겨 줍니다. 묵상은 예리한 분별을 요구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고 경청하지도 않다 보니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 서로와 함께 있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쓰셨어요.
“우리는 사랑이 우리에게 닿을 수 있는 현재에 살아야 합니다.”
당신의 편지에서 이 조언을 읽었을 때, 저는 울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종교, 인종, 성별, 지향, 계급과 국가라는 온갖 잘못된 구분을 넘어 우리 모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바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에 가닿고, 사랑의 영향을 받을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 편지들을 통해 당신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훨씬 급진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것은 불편하고 엉망진창이지만 전심을 다한 용기를 의미할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내어야 하고 경청해야 합니다.
제게 물으셨지요. 하나님과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 심지어 아무리 고통스러운 경험일지라도 인간이 가진 가장 귀하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인 시간을 내놓을 의향이 있느냐고. 저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러겠습니다. 시간을 내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랑을 위해. 묵상을 위해. 신비를 위해. 정의를 위해. 그리고 고통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위해.
당신은 이렇게도 물으셨습니다. 침묵과 기도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지혜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을 계속할 것이냐고. 도움이 필요할 테고 저의 훈련은 불완전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 일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겠습니다.
저도 당신이 편지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이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당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믿음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저를 계속 끌어올려 주세요. 그리고 헨리, 답장은 쓰실 필요 없습니다. 시대를 초월한 당신의 글과 사랑의 정신은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을 고요한 기도이니까요.
사랑을 담아, 브레네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
16년 동안 용기, 취약성, 수치심, 공감 등 현대인이 겪는 감정의 근원을 연구해 온 심리 전문가로 현재 휴스턴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주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출간한 『불완전함의 선물』, 『진정한 나로 살아갈 용기』, 『마음가면』, 『라이징 스트롱』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작가에 세 차례 선정됐다. 또한 TED 강연 “취약성의 힘”은 3,0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TED 인기 강연 탑 5위에 들어갔다.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과 학교, 정부와 관공서에서 가장 인기 높은 명강사이자 교육자로 활동 중이며 브레네 브라운 교육 연구 그룹(Brené Brown Education and Research Group)을 운영하고 있다.
*본 글은 <사랑을 담아, 헨리>에 실린 추천 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