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헨리 나우웬(홍종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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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종락
책 『사랑을 담아, 헨리』헨리 나우웬 지음
내가 몰랐던 헨리 나우웬
사람들이 싫어할 만하고 싫어할 수밖에 없는 여자를 분별력 있고 교양 있는 남자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그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그녀 안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 없는지 찾아보게 되고 그러다 가끔은 그것을 발견하기도 할 것입니다.
-C. S. 루이스 『오독: 문학비평의 실험』 중에서
루이스는 내가 신통찮게 생각했던 책이라도 누군가가 거듭거듭 읽고 평생 사랑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그 책에 대한 자신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위의 비유를 든다. 절묘한 비유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말 그렇겠다 싶다. 하물며 수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고 ‘인생 책’ 운운하는 책을 다수 쓴 작가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헨리 나우웬 이야기다. 나는 그를 신통찮은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내게 그는 참 안 읽히는 작가였다. 『영적 발돋움』, 『탕자의 귀향』 같은, 사람들이 주옥같은 작품들로 손꼽는 책들을 나는 끝까지 읽지 못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내 삶의 깊이가 부족하고 인생의 쓴맛을 모르며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런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도 이유 없이 안 맞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안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냥 현실이다. 받아들이면 된다. 굳이 그걸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을 통해 볼 수 있는 빛, 배울 수 있는 교훈, 다가갈 수 있는 세상을 접할 기회는 놓치게 된다. 헨리 나우웬 너무 좋다는 사람 많이 봤고, 어떤 번역자는 출판사에 따로 연락해 읍소해서 번역을 맡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런 작가의 메시지를 놓치는 것은 너무 큰 손실이 아닐까. 혹시 그동안 내게 그렇게 안 맞았던, 그야말로 오히려 내게 부족한 것을 채워 줄 수 있는 작가가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서간집 번역을 덥석 맡겠다고 했다.
당연히 저자를 잘 아는 사람이 번역을 맡는 것이 좋다. 특히 편지는 더 그렇다. 어떤 사람인지 캐릭터를 잡아야 하고 서신 교환 상대와의 관계를 파악해야 하니까. C. S. 루이스의 서간집 『당신의 벗, 루이스』의 경우, 루이스를 어느 정도 알았기에 부담없이 편하게 번역했다. 그런데 나우웬은 내가 잘 몰랐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가 처음부터 저자를 잘 알고 번역을 맡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번역을 맡은 김에 배우고 알아가는 것이다. 공부하면서 번역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전기 『상처 입은 예언자, 헨리 나우웬』을 읽고 번역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가 쓴 책도 읽어 나갔다. 전기도 읽고 번역도 하면서 그에 대한 이해가 쌓여 가자 그의 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의 조언과 격려가 내 귀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이 사람 괜찮은데.’
전기로 만난 헨리 나우웬은 대단히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마음을 잘 헤아리는 것이리라. 그래서 편지에서는 너무 감상적이고 마냥 듣기 좋은 말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1982년 10월 30일자 편지를 보자.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을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지 아닌지 끊임없이 분별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해. 그것은 우리가 하는 일을 판단할 아주 중요한 기준이야. 사실, 유용하고 유일한 기준이지! 일단 이 기준에 따라 살아가고 일하면 사람들이 자네를 비판하거나 분노나 적개심을 보인다 해도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거네. 하나님의 말씀은 종종 사람들을 갈라놓는 검이 되지. 하지만 그 말씀이 없으면 세상은 평화를 발견할 수 없어.” 이 말은 어떤가. “감정을 믿지 마세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믿으세요.” 그가 감정을 존중하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드러낸다.
이 서간집에서 내 마음을 결정적으로 사로잡은 구절은 1982년 5월 13일자 편지에 나온다. 그는 자기 책을 읽고 달라지지 않았다는 독자의 편지를 받고 이렇게 답장을 쓴다. “제 책을 읽고 달라지지 못했다고요?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에요. 그 책을 쓴 저도 변하지 않았는걸요. 삶에서 중요한 것은 변하는 것보다 주님과 교제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 이 사람 괜찮은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상대화할 줄 아는 ‘쿨한’ 사람이 여기 있었다. 나우웬에게는 책을 쓰는 것이 ‘주님과 교제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였겠고, 독자도 그렇게 하루하루 주님과 교제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보탬이 된다고 믿고 꾸역꾸역 책을 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동일한 소원을 품게 되었다. 내가 번역하는 책들도 그렇게 쓰이면 좋겠다 하는.
그의 편지에는 헨리 나우웬의 매력이 압축적으로, 훨씬 친근하게 담겨 있다. 그의 적절하고 통찰력 있고 관심과 애정이 듬뿍 담긴 답장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편지에서 그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 그는 무엇보다 예수님께 집중하라고 거듭해서 조언한다. 예수님 중심의 영성. 이 부분이 가톨릭 신부인 그가 개신교인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매력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기도를 더없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하지만 기도가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아니, 기도가 대신해 주지 않으나 기도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것을 잘 드러내 주는 것도 인상 깊다.
차이점도 확인하다
대학 시절, 동아리 지도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미국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얘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목사님이 가톨릭이라면 무조건 질색을 하니 교수님이 가톨릭 신자가 쓴 어떤 글을 줬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대단히 복음적이었다나. 그분의 결론. 가톨릭은 그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대단히 복음적인 입장의 사람들부터 완전히 미신 신봉자처럼 느껴지는 이들까지 아우른다고. 따라서 그가 말하는 내용을 봐야 한다고.
헨리 나우웬이 연옥(죄인이 벌을 받는 곳이 아니라 정화의 장소라 해도), 마리아에게 바치는 기도(그가 말하는 것이 우리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청하듯 기도를 청하는 것이라 해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에 대해 밝힌 입장들 그리고 죽음 이후에 망자의 영이 친지와 함께한다는 말 등은 가톨릭 사제 나우웬과 개신교 신자들의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아닌가 한다.
가톨릭 사제의 가르침이 개신교 신자들에게 모두 수용 가능한 것일 리는 없다.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 부분은 자신이 속한 교파와 교단의 가르침을 지침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헨리 나우웬은 개신교도가 조직신학이나 정통 교리를 정리할 요량으로 집어 드는 작가는 아니다. 그건 번지수를 잘못 찾은 선택이겠다. 사람의 마음, 그 외로움, 불안을 깊이 헤아려 줄 멘토를 찾는 사람, 자신의 삶에 영적 깊이를 더하고픈 갈증을 가진 사람이 헨리 나우웬을 찾을 것이고 그에게서 섬세함과 열정을 겸비한 영적 상담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끝으로, 그의 동성애적 입장에 대해 말해 보자. 헨리 나우웬은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힘든 싸움을 계속하면서 가톨릭 독신 사제인 자신의 소명에 끝까지 충실했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오히려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고 그것을 승화시킨 그의 분투에 찬사를 보내고 그런 삶을 가능하게 만든 은혜를 찬양할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필립 얀시의 『그들이 나를 살렸네』(포이에마) 528-536쪽을 참고하길 바란다.] 그러나 몇몇 편지에서 다른 동성애자 커플, 또는 동성애 관계에 대해 보여 주는 그의 태도는 또 다른 문제일 텐데, 분별과 취사선택이 필요한 부분이지 싶다.
헨리 나우웬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내 생각과 입장, 내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등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헨리 나우웬의 편지를 읽는 것도 그렇다. 그 속에서 내 모습을 보게 되고, 나의 심정을 알아줄 것 같은 사람을 만난다. 그가 가진 매력의 핵심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홍종락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해비타트에서 간사로 일했다. 2001년 후반부터 현재까지 아내와 한 팀을 이루어 번역가로 일하고 있으며, 번역하며 배운 내용을 자기 글로 풀어낼 궁리를 하며 산다. 저서로 《오리지널 에필로그》, 《나니아 나라를 찾아서》(정영훈 공저)가 있으며 역서로는 《당신의 벗, 루이스》, 《순례자의 귀향》, 《피고석의 하나님》 외 많은 책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