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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하나님의 임재와 담대함, 리더십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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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와 담대함, 리더십의 핵심(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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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리더십

 

강하고 담대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과 어디를 가든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1:9)을 들은 여호수아는 마치 그 권고와 약속에 힘을 얻은 듯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한다. 2-9절과 마찬가지로 10-18절도 모두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2-9절이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반면, 10-18절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다(10-11; 12-15; 16-18). 이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사용되기도 하고 가깝게는 1장 전반부의 하나님의 명령도 반복된다(17-18; 5, 7, 9절 비교).

 

지파들 간의 하나 됨과 여호수아의 첫 번째 리더십 발휘가 이 단락의 중요한 주제다. 먼저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직접 명령하지 않고 백성의 관리들을 통해 요단을 건널 준비를 하라고 명한다. 이어서 그는 요단을 건너지 않고 자신들의 기업을 확보했던 르우벤, , 므낫세 반 지파들에게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의 싸움에 함께하라고 명한다. 이 지파들의 경우 모세의 리더십 아래 요단 동편의 땅을 얻었다. , 어떤 면에서는 그들은 모세의 사람들이며 여호수아와는 관계가 많지 않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직접적 이익이 없고 오히려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여호수아의 명령에 그들 또한 온전히 따르겠다고 대답한다. 모세와 함께 계셨던 하나님(17), 그리고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여호수아(18), 1-9절의 두 주제가 1장 마지막에서도 여호수아 리더십의 핵심 요소로 다시금 강조된다.

 

개역성경 10절 맨 처음에 등장하는 이에또는 공동번역의 그리하여라는 표현은 번역자의 해석이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앞 절과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밝히는 접속사가 없다. 문자적으로는 그리고 여호수아가 명령하였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리더십 발휘를 앞에 나오는 본문의 명령과 약속과 연관 지어 이해하는 번역자의 해석은 적절해 보인다. 1:2-9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이제는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한다.​1) 백성들에게 직접 명하지 않고 관리들을 통해 앞의 일을 준비시키는 것은 리더십의 과도기적 성격과 백성들의 규모를 고려해 볼 때 지혜로운 처사로 보인다.​2)

 


선교와 소유

 

여호수아가 여호와에게서 받은 첫 명령은 일어나 건너라였다(1:2). ‘건너라는 명령은 여호수아가 관리들에게 한 첫 명령 두루 다니[]”(1:11)다니라’(아바르)와 같은 동사다. 이제 이 동사가 관리들이 백성들에게 해야 하는 말에도 등장한다(“요단을 건너’”). 요컨대 여호수아 1장에서 건너는’(아바르) 행위는 중요하다.​3)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아바르를 명하시고, 여호수아도 관리들에게 아바르를 명하고,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아바르를 명한다.

 

여호수아서는 경계를 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경계를 넘을 때 많은 일이 생긴다. 충돌도 하고 적응도 한다. 무엇보다 경계 넘어가기가 선교의 본질이기에​4)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선교 현장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벌어질 충돌과 적응 속에 이스라엘은 어떤 선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여호수아서의 전쟁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호수아서의 이야기를 선교의 이야기로 읽을 때,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정복주의적 선교관을 가지게 된다. 선교의 이름으로 혐오와 충돌이 정당화 되며 혐오스런 이교도를 전쟁으로 멸하고 우월한 신앙적 문화를 심는 것이 선교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경계를 넘어 성육신하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선교의 핵심이라면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그곳에서도 하나님 백성다움을 지켜 내는 것이 그들의 선교다.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 때 다름 아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드러나기 때문이다.​5) 그렇기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치를 전쟁이 있다면 그것의 본질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하나님 백성다움을 지키는 싸움이며 이것이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여호수아가 율법책을 주야로 묵상하고 지켜 행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소유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 백성다움이 드러나는 중요한 주제다. 11절에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사” “차지하게하는 땅으로 묘사된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통해)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땅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분명하다. 이러한 소유의 이중적 성격 때문에 그것은 내 것이야!”라는 선언은 소유권에 대한 최종 판단 기준이 아니다(14, 21장 설명 참고). 모든 것의 궁극적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선물로 누리고 있을 뿐이다. 소유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 백성다움의 중요한 지표이며 이런 점에서 땅은 영적 온도계이다.​6)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선물을 누리기에 합당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을 때 땅을 잃어버린 역사는 이 사실을 웅변한다.

 


하나 됨의 약속

 

12-15절은 여호수아가 요단 동편에 기업을 얻었던 르우벤, ,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한 말이다.​7) 개역성경은 번역자가 12절에 라는 부사를 넣긴 했지만​8) 지파들의 이름이 맨 앞에 나오는 히브리어 본문의 특징을 나름 잘 드러낸다(영어 번역본들을 참고하라). 11절에서 아직 기업을 얻지 못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명령과 12절 이하에서 이미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지파들을 향한 요청이 비교된다(NIV는 접속사 ‘But’으로 12절을 시작함으로써 이러한 비교를 조금 더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11절에서는 명령하다라는 동사가 쓰인 반면, 12절은 말하다라는 동사가 쓰였다. 지금 우리는 처지가 다른 두 집단을 보고 있다. 한 집단은 이미 얻을 것을 얻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더 큰 공동체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다른 지파들의 분투에 함께해야 한다. 개별 지파는 이스라엘 전체를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각 지파는 모두 형제이기 때문이다(14-15).

 

이러한 원리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교단과 교파를 넘어, 지역과 전통을 넘어, 한 하나님의 백성이 있을 뿐이다. 다양한 신앙 전통이 실재하는 현실 속에서 이 하나 됨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키고 실천하는지는 매우 어려운 숙제다. 그러나 그 숙제가 어렵다고 근본 원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의 몸과 성령과 소망과 주와 믿음과 세례가 모두 하나이고 만물을 다스리시고 만물을 통해 일하시며 만물 안에 계신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우리의 존재와 생각과 행위에는 이러한 하나 됨이 속속들이 배어 있[]” 또한 배어 있어야 한다(4:4-6).​9)


이 상황의 배경은 민수기 32장에 잘 나온다. 요단 동편에 이미 기업을 얻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처음에는 요단강을 건너지 않게 해 달라고 모세에게 부탁했다(5). 하지만 모세는 가네스바네아에서 정탐꾼들의 부정적 보고로 이스라엘이 낙심하고 그 때문에 그 한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서 방황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그 부탁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자 그들은 비록 자신의 약한 자들은 요단 동편에 남기겠으나 무장한 자들은 나머지 지파들과 함께 요단을 건너 가나안 정복을 돕겠다고 제안하고 모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15-24). 이것이 1:14에서 여호수아가 요구한 내용의 배경이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이 한 약속을 지켜야 할 때가 왔다. 다른 형제들 보다 앞서건너가야 하는 것도 사실 그들이 원래 한 약속이었다(32:17).

 

여호수아의 요청을 요단 동편 지파들이 기꺼이 받아들인다.​10)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하겠다는 이 지파들의 결의는 먼저 16절에서 당신우리의 대구를 통해 표현된다. ‘당신의 명령을 우리가 행할 것이고, ‘당신이 보내는 곳에 우리가 갈 것이다. 17절에서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비교되면서 순종의 결의가 드러난다. 이들은 모세에게 순종했던 대로 여호수아에게 순종하겠다고 말한다. 이들의 굳센 결의는 모든을 뜻하는 히브리어 의 반복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한글 성경은 이 단어를 여러 표현으로 번역했다. 16[‘행할 것이요,​11) 보내시는 모든(개역개정에는 모든이 번역되지 않았다)]에 그 단어가 나오며, 17(‘범사에’), 18[(‘누구든지’, ‘무릇’(개역개정에는 무릇이 번역되지 않았다))이 반영되어 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의 대답에는 1:5, 7, 9에 나왔던 하나님의 약속와 명령이 반복해서 나온다. 앞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것들을 이번에는 여호수아에게 순종을 약속하고 있는 사람들이 말한다. 그만큼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여호수아의 강하고 담대함은 중요하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데 이 두 가지가 결정적으로 필요하다.

 


함께 누리는 쉼

 

한편, 여호수아가 하는 말 중에 안식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여호수아 1:15와 더불어 신명기 3:20, 12:10, 25:19 등은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시고 평안히 거주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보여 준다(“너희가 요단을 건너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 12:10). 우선 여기 쓰인 안식하게 하다혹은 안식을 주다’(. ‘누아흐의 사역형)라는 동사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하셨던 것을 묘사하는 동사(. ‘샤바트’)는 아니다. 본문에 쓰인 동사는 창세기 2:15에서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셨다는 표현에 사용된 동사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 동산에 두신 목적은 경작하고 지키게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실 안식또는 은 할 일이 없는 무위의 상태가 아니라 안전함 속에 자리를 잡고 경작하고 지키는 것을 함의한다. 전쟁으로부터는 쉴 수 있겠지만, 그들의 일상은 여전히 의미 있게 계속될 것이다. 참된 안식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안, 강요, 배타주의, 과중한 일을 통해 휘둘러지는 일의 가짜 신성을 거부하는 것이다.​12)


안식일 계명에는 샤바트누아흐가 함께 쓰이기도 한다. 신명기 5:14에서 공동체의 모든 일원을 안식하게 하라는 명령에 쓰인 동사가 누아흐의 사역형이다. 안식의 의의를 알기 위해 안식일 계명을 살펴보면, 안식일 계명은 함께 쉼을 누려야 하는 공동체의 범위를 종과 손님뿐 아니라 소와 나귀를 포함해 가축에게까지 확대한다(20:10, 5:14). 안식의 보편적 인도주의(universal humanitarianism)라는 특징이 여호수아서에 본격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런 안식의 특징을 여호수아서를 읽으면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자신들이 누리게 된 쉼을 다른 형제들도 누릴 수 있을 때까지 함께해야 한다. 이것을 안식이 보편적으로 누려져야 한다는 사실의 구체적 적용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일과 쉼, 두 가지 모두 공동체라면 함께 누려야 할 복이다.



*주

1) 관리라고 번역된 분사 쇼타르는 어떤 일을 지도하거나 감독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일반 용어로 이스라엘의 조직과 관련해서는 장로들(11:16; 31:28),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1:15), 재판장(16:18), 전쟁 지휘관들(20:5, 8, 9)과 유사한 지위로 나타난다. 이는 매우 높은 지위는 아니면서 적절한 인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여호수아가 백성의 관리들에게 한 명령에 대해 그 관리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또한 백성에게 관리들이 전달한 명령에 대해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본문에 나타나 있지 않다. 이것은 이어서 나오는 요단 동편에 기업을 나온 지파들의 반응이 기록된 사실과 대조적이다. 11절에 명령된 실제적 준비보다 이스라엘 지파들의 하나됨과 모세의 지도력 아래 있던 지파들이 여호수아의 지도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 중요한 주제임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3) 김지찬, 요단강에서 바벨론 물가까지(생명의 말씀사), 62.

4) 크리스토퍼 라이트, 신명기(성서유니온선교회), 26.

5) 전성민, 세계관적 설교(성서유니온선교회), 233-234.

6) 크리스토퍼 라이트, 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초판; IVP, 1989), 72. 라이트는 확대개정판에서는 영적 온도계” (spiritual thermometer) 대신 언약상의 측정기” (covenantal measuring gaug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라이트,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개정판; IVP, 2006), 131.

7) 므낫세 반 지파라는 표현이 사용된 이유는 므낫세 지파의 반 수는 요단 동편에, 나머지 반은 요단을 건넌 지역에 기업을 받았기 때문이다(참고. 14:2-3).

8) 새번역과 공동번역에는 에 해당하는 번역어가 없다.

9) 유진 피터슨, 메시지번역.

10) 16절의 그들을 일반 백성들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요단 동편 지파들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더 어울린다.

11) (“명령하신 모든것을 행할 것이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12) 부르그만, 안식일은 저항이다(복있는사람).

IVP 2019-07-19 조회5,3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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