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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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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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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지도자, 진정한 주인

 

여호수아서는 한 시대의 끝을 알리며 시작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경계를 넘어 시작되며 그 경계 너머의 새로운 무대 위에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모세의 죽음과 함께 출애굽과 광야 시대는 막을 내린다. 애굽을 떠나 광야의 시절을 보낸 이스라엘은 이제 요단강이라는 경계를 넘어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그곳에서 가나안 문화라는 새로운 상황 가운데 놓인다.

 

여호수아라는 이름이 헬라어로 예수님과 동일한 예수스라는 사실로 인해 교부 크리소스톰은 여호수아를 모세로 상징되는 율법 시대의 끝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의 시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예표적 인물로 이해했다. 그러나 여호와는 여전히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행하라고 강조하신다(1:7) 실제로 본문은 모세가 죽었다고 과거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향력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상황에 놓일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말씀하시며(1:1), 하나님의 임재 또한 계속된다는 사실이다(1:5). 더불어 모세를 통해 주어진 가르침(율법, ‘토라’)에 대한 순종이 여전히 요구된다(1:7-8).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시대와 세대를 넘어 지속적 순종을 강조하며 시작한다. 여호수아서 전체 또한 지속적 순종의 결과를 보여 주며, 그 중요성은 여호수아서 마지막에 다시금 강조된다(23-24).

 

여호수아서의 첫 시작에서 모세는 여호와의 종으로,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로 소개된다. ‘여호와의 종이라는 표현은 신명기 34:5에 모세를 묘사하기 위해 처음 등장한다. 그 후 이 표현은 여호수아서 전체에 걸쳐 열다섯 번 등장한다(1:1, 13, 15; 8:31, 33; 11:12; 12:6×2; 13:8; 14:7; 18:7; 22:2, 4, 5; 24:29). 이 중 맨 마지막 절을 제외하고 여호와의 종은 모두 모세를 가리킨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였다. 모세가 아론과 훌과 더불어 산꼭대기에 올라가 아말렉과 치른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여호수아는 그 전투에서 직접 싸웠다(17:8이하). 또한 모세가 여호와께서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하신 돌판을 받으러 하나님의 산에 올라간 후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실 때 여호수아만 모세와 함께 있었다(24:12이하). 모세가 진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호수아는 회막에 남아 있었다(33:11). 모세의 노래를 같이 전한 사람도 여호수아(호세아)였다(32:44). 이러한 과정 가운데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로 자연스럽게 자랐다. 그런데 이렇게 모세의 수종자라고 소개되는 여호수아가 책에 맨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여호와의 종으로 묘사된다(24:29; 참고. 2:8). 이런 점에서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라는 인물이 모세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리더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1에서 내레이터가 모세를 여호와의 종이라고 묘사한 것이 타당했음이 2절에서 분명해진다. 여호와 또한 모세를 자신의 종(“내 종 모세”)이라고 칭하신다. 여호와가 하신 첫마디는 모세의 죽음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진술에서 이어지는 여호와의 명령은 어떤 면에선 예상 밖이다. (히브리어의 어순을 따르자면 모세의 죽음에 관한 진술 바로 다음에 이제 일어나 건너라라는 명령이 이어진다.) 지도자가 죽었다면, 그것도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가 죽었다면 그를 따르던 자들은 의기소침해질 수 있다. 또한 나아갈 바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에게 일어나 건너라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비록 모세는 죽었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2절 후반부는 여호수아와 이 모든 백성”(2)이 요단을 건너 들어가야 하는 곳이 어떤 땅인지 설명한다. 무엇보다 이 땅은 여호와께서 주신 땅이다.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가는 것을 읽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들이 주도하지 않는다. 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정복하는 것 같지만, 땅은 근본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아무 노력 없이 얻는 땅이라면 그것이 선물이라는 사실은 인정하기 쉽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얻는 땅은 그것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하기 어렵다. 땅뿐 아니다. 복권 당첨금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매일 나의 노동의 대가로 받은 월급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소유하게 되었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2절과 3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주었[]”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온다. 3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에 쓰인 동사 밟다’(다라크)는 미완료형이다. 반면 동사 주다’(나탄)는 흥미롭게도 완료형이다. 둘 다 미래형으로 밟는 곳을 줄 것이다라고 표현하거나, 둘 다 과거형으로 밟은 곳을 주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더 자연스러울 것이다.​1) 그러나 본문은 밟는 곳을 주었다라고 서로 다른 시제로 번역될 만한 형태들을 사용했다. 이러한 어색한 문법은 독자의 주목을 끌며,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복 과정에 대해 의미 있는 메세지를 던진다.

 

사람들에겐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미래에 존재한다(“밟는 곳”). 그런데 그 미래의 행동의 결과로 주어질 어떤 것은 하나님에 관점에 따르면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주었다”). “이미 그러나 아직의 역설이 이 본문에서도 어느 정도 나타나는 셈이다. 이러한 역설은 4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에 언급된 영토가 솔로몬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 들어온다는 사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강하고 담대하라,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

 

2-4절 말씀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동체적으로 주어졌다면 (3절과 4절에 쓰인 너희에 주목하라), 5-9절 말씀은 여호수아 개인에게 주어졌다. 5절에는 여호와를 지칭하는 1인칭 대명사 내가와 여호수아를 지칭하는 2인칭 대명사 너와/너를이 함께 나오는 문장이 반복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니”. (개역성경에는 목적어 너를이 한 번 나오지만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명시적으로 반복된다.) 5절의 약속 다음에야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명령이 나온다(6). 7절과 9절에 다시 나올 만큼 매우 중요한 강하고 담대하라는 도전적 명령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 이후에 주어졌다.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의 용기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다.

 

개역개정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6절의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 뒤에 접속사 왜냐하면’()이 사용되고 다음 내용이 이어진다.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백성들로 하여금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강하고 담대하라. 왜냐하면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할 것이 때문이다”). 이미 여호와께서는 땅을 주겠다고 맹세하셨지만 그것을 실제로 백성들이 차지하게 만들 사람은 여호수아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7절에서도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명령이 주어진다. 6절과 명령의 내용은 같지만 7절에는 오직극히라는 부사들이 추가되어 명령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6절에서는 명령 다음에 나오는 이유가 과거에 하나님이 하신 맹세와 관련이 있는 반면, 7절에서는 명령의 목적이 미래지향적이다. 앞으로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 행하기 위해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명령은 9절에 또 다시 등장한다. 9절에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두 개의 부정 명령이 함께 나온 후, 항상 함께 하시는 여호와의 현재적 임재를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한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세 번이나 등장하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은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차원 모두에 근거와 이유가 있다. 과거를 돌아보아도, 미래를 내다보아도, 그리고 지금 현재를 살펴보아도, 강하고 담대해야 할 이유들이 여호수아를 둘러싸고 있다. 성 패트릭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Christ with me, Christ before me, Christ behind me, Christ in me, Christ beneath me, Christ above me, Christ on my right, Christ on my left.” 우리는 그리스도에 둘러싸여 있고 그렇기에 오늘도 용기를 낸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들(6, 7, 9) 사이에 율법책을 주야로묵상하여다 지켜 행하라는 당부가 나온다(8). 율법책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만을 적어 둔 규정 모음집이 아니다. ‘율법책은 히브리어 토라를 번역한 말이다. 이 단어와 ‘(화살을) 쏘다라는 의미의 동사 야롸는 어원이 같다. ‘토라는 삶의 방향과 관련이 있는 가르침이다. 하나님의 법은 행동을 고착시키지 않고 삶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제시한다. ‘묵상하다라고 번역된 동사 하가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은 개가 뼈다귀에 푹 빠져 그것을 뜯어먹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을 씹고 삼키는 것이 묵상이라고 말한다.​2) 묵상을 통해 씹고 삼킨 말씀만이 우리 삶을 순종으로 이끄는 에너지가 된다. 그럴 때 우리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에 어울리게 살 수 있다. 이것이 묵상의 힘이다.



*주

1) 완료형과 미완료형이 항상 각각 과거와 미래 사건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또한 각 동사형의 차이가 시제(tense)와 관련되어 있는지 시상(aspect)과 관련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자세한 논의는 WOC 29장을 보라.

2) 유진 피터슨, 이 책을 먹으라(IVP), 19-22.

IVP 2019-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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