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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여호수아,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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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P 홈페이지 개편을 맞아 출간 전 연재가 시작됩니다. 성경이 쓰인 시대의 맥락 속에서 해석하면서도 독자들의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는 ‘IVP 특강 시리즈’의 새로운 기대작, 『특강 여호수아』가 올해 하반기에 출간됩니다. 연재에 앞서 저자 인터뷰를 서면으로 진행하였는데요. 인터뷰는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기대를 채울 뿐 아니라, 이 책의 바탕에 흐르는 세계관적 성경 읽기에 대한 저자의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전성민 교수님의 『특강 여호수아』연재를 통해 성경을 깊고도 새롭게 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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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전성민이라고 합니다. 저는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에서 세계관과 구약학을 가르치며 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대학 졸업 후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에서 성경언어와 구약학을 공부하고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구약 내러티브의 윤리적 읽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의 신학대학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 다른 분들과 함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를 만들었고, (VIEW로 일터를 옮긴 후) 지금은 초빙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몇몇 기독 운동 단체들의 이름이 제 아이디어였는데요. 기독노래운동 뜨인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느헤미야의 첫 팟캐스트였던 에고에이미 등의 이름을 제가 만들었습니다. 예전부터 사진에 관심이 있었는데, 2018년 가을부터는 본격적으로 인스타그램에 하루에 사진 한 장씩을 올리고 있습니다 (instragram.com/otethics). 덕분에 주변 사물이나 풍경을 세심히 관찰하는 좋은 습관이 생겼습니다. 보드게임에 관심이 많아 영국 유학 시절, 지역 카탄 대회에 참가한 적도 있습니다. 그 시절엔 보드게임 창작을 해도 꽤나 즐겁겠다 싶었지만, 요즘은 어딜 가든 어떤 사진을 찍으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전공인 구약 윤리와 더불어 평신도 신학, 세계관적 성경 읽기와 설교, 미션얼 운동의 구약적 토대, 성서학과 과학의 관계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덕분에 “과학과 신앙에 대한 101가지 질문” 시리즈에도 등장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쓴 책으로는 학위 논문을 출판한 Ethics and Biblical Narrative(OUP), 『사사기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세계관적 설교』(성서유니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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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여호수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위가 별 다르지는 않습니다. 박사과정에서 연구한 책이 열왕기였기에 한국의 신학교에서 열왕기가 들어가 있는 역사서를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여호수아서도 강의하게 되었고, 「생명의 삶 플러스」라는 전문 묵상지에 여호수아 주해를 기고하면서 강의안을 좀더 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를 공부하게 된 동기는 별다르지 않지만, 여호수아를 살피고 강의하면 할 수록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특히 제가 전공한 구약 윤리와 여호수아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를 읽으면 가나안 민족을 가리지 말고 진멸하는 이야기를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매우 첨예한 문제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저는 『특강 여호수아』에서 본문의 원래 의미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이러한 현대의 윤리적 문제들과 여호수아서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중한 논의를 시도해 보고자 합니다. 

『특강 여호수아』를 집필하시면서 염두에 두고 있는, 이 책만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여호수아서를 잘못 읽는 방식을 경계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여호수아서는 에스라/느헤미야와 더불어 인종주의적 그리고 폭력적으로 읽기 가장 쉬운 책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인종적 이유로 편애하시고 무조건 그들 편을 드시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승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자리에 자신을 놓고 동일한 방식으로 여호수아서를 읽습니다. 물론 여호수아서는 정복과 승리에 관한 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에는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보편적 정의가 놓여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호수아서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여리고성 정복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아이성에서 패배한 사건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여호수아서에 시작해서 열왕기로 끝나는 첫 번째 이스라엘의 역사 서술은 실패의 역사를 말합니다(두 번째 역사 서술은 역대기-에스라/느헤미야입니다). 이 역사를 잘 보시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로 시작해 그 땅에서 쫓겨나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여호수아서는 이렇게 실패한 역사의 시작으로 볼 때, 성경 전체의 메시지와 잘 어울릴 수 있으며 여호수아서에 대한 인종주의적 오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세계관적 성경 읽기와 여호수아서가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먼저 세계관적 성경 읽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얼마 전 출간한 『세계관적 설교』(제목 때문에 목회자들을 위한 책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모든 분을 위해 설교의 형식으로 세계관의 여러 주제를 쉽게 풀어 쓴 책입니다)에서 설명했습니다만, 짧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먼저 성경을 읽을 때, 원래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된 고대의 세계관(서술된 세계관)과 그들에게 규범으로 제시된 세계관(규범적 세계관)을 구별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성경을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성경해석학의 기초에 해당하는 이야기인데요. 성경의 원래 독자였던 고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세계관도 역사적 배경의 요소로 고려한다는 말입니다. 서술된 세계관과 규범적 세계관을 구별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성경의 진짜 메시지를 놓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 2장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주되심을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이 고백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늘, 땅, 땅 아래를 언급하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포함해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대의 세계관은 규범적 힘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빌립보서의 이 말씀을 믿는다고 해서, 현재 우리가 고대 사람들이 지녔던 삼중 우주관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온 세상, 온 우주의 모든 존재가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계관적 성경 읽기의 두 번째 특징은 성경 본문에 담긴 세계관적 주제들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입니다. 저는 세계관적 주제들을 크게 창조, 일상, 공공 이렇게 세 가지로 묶어 보고 싶은데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우리 일상의 모든 것이 신앙의 주제이며, 또한 그것은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요일 예배당에서 벌어지는 일뿐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구체적인 사적 삶과 공적 삶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신앙과 관련됩니다. 

그리고 세계관적 성경 읽기는 우리 세계관의 변화를 추구하는 성경 읽기입니다. 단지 몇몇 개별적 행동의 변화는 성경을 읽는 목적이 아니지요. 성경은 우리의 사고방식 전체, 가치관, 세계관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사실 이것이 ‘회개’의 진정한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세계관적 변화의 몇몇 구체적 모습들을 나누고 싶은데요.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나아갈 바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성뿐 아니라 욕망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중심이 아니라 경계 너머의 삶의 자리에서 배제와 혐오의 율법이 아닌 포용과 환대의 복음을 살아 낼 수 있는 세계관, 곧 대결이 아닌 대화의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관심이 교회뿐 아니라 온 인류와 창조 세계라는 사실을, 그래서 교회의 부흥을 넘어 인류과 창조 세계의 번영을 꿈꾸어야 합니다. 

짧게 이야기한다고 해 놓고 세계관적 성경 읽기 자체에 대한 설명이 좀 길어졌는데요. 여호수아 읽기가 이런 세계관적 성경 읽기와 어떻게 만날까요? 전쟁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서를 읽으며 고민하게 되는 윤리적 문제들을 서술된 세계관과 규범적 세계관의 구별을 통해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규범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지요. 여호수아서를 읽을 때, 우리는 성도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적용을 넘어, 성경 읽기가 일반 세상에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전쟁 이야기를 개인의 사적 신앙의 영적 분투에 대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여호수아서를 너무나 좁게 읽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에 대해 여호수아서를 읽으며 통찰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통찰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와야 되겠지요. 

아직 책을 다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거창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 없이 여호수아서를 읽는 것은 너무나 맥이 빠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무엇보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태도를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저는 제 성경 읽기의 중요한 특징이 ‘본문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만일 제 책을 읽으시다가 기존 해석과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 해석이 얼마나 본문 자체를 공정하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익숙한 선입견들 때문에 본문의 여러 요소를 놓치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만일 그 본문의 요소들을 공정하게 다룰 때, 그동안 놓쳤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는 않은지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텍스트가 콘텍스트를 만날 때, 본문이 주는 메시지에 대한 새로운 조망이 생기지는 않는지도 고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외 제가 시도해 보려는 여호수아서의 윤리적 읽기, 세계관적 읽기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서가 승리의 책이 아니라 순종의 책, 편협한 사랑이 아닌 보편적 정의를 다룬 책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추후 연구 활동이나 집필 계획이 있으신지요? 

이 책을 쓰게 되면 역사서 중에서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 대한 책을 쓰게 됩니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사무엘서와 열왕기, 그리고 역사서는 아니지만 룻기와 에스겔, 에스라도 집필하기로 했는데요, 그 약속들을 빨리 잘 지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좋은 제안이 오면 그것을 덥썩 받아 버려서 벌려 놓은 프로젝트들이 적지 않네요. 신앙과 과학의 사례 연구, 특히 창조 과학에 대한 성경 해석에 대한 비평을 통해 설명하는 책도 구상 중입니다. 전공인 구약 윤리에 대한 한국적 논의를 담은 책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틀로 이해해 온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을 그 틀은 가급적 존중하면서도 우리가 놓쳤던 부분들을 채우며 새롭게 돌아보는 책도 조만간 써야 할 듯하고요.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존 바튼 교수님의 중요한 책들 몇 권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글을 쓰는 일도 계속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올해 Spiritual Formation in Global Context 라는 책에서 구약과 영성 형성에 대해 한 챕터를 쓰기로 했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의 세습 문제에 대한 구약 해석학과 윤리적 논의를 담은 글도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 “세계관적 성경 읽기”라는 꼭지를 「매일성경-순」이라는 묵상지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언제 이 프로젝트들을 다 마칠 수 있을지 기약은 없지만, 하나씩 잘 마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IVP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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