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인터뷰

『성서학자가 신학자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 역자 인터뷰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링크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본문

“한집에 살지만, 대화가 없는 부부” “서로를 미워하기를 즐기는 형제자매” “분리된 부족.” 이는 신간 『성서학자가 신학자에게 바라는 다섯 가지』의 추천사에서 성서학과 조직신학의 관계를 비유하는 이미지들이다. “신학자와 성서학자의 대화” 시리즈는 신학의 이 두 분과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통합적으로 연구하기를 장려하고자 기획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스캇 맥나이트는 성서학자로서 신학자들을 향해 다섯 가지의 제안을 남긴다. 이 제안이 무엇인지 한국의 독자들도 자유롭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우리말로 이 책을 옮긴이가 있다. 바로 신약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정은찬 박사다. 독자들이 이 책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스캇 맥나이트의 치밀한 논증을 먼저 접한 정은찬 박사에게 질문지를 보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은찬 박사의 인터뷰를 비롯해 다양한 독자들의 의견을 더하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분명 신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더욱 풍성한 독서가 될 것이다.



daef684981b09b23314656cfe28ccafa_1671774105_99.png
 


Q. 한 권의 책을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옮기는 일은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일 것 같습니다. 번역을 업으로 하지 않으심에도 이 책의 번역을 요청받으셨을 때 수락하신 계기가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책의 출간된 지금, 감회가 어떠신지도 궁금합니다.



원래부터 전문 번역가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좋은 번역은 저자와 독자 둘 모두를 존중해야 나오는 것 같아요. 저자의 문체와 의도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글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 때문에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제 부족한 실력을 편집자분들(양지영 간사님과 설요한 간사님)이 많이 채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에게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물론 번역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모두 제 책임입니다.


 이 책을 번역해 달라고 의뢰받았을 때 ‘전문 번역가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씀드렸는데, 어느 순간 제 손에 책이 들려 있었고, 책과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의 기획을 듣는 순간 ‘매력적인 책’일 거라 직감했습니다. 오늘날에 이 기획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왜 진작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했습니다. 신학은 역사적 필요성 때문에 다양한 분과로 나뉘었지만, 여전히 각 분과는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이 읽으시고 이 주제에 관해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토론이 계속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신학 각 분과가 서로 대화해야 할 필요를 알려 주는 것이지, 이 주제에 대한 ‘완전한 설명’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다양하고 새롭고 유익한 대화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고생한 보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말 나온 김에 이 주제로 콘퍼런스라도 한 번 열어 볼까요?





Q1. 성서학자와 신학자를 분리하는 이 책의 기획이 생소한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박영호 목사님은 추천사에서 “서구의 성서학자들은 자신을 신학자보다는 역사가 혹은 문헌학자로 여긴다”라고 밝히기도 하셨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평신도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성서학과 조직신학의 관계에 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성서학의 모습이 변해 왔을 뿐 아니라 사람마다 생각이 다양하기 때문에 쉽게 답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어떤 성서학자들은 자신을 말 그대로 ‘역사가’로 생각하고, 어떤 이들은 ‘역사가 그 이상’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히 자신을 ‘성서신학자’로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저 성서학자들은 그러한 각각의 입장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성경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합니다. 이건 국내도 국외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시대에는 이런 다양한 입장과 방식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습니다. 성서학은 역사적으로 방법론적 측면에서 ‘역사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몇 가지 사실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선 성경은 2천 년 전에 쓰인 문서이기에 역사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역사적’이라는 말은 ‘역사적 재구성’을 의미하기도, ‘역사적 해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객관적’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특정 신학 전통이나 개인의 선입견이 지나치게 성서 해석에 개입되지 않는 것이 좋은 해석이라는 시대의 요구와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신학적 질문’이나 ‘믿음의 눈’도 되도록 배제하고 백지상태에서 성서를 해석해야 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역사학의 방법론이나 해석학이 많이 변했고, 이에 부합하여 성서학도 ‘역사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성서 해석’ 그 이상을 추구합니다. 또 각자의 선입견이 성서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정합니다. 더 나아가 ‘역사’ ‘객관’ ‘진리’에 관한 상당히 새로운 시선을 모두가 갖게 되었습니다.


 성서학과 조직신학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둘의 기본적인 성향이 다릅니다. 성서학은 ‘통시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조직신학은 ‘공시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말은 성서학이 공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조직신학이 통시성을 무시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무엇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의 차이죠. 두 분과 사이의 여러 갈등이 근본적으로 여기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역사가와 이론가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유와 비슷합니다. 이론가는 시간을 넘나드는 ‘원리’ ‘설명’ ‘이론’을 제시하려 하고, 역사가는 시공간에 메인 특수한 인간, 사회, 문화를 존중합니다.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우리는 당연히 둘 모두가 필요합니다. 물과 기름, 이 둘을 사용해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이 요즘 시대의 성서학자들과 조직신학자들의 사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Q2. 스캇 맥나이트가 신학자들에게 제안하는 다섯 가지의 내용이 무언가요? 전체적인 흐름을 짚으면서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스캇 맥나이트는 책을 구성하면서 서론부터 결론까지 소위 ‘빌드-업’(build-up)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섯 가지 내용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각각이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서로가 서로를 보충합니다. 이 구조를 잘 파악하는 게 이 책을 잘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내용과 동시에 전체적인 흐름을 물어보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첫 번째 장에서는 가장 기초가 되는 신학의 두 가지 경향성을 다룹니다. 하나는 성경으로 회귀하려는 경향, 다른 하나는 성경에서부터 확장하려는 경향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둘을 통합하여 회귀와 확장을 반복하는 모델을 제시합니다. 이후의 장들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 이 모델을 적용하여 신학에 접근하는 시도를 합니다. 


 두 번째 장은 성경에서 확장된 ‘신학’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나머지 장들은 역사적으로 연구된 성경, 성경 안의 서사, 윤리에 대한 성경의 강조가 확장된 (조직)신학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1장에서 제시한 통합 모델처럼 회귀와 확장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스캇 맥나이트는 조직신학에 성서학 연구, 성경 서사에 대한 고려, 윤리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필요함을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이는 구체적인 지점들에서 성경으로 회귀하는 게 신학에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Q3. 다섯 가지의 제안이 있지만, 이 책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장이 스캇 맥나이트가 결국 하고자 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서론부터 차근차근 독자들을 설득해 왔다고 생각되고요. 전통적으로 보면, 조직신학자들은 보통 모든 시간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정합성 있는 ‘이론’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이론들은 몇 가지 주제 곧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교회 등을 다룹니다. 스캇 맥나이트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성경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종의 ‘서사’를 제시하는 것이지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4장). 창조부터 종말로 이어지는 이야기 말이죠. 여기에는 등장인물이 있고, 이야기의 플롯이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다윗왕의 이야기, 기드온의 이야기,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의 독특성과 역동성을 조직신학이 담아내지 못했다는 문제를 제기합니다. 아예 ‘서사’라는 틀을 가지고 조직신학 책을 구성해 보라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보통 조직신학 책에서 ‘윤리’라는 주제는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고 마는 주제라는 점을 지적합니다(5장). 저자는 윤리가 성경의 중심에 있고 신학과 매우 밀접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신학과 윤리는 샴쌍둥이 같은 존재라는 것이죠. 그러니 ‘신론’도, ‘종말론’도, ‘기독론’ 등도 결국 윤리와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핵심인 ‘서사’나 ‘윤리’가 조직신학에서는 찬밥 신세라고 스캇 맥나이트는 느끼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더 중요하게 여겨서 성경으로 다시 회귀하는 운동을 한다면, 서사와 윤리도 조직신학에서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Q4. 정은찬 박사님 또한 한 명의 성서학자로서 스캇 맥나이트의 생각에 동의하는 혹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것은 어느 지점들일까요? 



제 생각이 어제와 오늘이 여전히 똑같다면, 게으름을 부린다고 스스로 느낄 겁니다. 과거의 저와도 이렇게 결별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겠어요. 스캇 맥나이트의 주장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당연히 여러 면에서 생각이 다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장 “신학은 역사에 기반한 성서학을 알아야 한다” 부분이 확장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신약학 중심의 전문적인 이야기를 줄이고, 조직신학에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연구들을 조금 더 가볍게 소개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주제에 대한 가장 최근의 성서학 연구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직신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제안한다면 더 좋을 것 같고요.


 그 외의 장에 담긴 스캇 맥나이트의 신선한 제안은 흥미롭고 설득력도 있지만, 저라면 출발점을 조금 다르게 가져갔을 것 같아요. 이런 조직신학자와 성서학자의 대화는 서로가 어떤 면에서, 왜 다른지를 더 깊이 다루고 이런 차이를 인정하면서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신학은 성서학과 다릅니다. 그 차이를 존중하는 방법은 정확히 그 차이를 아는 데서 시작되거든요. 둘이 서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흐름과 이제 둘의 통합이 필요해진 시대적 요구를 함께 다루면 더 좋고요. 진정한 대화의 시작은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요?





Q5.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은 무엇일까요? 또 이 책을 이렇게 활용하면 유익할 거라는 제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 책은 신학생과 학자들 모두를 대상으로 쓰였습니다. 실제로 그 두 그룹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특별히 신학을 진지하게 연구하고자 하는 신학생에게는 자신이 어떤 분과에 더 적합한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달라서, 분명히 각자에게 어울리는 신학 내 분과도 다양합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성서학이 어울리고, 이론과 체계적인 설명을 좋아한다면 조직신학이, 교실 밖에서의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실천신학이 어울립니다. 


더 나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분과가 있다고 해서 그것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들 겁니다. 특히 목회를 목표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조직신학, 실천신학, 성서학, 역사신학, 기독교 윤리학과 기독교 교육까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성서학 혹은 조직신학을 아무리 좋아해도, 다른 분과도 함께 공부해야 할 실제적인 필요성이 느껴질 겁니다.


 이 책이 연구자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화두를 이 시대에 던져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나뉜 채로 각자 연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서로 대화를 시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말이죠. 만약 분과 간의 대화가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그 대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해 나가야 할 겁니다. 만약 그리 유익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면, 아직 때가 아닌 거고요. 저부터 이 주제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분명히 있습니다.



정은찬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영국 더럼 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하여 석사(M.A.)와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존 바클레이 교수의 지도 아래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와 고린도 교회를 비교한 박사 논문을 썼으며, 이 논문은 독일 학술 출판사 De Gruyter에서 BZNW 시리즈로 출간되었다(A Tale of Two Churches: Distinctive Social and Economic Dynamics at Thessalonica and Corinth). 또한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에 데살로니가 교회 구성원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연구한 소논문 “Paul’s Letter to Free(d) Casual Workers”를 게재했고, “Reciprocity and High Resilience Against Economic Fluctuations”는 Novum Testamentum에 실릴 예정이다.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치고 있다.
 
IVP 2022-12-23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