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위한 원리와 자유(고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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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상섭
책 『말씀 아래서 드리는 예배』D. A. 카슨, 팀 켈러, 마크 애슈턴, 켄트 휴즈 지음
예배를 위한 신학적 비전
우리가 ‘예배’를 즐기는지 아닌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물음이 우리의 합당한 반응을 규정할 것이다. (p. 38)
『말씀 아래서 드리는 예배』는 예배에 대한 성경적 고찰, 역사적 전통, 오늘날 문화 속 적용을 망라하여 장로교, 침례교, 성공회의 예배 원리와 실재를 담은 책이다. 다양한 예배의 성경적 원리, 전통, 실재를 비교해 볼 수 있고, 각 예배의 다양성과 공통점을 통해 오늘 우리 교회에서 시행하는 예배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신학교 교수 D. A. 카슨, 성공회 사제 마크 애슈턴과 C. J. 데이비스, 침례교와 자유 교회를 대표하는 켄트 휴즈, 개혁주의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팀 켈러가 썼다. D. A. 카슨이 ‘말씀 아래서 드리는 예배’라는 원리를 이야기하고 나머지 저자들이 각각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어떻게 예배하는지 설명한다. 각 전통의 예배는 서로 차이가 있지만, 서로 다른 전통을 이야기함에도 성경 아래서 하나가 되는 예배의 공통점이 더 돋보인다. 마치 삼위일체의 다양성 안에서의 연합이 하나됨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처럼, 이 책의 구성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성경적 예배의 12가지 스펙트럼: D. A. 카슨
D. A. 카슨은 철저한 성경신학자답게 예배 연구에서 주의해야 할 신학적 연구 방법론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예배라는 단어는 성경 곳곳에 등장한다. 그래서 예배가 등장하는 구절을 통해 하나의 신학과 원리를 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는 것보다도 예배를 정의하기가 더 어렵다.
성경 안에서 예배를 말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우리가 예배라는 말을 사용할 때 뜻하는 바와 다른 무언가를 의미할 때가 있다. 결국 단순히 단어를 연구해서는 예배를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으로 접근하기에도 어려움이 있다. 조직신학적 접근을 하려면 예배에 대한 옛 언약이 새 언약으로 성취된 성경 신학적 이해가 뒤따라야 하며, 예배와 관련하여 성경에 제시된 차이점을 고찰하지 않은 채 성경 전체를 읽으려 한다면 최소한의 공통분모만을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D. A. 카슨은 로버트 셰이퍼(Robert Shaper)가 내린 예배의 정의를 길게 설명하고서, 예배의 정의에 포함된 열두 요소를 통해 성경적 예배의 원리를 제시한다. 열두 요소를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도덕적이고 감각 있는 모든 존재의 합당한 반응’이다. 예배는 ‘합당한 반응’이기에 인간을 위한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예배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합당한 반응으로서의 예배가 우선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키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D. A. 카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예배’를 즐기는지 아닌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물음이 우리의 합당한 반응을 규정할 것이다. (p. 38)
'합당한’ 예배는 단순히 인간의 즐거움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넘치는 예배다.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는 예배의 대상 때문이다. 예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르게 아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의 일하심, 그분의 성품과 일하심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야가 확장되는 찬양과 설교가 필요하다.
또한 카슨은 단순히 공적 예배만이 아니라 공적 예배가 삶의 예배로 이어지는 윤리를 강조한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다음 올바로 살라는 가르침은 따로 떨어진 두 가르침이 아니라 바르게 예배하면 바른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인간은 누구인지를 고루 보여 준다.
참된 예배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반영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공적 예배로, 예배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 아래서 드리는 예배다.
성경과 균형과 이해를 추구하는 예배: 마크 애슈턴, C. J. 데이비스
성공회 사제를 역임한 마크 애슈턴은 이 책 2장에서, 토머스 크랜머의 『성공회 기도서』를 중심으로 예배를 설명한다. 크랜머는 16세기에 라틴어로 이루어진 복잡한 예배를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바꾼 인물이다. 애슈턴이 보기에 크랜머의 『성공회 기도서』는 혁신적 예배의 모범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회 기도서』보다 더 폭넓은 기도서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새롭게 나온 『대안 예식서』는 이전의 가치를 훼손하는 듯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래서 애슈턴은 크랜머의 정신을 따라 오늘날 성공회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인 예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슈턴은 크랜머의 기도서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세 가지, 곧 성경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균형 잡혀 있는 것을 앞으로의 예배에 접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크랜머가 제시한 예배의 구조는 성경 신학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예배 시작 부분에 죄 고백을 배치하는 것도 우리가 죄인됨에서 해방된 복음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 가운데 기쁜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크랜머의 위대한 성취는 성경적 진리를 보통 사람들 가까이 가져온 것이다. 그는 예배에 사용되는 모호함을 단순성과 명료성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크랜머는 균형을 강조했다. 실용적인 예배와 역사적 전통을 함께 구현하려고 애썼다. 이런 세 가지 균형을 가지고 마크 애슈턴은 예배의 다양성, 구조, 음악사용, 기도, 드라마와 간증, 예배 인도와 광고와 손님 초청 예배에까지 다양하게 적용해서 상세히 설명한다.
애슈턴은 어느 순간 활력을 잃은 영국 성공회의 예배가 크랜머의 전통을 통해 다시 회복되기를 촉구한다. 성공회의 예배 순서를 따라하지 않더라도, 크랜머가 고민했던 성경적이고 실용적이며 균형을 이룬다는 세 원리는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크 애슈턴은 전통적 예배의 원리를 오늘날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 그 생생한 예를 보여 준다.
질서 안에서 누리는 자유가 있는 예배: 켄트 휴즈
켄트 휴즈는 자유 교회 소속이며, 자유 교회는 17세기 영국에서 『성공회 기도서』를 사용하라는 교권에 저항하면서 시작되었기에 성공회 기도서에 대해 비판적이다. 아울러 자유 교회의 개혁이 이제는 실용주의로 변질되었다고 분석하며 진정한 예배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유 교회 예배의 자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자유가 아니라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되었다. (p. 203)
휴즈는 성경 중심으로 시작된 자유 교회의 예배가 실용주의로 변질된 것은 찰스 피니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혼 추수를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 부흥이 일어났기 때문에 공동 예배가 ‘준비운동 후 부흥회 메시지’를 듣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설교도 본문 중심이 아니라 즉흥적 연설로 대치되었다.
이런 운동은 결국 주일 공동예배와 주중 예배의 삶이 동일하다는 가르침으로 이어졌다. 휴즈는 예배가 주일에 국한되지 않지만 삶의 예배의 근간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함께 모이는 주일 예배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나는 삶 전체가 예배지만,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모이는 예배가 삶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공동 예배를 통해 예배의 삶을 알게 하시고 그것을 고양하고자 하신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어떻게 모이는 예배를 드리는지를 삶과 죽음의 문제로 본다. (p. 195)
그는 기독교 예배의 특징을 여섯 가지로 규정하면서 변하지 않는 예배의 핵심을 제공한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이다. 이것은 인간 중심과 반대되는 말이다. 그는 사람의 기분에 맞춰 설교 시간과 내용이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둘째,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그는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찬양하며 설교하는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를 소개한다. 셋째. 예배는 말씀 중심적이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신다. 넷째, 예배는 성별이다. 거룩한 공동체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의 삶 또한 예배자의 삶이 된다. 다섯째, 예배는 온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단순한 감정(emotion)으로 예배를 드리는 게 아니라,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정감(affection)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섯째, 예배는 경건해야 한다. 예배가 극장의 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하지만,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로 여기는 참된 경건과 경외도 있어야 한다.
또한 휴즈는 음악 사용에서도 신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음악은 예배에 꼭 필요한 요소지만 음악이 경건을 흐려서는 안 된다. 그는 예배가 음악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예배를 높이는 것임을 강조한다.
성경과 전통과 문화가 결합된 예배: 팀 켈러
이 책을 가장 빛나게 하는 부분은 팀 켈러의 글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예배의 문제와 장점을 하나로 정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켈러는 전통을 고수하는 예배와 현대적 예배 사이의 예배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첨예한 갈등 가운데서 성경적이고 전통적이며 문화적으로 상황화된 예배를 소개한다.
켈러는 개혁주의 장로교 목사로서 개혁주의 안에 있는 두 예배 전통을 소개한다. 하나는 츠빙글리로부터 나온 예전, 음악, 회중 참여가 전혀 없는 설교자의 가르침과 기도에 초점을 맞춘 예배, 또 하나는 칼뱅이 고안한 예배의 전통으로 예전, 음악, 회중 참여가 더 많이 포함된 예배 전통이다.
츠빙글리의 접근 방식은 청교도 예배의 모판이 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표준문서를 통해 자유 교회 예배를 통해 표현되었고, 칼뱅의 접근 방식은 초기 기독교 전통에 더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다. 켈러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에 적합하면서도 성경적인 예배는 츠빙글리보다 칼뱅의 예배라고 말한다. 포스트모던 세대들은 초월과 경험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칼뱅의 예배가 경의와 경외를 성경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칼뱅의 예배 접근 방식에서 가장 탁월한 지점은 성경에서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예배의 규정에 대한 원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고 말하지만 어떤 음악을 사용하는지, 어떻게 진행하는지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칼뱅은 구체적인 예배 환경을 결정하는 문제에서 어떻게 할지 고민될 때 전적으로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성경이 말하는 명확한 지점에서는 순종해야 하지만 성경이 말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사랑을 선택했다.
켈러는 예배를 정의하기를 “그분 자체가 아름다움이신 하나님으로 감동을 받아 행하는 순종 행위”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배의 시작은 언제나 아름다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또한 그는 예배가 인간의 반응이면서 공동 예배 이후의 삶까지도 우리의 예배임을 이야기한다.
예배란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 인간의 노력과 공로로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아무런 공로와 대가 없이 주어지는 은총에서 출발한다. 중세의 공동 예배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복을 내리시게 하는 수단으로 성례전을 수행했다면, 칼뱅은 행함으로써의 예배가 아니라 은총으로부터의 예배를 강조했다.
켈러는 칼뱅이 말한 예배의 특징을 두 가지, 즉 단순성과 초월성으로 설명한다. 단순성은 복잡하고 화려한 것을 통해 사람의 이목을 사로잡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음악이나 과도한 호소로 청중의 감정을 조작하지 않고 진리에 집중하게 하는 예배의 형태다. 진리 자체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정감(Affection)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단순한 예배는 불신자가 하나님을 경험하기에도 효과적이다. 초월성은 하나님의 얼굴과 마주하는 경험이다. 예배의 목표는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임재를 알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다. 말씀과 함께,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지성에 빛을 비추어 인격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을 향한 좋은 정서란 죽은 것이며 야만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바르게 감동을 받고 지성에 빛이 비쳤을 때 성령으로부터 시작되는 생기 있는 움직임이다. (p. 294)
또한 팀 켈러는 초월성을 경험하는 방법이 단순성에 있다고 말한다. 말하기, 읽기, 기도하기, 노래하기의 질적 수준이 높을수록 청중들은 초월을 바라볼 수 있다. 어설픈 예배는 수직적 차원을 즉각 없애 버린다. 종교개혁 시대 가톨릭은 복잡한 음악과 전문적인 음악 연주만을 추구했다면 그 반대 급부인 재세례파는 세속적 음악을 피하고 무반주의 회중 찬양을 선택했다. 전문성이 덜할수록 덜 세속적이고 영적으로 순수해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칼뱅은 전문 연주자들이 회중을 공동체가 아니라 청중으로 만들 수 있음을 우려해서 찬양대나 독창자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예술적 탁월성을 엘리트주의라고 보는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탁월성을 기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회중을 잘 훈련된 찬양대로 만들고자 했다. 탁월성은 우리의 마음을 초월적인 것을 향해 고양함으로 수직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단순성으로 초월성을 경험하는 방법은, 인도자의 태도와 마음이 기쁨과 외경심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초월성이 잘 전달되는 것이다. 이때 회중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 들어간다고 느낄 것이다.
『말씀 아래서 드리는 예배』에서는 다양한 저자가 자신의 신학적 배경 안에서 예배를 설명하지만, 이들은 모두 ‘말씀’이라는 근거와 ‘예배’라는 본질에 충실해서 글을 전개한다. 다양한 교파와 교단의 예배를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눈에 띈다. 어떻게 하면 성경적이면서도 현시대에 맞는 예배를 고안할 수 있는가? 이들의 논의는 교리와 사역 현장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예배를 위해 신학적 비전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아울러 목회를 하면서 다양한 선택의 순간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지 좋은 모범이 된다.
목회자는 신학자이자 현장 사역자다. 두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는 사람으로서 더 신학적이며 더 목회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코로나가 촉발한 예배 논란이 불거진 지금 시점에 이 책이 꼭 필요하다. 신학적 성찰과 현실적 적실성을 고민하는 사람 모두를 공감시킬 것이다.
고상섭
영남신학대학교와 합동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그사랑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CTC코리아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주변으로부터 ‘팀 켈러 연구가’로 불릴 만큼 팀 켈러와 그의 사역에 흠뻑 빠져 있다. 그 이유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팀 켈러의 저서들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가장 귀한 복음을 도시와 문화 속에 상황화하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하고 한국 교회에 GCM(복음 도시 운동)을 소개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