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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게 내 정체성이 있다(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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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민희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제임스 휴스턴, 옌스 치머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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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역사 속에 나타난 기독교적 자아의 원천들



몇 년 전 읽은 한 배우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그는 10년이 훌쩍 넘게 무명으로 지내다가, 20001의 경쟁을 뚫고 영화 오디션에 통과했다. 주인공 배역을 맡았고, 마침 그 영화가 그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진출했으며, 배우는 레드카펫을 밟고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덕분에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성장 배경, 촬영 에피소드, 포부 등을 들려줬다. 기사의 중간을 지나도록 특별할 것 없는,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배우가 할 법한 이야기들이어서 처음에는 영화에 대한 정보나 얻을 심산으로 읽어 나갔다. 그러다 마지막에 그는 가만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말을 던졌다. “아내는 내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내 정체성이 있다.”1)


배우 꿈을 이룰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 준 큰 지원군으로 치켜세우거나 가장 친한 친구 또는 길잡이로 소개했어도 그 배우에게 아내가 차지하는 주요 의미가 바뀌지 않고 전달됐을 것이다. 즉 자기가 자신의 정체성을 쌓아 가는 데 아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했더라면 듣기에 훨씬 익숙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며칠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인터뷰였겠지만 말이다. 막 무명 생활을 벗어난 한 배우가 간지럽게 던진 정체성이란 표현이 왜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을까? 자신의 정체성을 누군가에 맡긴다는 것, 타자 안에서 자기 됨(selfhood)을 찾는다는 것, 자기 이해를 자신 바깥에서 추구한다는 것이 이토록 낯설지만,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을 묻는 연대기적 정체성 성찰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는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의 의미를 물으며 시작한다. 다양한 입장들이 교차하는 세속 사회 속에서, 여러 이슈들을 동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이 그리스도인이길 고수한다면, 어떤 가치와 삶의 모습을 요구받을까? 현대의 기독교적 자아는 어디에 근거를 두고 정체성을 형성해 갈까?


도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찰스 테일러는 자아의 원천들(Sources of the self)에서,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할 자아를 이해하려면 과거의 그림들을 살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과거의 사고와 문화에 대한 일정한 태도를 취하고,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떤 그림을 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우리는 역사를 파악하지 않고는 우리 자신을, 현대적 자아를 이해할 수 없다.2)


테일러는 이렇게 형성되는 정체성의 세 주요 측면을 제시한다, 내적 깊이라는 존재 의식 즉 자아 관념, 그리고 일상적인 삶에 대한 긍정, 마지막으로 자연을 도덕의 내적 원천으로 여기는 표현주의적(expressivist) 관념이다. 이어서 각 측면에 따라 실제로 현대적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역사적이고 해석학적으로 살피면서, 지금 우리의 정체성이 아주 먼 옛날까지 잇닿아 있음을 여러 인물 사례들로 보여 준다. 플라톤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데카르트와 몽테뉴에 이르는 내면성에 대한 탐구, 종교개혁부터 계몽주의를 거친 삶의 질서를 좇는 이성, 18세기 후반부터는 자연을 내적 원천으로 보는 다른 형태의 근대적 내면화 등이다.


시대를 아우를 만한 특정 인물을 연대기적으로 분석하는 작업 방식을 통해, 테일러는 자아의식과 도덕적 전망, 정체성과 선()의 관계를 우리 앞에 보여 준다. 현대인으로서 지금 우리 자아의 원천들은 긴 역사 가운데 세세히 새겨져 있으며, 이를 조밀하고 사려 깊게 발견하고 성찰할수록 우리는 현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이 살아갈 만한 좋은 공동체를 꾸릴 수 있다. 그의 긴 작업을 따를 때, 결국 끝에서 무엇이 되는 것이 선한가”(what it is good to be)라는 질문을 떠안게 되는 결론이 그 증거이다.


테일러의 연구를 길게 설명한 이유는 이 책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가 가정하는 바와 작업의 진행 방식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정체성을 형성하는지, 무얼 하면서 살아야 할지, 어떤 위치에 서야 할지는 내 속만 들여다본다고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니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우리에게 특정 역사가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 서로 다른 우리가 의미로 가득한 과거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개별자로 만났으나 각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는 순간, 긴 시간을 잇고 장소를 가로질러 한 인격 안에서 묶인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원래 제목대로 기독교적 자아의 원천들(Sources of the Christian Self)을 탐구한다.

 


()에 답하는 다채로운 기독교적 정체성 탐구

 

이 책은 시대를 대표할 만한 42명의 그리스도인들을 추리고, 이들의 삶과 중요 순간을 살핀다. 회심 이야기 및 남긴 저작들을 통해 각 그리스도인들이 발견한 기독교적 자아, 이들이 처한 상황과 개인적인 맥락에서 형성해 간 정체성을 설명한다. “이 역사적 인물들의 기독교적 정체성은 무엇이며”, 그 혹은 그녀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근대 이후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를 찾는다.3) 또 그 통찰력을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길 기대한다.


구약의 족장, , 예언자. 신약 속 제자들과 사도. 초기 교회의 선생들과 순교자들. 중세의 영성가들과 대학자들. 종교개혁 시대 신비가들과 개혁자들. 근대의 작가 및 성서 해석자들. 20세기 셀 수 없이 분파된 기독교 안에서 고유의 영성을 다지고 추구한 사람들, 그리고 북미와 유럽 대륙을 벗어나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기독교의 정체성이 매우 다채로운 시각을 통과해, 여러 높낮이의 깊이를 갖고, 풍성한 목소리에 담겨 들려온다. 이 중에는 성서 속 인물을 포함해 개신교 안에서도 제법 익숙한 이들이 있고, 바그다드의 티모테오스 1, 루이스 데 레온 수사, 요한 아모스 코메니우스처럼 낯선 이름도 있다. 플래너리 오코너처럼 소설로만 만났던 예술가의 삶과 작가 여정을 짧게나마 알아본 것도 큰 유익이다.


테일러 연구와의 차이이자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42명의 저자들이 한 인물씩 맡아 구체적으로 살폈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정체성을 보여 준 역사 속 42명은 말할 것도 없고, 저자들 역시 연령과 성별, 인지도, 소속 등 다양하며, 전공도 성서학, 역사, 영성, 조직신학, 철학, 종교학 등 각각이다. 가장 크게는 복음주의 테두리 안에서 해석하지만, 인물을 읽어 내는 방식과 표현법에는 각자의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라이언 올슨은 초기 교회 때 활동한 그레고리오 1세를 설명하면서 철학자 폴 리쾨르를 거론한다. 그는 그레고리오 1세가 습관과 정체성 문제를 어떻게 고민했는지 보여 주기 위해 리쾨르의 개념을 가져온다. 리쾨르는 라틴어로 를 가리키는 용어인 이뎀’(idem, 다른 사람과 동일화될 수 있는 정체성)입세’(ipse, 사람과 배경에서 구분되는 자기 됨)로 인간의 정체성을 분리했다. 이 갈라진 정체성은 습관에서 중첩되는데, 올슨은 행위의 퇴적과 혁신이라는 습관 획득의 변증법적 관계, 타자성과 내면화 사이에서 동일시하는 변증법적 관계를 그레고리오 1세의 회심과 이후 저작들에서 읽어 낸다. 그런가 하면 옌스 치머만은 디트리히 본회퍼의 자기 기술을 리쾨르의 자기성 범주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본회퍼는 철저하게 고립된 채 내면의 참된 자기와 외부로 투사된 거짓 모습 사이에서 자아를 찾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마침내 궁극에는 참된 정체성의 기반을 하나님께 둠으로써 데카르트의 확실성의 이상을 뛰어넘는다. 치머만은 우리가 이 장면을 함께 목격하도록 이끈다.


이렇게 철학적 개념을 빌려 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좇게 하는 저자가 있는 반면, 재닛 마틴 소스키스는 단테의 신곡속 구절들로 그의 회심, 깨달음, 추구한 덕과 사랑을 설명한다. 현대인의 시선에서는 온통 알쏭달쏭할 뿐인 고백들 속에 깊이 스민 자아의 재발견 과정은 노래와 시의 아름다움 및 심오함을 함께 깨닫게 한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때, 지옥에서 부르는 노래의 힘, 은유의 힘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하겠다는 스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토머스 베컨과 존 버니언의 소설 속에 녹아 난 경건의 가치, 과학 시대를 눈앞에 두고 기술 진보주의와 기계론적 환원주의의 폐단을 미리 예언한 블레즈 파스칼의 관찰력 또한,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모습이 매우 광범위함을 알게 한다.


그뿐 아니다. 여러 신학자들이 시대별로 끊임없이 해석해 내는 삼위일체의 무한한 의미, 그 안의 가늠할 수 없는 관계와 초대의 은혜는,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누구를 기반하며, 내가 어떤 개념에 기대어 지금 이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시켜 준다.


물론 이렇게까지 분석하고 분류해서 읽지 않아도 이 자체로 좋을 책이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어떤 일들이 있었고, 매 분기점마다 어떤 인물이 등장해 우리 정체성을 형성해 줬는지 알려 주기 때문이다. 기독교 사상의 흐름에서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할 이들은 누구이며 기독교는 문화 및 인간을 향해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는지, 지금 우리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분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지 이 책을 통해 짚어 볼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긴 하다. 앞서 말했듯, 복음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술됐기에, 포함됐으면 하는 인물, 언급했더라도 다르게 다뤄졌더라면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또 개신교의 언어로 중세 이전의 사람들을 다루면서 놓친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적 자아의 원천들을 짧게나마(?) 살피면서 우리의 버팀목을 다시 정렬할 필요가 있겠다. 전부 다른 입장과 환경에 거했던 수십 명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삶을 이어 간 이야기들에서, “무엇이 되는 것이 선한가라는 질문의 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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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정체성이 있다

 

다시 배우의 인터뷰로 돌아가 보자. “아내는 내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녀에게 내 정체성이 있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우리는 누구에게 완전한 이해를 받으며, 누구에게 우리 정체성을 둘까?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나님과 동일하기를 바라지 않고 인간이 된 분, 자신을 타자로 삼아 종의 신분을 취한 분,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순종해 우리를 품은 분을 우리는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우리가 과거의 이들과 역사를 공유한다면, 존엄성을 챙기고 삶을 의미로 충만하게 채울 요소 역시 그 안에 있을 것이다.



1) 조현주, “[Y터뷰 in ] 유태오, 20001 뚫고 빅토르 최가 되기까지”,

 YTN, 2018519, https://ytn.co.kr/_ln/0117_201805191431002425. 2021428일 접속.

2)자아의 원천들: 현대적 정체성의 형성(Sources of the self: the making of the modern identity), 권기돈 외 옮김(서울: 새물결, 2015), 

   pp.10-11.

3)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p. 355.





이민희

인문학&신학연구소에라스무스 연구원  



 


IVP 202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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