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침묵을 깰 때다(김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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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오
책『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김경아 지음
*IVP가 <뉴스앤조이>와 함께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서 '우수 서평'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 변화는 ‘성’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누구와도 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물론 또래 친구들과 성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시시콜콜한 정보(?) 공유에 지나지 않았고, ‘나’라는 존재의 총체적 변화와 그에 따른 호기심과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나는 신뢰할만한 선생님을 직접 찾아 나섰다. 야동(야한 동영상)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부모님이 잠든 밤이면, 나는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 학구열을 불태웠다. 성의 신비와 왜곡 사이에서 유리하던 어느 날, 내 존재를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내가 학업에 몰입한 순간, 아버지가 거실로 나오셨다. 내 신분은 학생에서 현행범으로 전락했다. 나보다 더 당황한 아버지는 생에 처음으로(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뺨을 올려붙였다. 그러곤 황급히 방으로 사라지셨다. 그로부터 며칠 동안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으셨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 역시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중학교 2학년의 나에게, ‘성(성욕)은 곧 수치와 불화의 씨앗’이라는 문장으로 새겨졌다.
하지만 성적 호기심과 욕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굽어진 모습과 비뚤어진 형태로 발현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교회에서도 성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침묵했고, 더러는 수치감을 심어 주었다. 결국 나는 ‘두 존재’로 살기를 선택했다. 성적 욕망을 다스리는 거룩한(억압된) 나와, 성적 욕망이 들끓는(무절제한) 나로. 그렇게 이십여 년을 지나왔다.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이지만, 나에게 있어 ‘성’은 여전히 부끄럽고 불편한 이야깃거리다.
나를 알아준 한 사람!
이러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한 사람을 만났으니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의 저자 김경아 선생님이다. 저자는 내 삶을 훤히 들여다본 듯 이렇게 말한다. “일반 사회와 비교해 볼 때 교회 안의 성 담론이 훨씬 폐쇄적임을 알 수 있다. 교회 안에는 죄책감과 수치심에 괴로워하는 젊은이들이 있는 한편, 아예 교회 안과 교회 밖의 삶을 분리해서 살아가는 청년들도 있다”(35쪽). 나는 이 문장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러웠고, 동시에 나음을 입었다.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성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고, 누군가와 말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저자는 1장의 제목을 ‘우리는 모두 성적인 존재다’라고 썼다. 이토록 자명한 진리가,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명제라는 사실이 나를 서글프게 했다. 이러한 대전제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 사회는(특히 한국 교회는) 어떠한 성 이야기도 나눌 수 없는 ‘성역’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30여 년간 뼈저리게 경험한 산증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장의 제목은 책 전반의 내용을 끌어가는 토대가 된다. 저자는 다양한 성 이슈를 온화하면서도 정확한 화법으로 풀어낸다. 섹스란 무엇인지. 성호르몬은 어떤 작용을 하는지. 간성인의 존재와 성적 지향 그리고 동성애를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은 무엇이 있는지. 나아가 결혼과 비혼, 순결과 임신 중절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성에 있어서 차별과 혐오와 폭력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저자는 이 모든 내용을 아우르면서, 결국 ‘우리는 어떤 사람(인격)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던진다.
나도 누군가에게 단 한 명의 어른이 되고 싶다
저자는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성과 관련해서 가장 큰 적은 침묵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249쪽). 그렇다. 우리 사회는 성 담론에 있어 상당한 진보를 이뤘다. 하지만 유독 교회는(한 사람의 교회인 나는) 침묵하는 편을 선호한다. 때론 침묵이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성 이야기에 있어서 우리는 지나치게 침묵해 왔다. 이제는 침묵을 깨고 공공연한 담론의 장을 펼칠 때다. 그러한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고 나는 믿는다.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은 새 시대를 알리는 기쁜 소식이자 편지다.
하버드 의대 소아과 마크 슈스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는 대화를 나눌 어른이 있어야 해요. 적어도 한 명의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저 섹스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단 한 명의 어른이면 됩니다”(251쪽)
그렇다. 나는 누군가에게 단 한 명의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