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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류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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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호준

『읽는다는 것』강영안 지음



생각을 자극하는 여러 매체가 있다어떤 일을 보면서 생각하게 되고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생각하게 되고누군가 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다보고말하고듣고읽는 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일상의 행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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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는 이런 일상의 행위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예식이다특별히 예배의 중심에 있는 설교가 그렇다설교는 주로 말하고 듣는 일을 주도한다설교자는 말한다교인들은 듣는다한편 설교자는 설교를 위해 성경을 읽고 연구한다그에게 읽는 일은 말하는 일에 앞선다설교자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는 아주 중요한 일이 된다결국 성경이 기독교인목회자설교자에게 삶의 중심이 안 될 수 없다그렇다면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글로서 성경을 읽는데다른 책과 다르게 읽는가아니면 다른 고전을 읽듯이 읽어도 되는가?

 

철학자이며 신학자(철학신학, Philosophical Theology)인 강영안 교수가 ‘읽는다는 것에 대해 한 말씀 했다큐티 하나로 일약 명성을 얻고 대형교회를 일군 김양재 목사가 사역하는 “우리들교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강연한 것을 밑바탕으로 그간 강 교수가 철학적으로 깊이 연구하고 생각해온 ‘읽는다는 것에 대해 더 넓은 독자층을 위해 온전한 책으로 출간했다먼저 강 교수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김양재 목사와 우리들교회의 성경 읽기와 묵상 방식이 기나긴 기독교전통의 성경 읽기와 묵상 방식에 충실할 뿐 아니라 동서양 독서법 전통과도 잇닿아 있다”(9)는 말로 시작한다.

 

책의 내용은 본인이 잘 설명한 대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문자와 읽는 행위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철학과 성경을 배경으로 살펴보는 첫 번째 부분이 있다(1-3). 두 번째 부분은(4-6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읽기의 현상학), 어떻게 읽어야 할지(읽기의 해석학), 읽는 것이 사람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읽기의 윤리학)를 다룬다마지막 세 번째 부분(7-9)은 제2부에서 언급한 세 가지 물음을 가지고 성경을 실제 삶에 적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마지막 장인 10장은 첫 장(1)에서 던진 질문 ‘읽는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되짚어 질문(왜 읽어야 하는가?)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강 교수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 동의하겠지만그의 박학다식(博學多識)함에 놀랄 것이다동서고전을 막론하고 꼭 필요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차곡차곡 세워 나가는 철저한 논리성에 독자들은 감탄하리라그의 독서량과 책 사랑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강 교수는 내 개인적으로 잘 아는 학우(學友)이고 말이 통하는 동료이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거의 십여 년이 되어 가는 어느 해였다내 딸이 미국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 살기에 여름 방학이면 그곳에 가곤 했다당시 강 교수는 미국 캘빈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있었는데 내가 그곳에 가서 그를 처음 만난 장소는 그의 집도 우리 집도 아닌 우연히 들른 베이커 출판사 신학 서점(Baker Book)였다나는 중고 서고 한 구석에서 뭔가 열심히 책을 찾아 읽고 있는 강 교수를 발견했다. “아니 철학자가 뭔 신학 서점에 죽치고 계십니까이곳은 내 영토인데요!”라고 농담을 건넸다그뿐 아니다강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집에 가서 보니 벽난로 앞에 책이 산더미처럼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아마 수백 권 정도 되었을 것이다. “아니 저 책이 뭡니까?”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 신학 서적들이었다그랜드래피즈에 위치한 어드만베이커존더반크레겔 등과 같은 신학 출판사를 싹 뒤져 필요한 신학 서적들을 다 구입한 것이다엄청난 독서량과 지극한 책 사랑이 이른바 정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다시 돌아가 그가 펴낸 읽는다는 것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읽는 일에 관한 수많은 철학적 계보와 가르침을 얻게 된다플라톤과 문자칸트의 존재론과 지식 이론가다머의 해석학폴라니의 과학철학후설과 문자에 관한 강 교수의 설명은 그가 말하려는 읽는다는 것에 관한 방향 설정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무엇보다 동양과 서양의 대표적 독서법 전통을 다루는 제5장은 한국 독자들에게 흥미를 더해 줄 것이다. 12세기 중국의 유학 학문 전통을 세운 주희(1130-1200)의 독서 방법론과 유럽의 기고 2(Guigo II, 1188사망)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난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전통이 그것이다


강 교수가 주희의 독서법과 렉시오 디비나를 다루면서 ‘읽기의 윤리학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읽는 것이 사람됨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묻는 것이 읽기의 윤리학이기 때문이고확장하자면 성경을 읽는 일이 그리스도인 됨과 불가분리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달리 말해 독서의 목적은 단순히 지적 정보의 축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독서의 목적이 지식 정보 축적에 머무른다면현학적 허세와 같은 지적 교만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불편한 사실을 말하자면 많은 학자들/목사들의 독서량은 때론 현학적(衒學的)일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이렇게 많이 알고 있어!” “내가 이렇게 많이 읽었어!” 하는 식이다그러나 독서의 목적은 지식 정보의 축적을 넘어 그 지식이 자신을 새롭게 형성하고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데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내 언어로 하자면 독서는 information을 넘어 formation으로, formation을 날마다 함으로써 re-formation(재형성개혁변혁)을 하는 것이고날마다 하지 않고 멈추면 de-formation(괴물화일그러짐추하게 됨)이 되는 것이다독서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독서 행위에 관한 철학-신학적 해설로 다양한 예와 개인적 일화(뉴비긴본회퍼 이야기 등)를 통해 ‘읽는다는 것의 함의를 다층적으로 밝혀 준다그렇다면 저자의 입장은 무엇인가저자는 우리에게 어떻게 읽으라고 제안하는가무엇보다 성경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고 권고하는 것일까일반적으로 주관적 읽기와 객관적 읽기로 나누는 경향이 있다전자는 주로 큐티 하는 데서 발견되는 경향이고 후자는 좀더 학문적으로 읽는 층에서 선호하는 듯하다저자는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성경 읽기를 제안한다이른바 ‘인격적 읽기강 교수는 마이클 폴라니의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에 상응하는 ‘인격적 읽기를 주장한다성경 읽기에는 더더욱 알맞은 독서법이 아닐 수 없다일차적으로 읽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몸과 정신)을 통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성경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편이시기에말씀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없이는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수도받아들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받아들임으로써 그는 말씀에 의해 형성(formation)되고말씀을 살아 낼 수 있게 된다이 지점에서 성령의 역할은 당연할 뿐 아니라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따라서 ‘읽는 자 ‘기도하는 자여야 할 것이다.

 

천성을 향해 길을 떠난 순례자들에게 쉼과 힘을 주는 신앙 공동체가 교회라면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순례자들에게 쉼과 힘을 주어야 할 것이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거워하며”(하가오늘도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하겠다같은 방향으로 오랫동안 순종하면서 한 길 가는 나그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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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 책은 ‘읽는다는 것에 집중한 책이다성경()을 읽는 것을 전제로 한 주제이다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책을 읽거나 읽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식자층에 국한되는 일로 치부한다왜냐하면 교회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책에서 제안하듯이 책을 정교하게 읽을 수 있는 훈련이나 상황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오히려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는 일을 신앙의 중요 부분으로 간주한다따라서 이 책의 유용성과 함께 설교자들/신학도들은 ‘듣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면 좋으리라. 1세기만 해도 성경은 각 지역의 신앙 공동체에 회람되어 공공 예배 시간에 봉독’(奉讀)되었기 때문이다대표자가 회람된 성경을 ‘받들어 읽으면’(奉讀회중석에 있는 사람들은 들었다. ‘읽는다는 것’ 이상으로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선교지 상황을 생각하거나많이 배우지 못한 노년층의 상황을 생각하거나매일 일터에서 힘들게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면읽는 것 이상으로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신앙 행위인지 인식하게 된다로마서 10:17을 기억해 보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 성서 교실에서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http://rbc2000.pe.kr/guest/71320




IVP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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