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열을 일으키는 소망, 문화 돌봄(마크 래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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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 케어> 서문(마크 래버튼)
아름다우면서도 아프고, 영광스러우면서도 고통스러우며, 번성하면서도 번민하는 세상에서 많은 이들은 묻는다. 소망이 있는가? 소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소망은 어디에 있고, 소망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소망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소망은 빛을 향하도록 촉구하면서도 가장 어두운 것을 인정할 때에만 소망이 될 수 있다. 깊은 절망에 대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거나 눈을 감아 버리거나 편향적 태도를 보이는 어떤 것도 소망이라 주장할 수 없다. 극심한 악과 상실 앞에 말을 잃어 본 적 없는 소망이라면, 그런 이차원적 소망이 제공하는 것은 생산적이기보다는 물의만 일으키기 쉽다. 현실적인 것은 실용성보다는 진실성과 더 관계있다.
또한 소망이 무르익기 위해서는 종종 시간이 걸린다. 대체로, 빠른 해결책은 오래 지속되어 온 고통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 대신 소망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종종 예상치 못한 우여곡절, 전진과 빈번한 퇴보를 포함하는 긴 이야기일 때가 많다. 시간은 소망에 대한 위협인 동시에 친구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의는 폭발될 것이 아니라 지루한 과정을 통해 해체되어야만 한다. 그 때문에 자주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해도, 그게 진실이다. 소망은 한 차례의 조정보다는 치료 계획에 더 가깝다. 다른 말로 하면, 소망이 치유를 향해 움직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소망은 파열을 일으키고, 지배적인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며, 수립된 계획을 방해한다. 즉, 창조성과 진리로써 많은 사람이 가능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역류와 같다. 이런 의미에서, 소망은 마치 바랐던 깜짝 선물이 예상 밖의 미풍을 타고 혹은 예기치 못한 누군가의 방문과 함께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
"소망은 파열을 일으키고, 지배적인 바람의 방향을 거스르며, 수립된 계획을 방해한다."
소망은 많은 경우 엿보기만 허락하고 전체를 보여 주지 않는다. 필요란 여러 수준과 서로 상이한 차원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진짜 소망은 모든 필요를 동시에 손에 들고 나타날 가능성이 적다. 그리고 소망에 출발점과 결정적 전환점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명확하게 포착하기 어렵다. 누구도 소망을 완전히 이해할 만큼 충분한 비전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것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 주는 가장 결정적 증거조차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소망과 절망은 서로 가까이 붙어 있고, 그럼에도 소망은 여전히 환상처럼 보일 수 있다.
마코토 후지무라의 문화 돌봄에 대한 비전은 명확하게 설명되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소망과 그 이상의 모든 표지를 담고 있다. 소망에 대한 마코의 증언은 확신에 차 있지만, 그럴싸한 말로 꾸미지 않는다. 자신감에 차 있지만 거만하지 않다.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 않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소망에 대한 마코의 비전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모든 실재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자비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 이 거룩하신 예술가께서는 모든 범위의 창조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신다. 하나님은 자유 안에서 그리고 자유를 위하여 창조하셨다. 바로 거기에 우리 인간이 처한 고통스러운 슬픔과 함께 엄청난 기쁨이 나란히 놓여 있다. 문제투성이며 아파하는 우리의 세상은 하나님의 흔적인 선함 및 인간의 흔적인 죄라는 맥락 안에서 참으로 소망하며 고통스러워한다.
문화 돌봄은 모든 인간의 소명에 대해 살펴보는 동시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웃을 돌보고자 힘쓰는 이들을 향한 특별한 부르심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일이지만, 대체로는 특히 우리의 아름다움과 괴로움, 열망, 분노, 고통, 그리고 소망의 이야기를 보고 느끼고 구현하는 예술가들의 일이다.
마코가 ‘경계를 걷는 사람들’(border-stalkers)이라 부르는 예술가들은 가장자리 곧 사회의 주류 주변부에서 살고 일하면서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한 강력한 통찰과 경고, 성찰, 열망을 보여 준다. 그들의 작업은 고난과 소망에 대한 정직하고 용감한 증언으로써 예술의 긴급성을 규명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기인한 생성적 영향력으로 작업하는 예술가들은, 이러한 중요한 임무에서 정직함과 용기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문화 돌봄에 대한 마코의 폭넓은 비전은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고 소망을 자극하며, 하나님의 빛과 사랑의 실재에 의해 새로워진 세계를 향한 열망을 확장시킨다. 이게 바로 오늘날의 맥락 안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교회당이나 회중의 범위 안팎에서, 문화 돌봄은 우리의 소명이자 임무다.
마코가 풀러 신학교의 예배, 신학, 예술을 위한 브렘 센터(Brehm Center for Worship, Theology, and the Arts)의 디렉터로 담당하는 역할은 하나님 나라의 소명을 위한 국제적 리더를 양성하고자 하는 풀러의 목표 달성을 위해 매우 귀중하고 필요한 선물이다. 그런 변혁을 이루는 사역이 예술 없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겠는가? 그러한 근본적 확신과 행동하는 창조적 상상력의 실천 없이? 우리 교직원과 졸업생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흩어져 들어가게 될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살아 내기 위해서는 바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문화 돌봄은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서든 신실한 예수님의 제자 됨이 뿜어내는 창의적 결과물이다. 문화 돌봄의 소망은 진짜 소망이란 현실적이고 느리고 파열을 일으키고 제한적이어야 하는 곳에서 태어나는 소망이다. 폭넓고 영감을 주며 겸손하고 담대한 이 비전은 생명을 가져온다. 생명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 돌봄은 어디에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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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러신학교 총장이자 <제일소명>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