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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설가의 기도에 담긴 통찰과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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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모세

책 <플래너리 오코너의 기도 일기>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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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Flannery O'Connor, 1925-1964)



당신을 생각하고 당신을 향해 품고 싶은 사랑으로 영감을 받기보다 이렇게 창의적 재능에 대한 노력으로....”

 

이 일기의 첫 문장은 이렇게 미완의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문장 앞의 몇 페이지는 손실되어 있다. 일기를 기록한 노트의 몇몇 부분이 그렇게 누락되어 있는데, 일기 곳곳에 일기의 작성자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런 모양새를 지닌 플래너리 오코너의 기도 일기(A Prayer Journal)는 소설가 플래너리 오코너의 사후 50주년을 맞기 한 해 전인, 2013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퍼블리셔스 위클리> <디 애틀랜틱> 등등 미국의 유수하고 허다한 언론들이 이 책을 다루면서 진심 어린 찬사를 내놓았다. 결국 이 책은 출간된 그해에 <파이낸셜 타임스> <밀워키 저널 센티널> <슬레이트 북리뷰> <아이북스> 등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으로 자리매김했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이 짧은 기록은 수많은 이들에게 여러 지점에서 아주 특별한 독서 경험을 불러일으켰다.

 

플래너리 오코너에 대해 토머스 머턴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글을 읽을 때, 나는 헤밍웨이 또는 캐서린 앤 포터 또는 사르트르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소포클레스 같은 누군가가 떠오른다. 한 작가에 대해 그 이상 더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오코너는 머턴뿐 아니라 미국 지성계와 세계 문단의 찬사를 받은 작품들을 내놓은 미국 작가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19253월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라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결국 현명한 피를 포함한 2편의 장편소설과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와 같은 32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25세 때 오코너는 그의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홍반성낭창이라는 불치병에 자신도 걸린 것을 알았고, 39세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투병과 함께 글을 썼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내려고 했는데, 실제로 소설을 읽어 보면 그 지점이 어디인지가 쉽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로써 신앙이 어떻게 문학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문학은 신앙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탁월한 전범을 선사한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어로 출간된 플래너리 오코너의 기도 일기는 그녀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예상치 않게 밭을 갈다가 값진 노다지를 발견한 것 같은 기쁨을 선물할 책이다. 오코너가 21세에 고향 서배너를 떠나 아이오와시티에서 대학 학창 시절을 지내며 쓴 이 일기에는 그녀의 기도가 적혀 있다. 19461월부터 19479월까지 쓴 이 기록에는 기도의 형식으로, 즉 신 앞에서의 정직함을 토대로 소망들과 신앙적 사유들이 펼쳐진다. 특히 신앙을 지닌 탁월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간구들 속에는 문학에 대한 그의 분투와 갈망 그리고 통찰이 담겨 있다. 그의 소설의 매력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문학을 이해할 실마리들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그의 생애 전체, 그가 이룩한 문학적 성취를 떠올려 본다면 그가 한 기도들에 결국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상상하게할 단초들을 추적해 볼 수도 있다.

 

하나님, 제가 원하는 것처럼 그렇게 당신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제 눈에 당신은 가느다란 초승달, 그리고 저 자신은 달 전체를 보지 못하게 가리는 지구의 그림자와도 같습니다.”

 

일기의 두 번째, 세 번째 문장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이 일기에는 오코너의 문학과 관련된 여러 값진 증언들뿐 아니라, 그의 신앙 여정 자체를 그려볼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 많다. 아마도 그의 소설을 읽어 보지 못했을 많은 이들에게는, 그의 담백한 신앙 분투들, 곧 그의 하나님 이해와 자기 성찰들만 해도 큰 도전과 격려를 주는 책이 될 것이다. 그가 뛰어난 소설가였던 것은 단지 그의 문학적 재능에만 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섬세함과 예리함이 그 바탕에 놓여 있었고, 그것은 젊은 날의 이러한 신앙의 순간으로 남아 독자들에게도 자기 신앙을 돌아보게 할 아름다운 기도문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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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를 아직 잘 모르지만 혹 더 알아보고 싶다면, 기도 일기플래너리 오코너라는 단편집을 먼저 읽어 보면 좋을 것이다(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라는 단편집이 분량상 접근성이 더 낫지만, 절판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의 대표 장편소설인 현명한 피의 도전을 받아들여 보길 권한다. 복잡다단한 삶의 구석구석에 대한 예리한 묘사와 통찰을 전달하는 소설을 즐기면서, 또한 그것이 왜 신앙의 진술이기도 한지 추리해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기도 일기는 너무나도 오코너답다. 역시 걸작이라는 이야기다. 그의 문학과 내면이 하나였음을 알려주는 초창기 증언이다. 여기서 오코너답다라는 것은 이 담백하고 간단한 기도 일기 속에도 냉혹한 반전과 통찰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정모세

믿고 행동하는 삶을 꿈꾼다. IVP 편집장이고, 함께여는교회 협동목사다.

 

*이 글은 성결교단 잡지인 <활천>(2020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IVP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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