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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방향이 바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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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현철

책  <특강 욥기> 권지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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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욥기가 좋아졌다욥기의 심각한 내용들은 본문 공부를 어렵게하는데 <특강 욥기>는 욥기를 다시 사랑하고 푹 빠지게 만들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평소 교회에서 듣던 교리적이고 고착화된 해석에 저항한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세 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기존의 주석가들처럼 욥이 회개했다고 보지 않고 단지 하나님께 정의의 요구를 그만 두는 것뿐이라고 본다이 점이 책의 가장 놀라운 반전이자 꼭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14). 둘째, 욥을 마냥 오류와 허물이 없는 존재로만 보지 않고 욥의 문제점도 탁월하게 지적한다(7, 9). 셋째, 세상의 부조리와 하나님의 폭력에 대해 지적함에도 하나님의 위엄과 위대하심이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타오르게 한다(8, 13).

 

욥기를 읽으면 알베르트 까뮈가 생각난다까뮈의 그 유명한 말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오직 자살이다왜냐하면 자살은 이 세상이 살만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는 욥을 연상시킨다부당한 세상에게 정당성을 요구하는 모습에서 까뮈와 욥은 매우 닮았다.

 

욥기를 대할 때면 한결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가무고한 자의 죄에 대해 성경은 뭐라 말하는가왜 하나님은 구원하지 못하시는가하나님은 악인의 행동에 암묵적으로 동의하시는 것인가? 권력을 쥐고 있는 입장에서는 세상이 한없이 정의롭고 평화롭고 정당해 보일 수 있다그러나 2015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터기 관광지 해변에 파도에 밀려와 죽은 세살 시리아 난민 쿠르디나, 2019년 미국과 멕시코 접경 지역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엘살바도르의 발레리아와 그의 아버지에게 이 세상은 과연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욥기는 이러한 정의의 부재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책이다. 그 질문을 이러한 사건들 앞에서 나의 질문으로 또는 우리의 질문으로 던지며 대답을 구해본다욥기는 과연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도 대답을 하고 있는가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그렇기 때문에 욥기는 너무나 어려운 책이다질문은 던지지만 대답하지 않는다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우리의 질문을 교정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를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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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속 수많은 질문들


욥기의 대화에는 수많은 질문들이 오고 간다신중한 신학자 엘리바스, 인간의 고통을 역전시키며 하나님의 능력을 대변하는 그의 신학적 해답. 그러나 욥의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3). 전통 수호자 빌닷, 전통적인 이론만으로 세상을 순진하게 바라보며 현실감각이 없는 책상신학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순진한 탁상공론이 탁상행정을 만들고, 실제의 고통을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함으로 공상의 신학만을 드러낼 뿐이다(5). 지혜자 소발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지혜를 주장하며 욥의 고통의 원인은 욥의 죄라고 지적한다특히 욥이 한 말을 되풀이하며 욥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만 그는 욥의 말을 오독하고 오해하고 있다소발은 스스로의 논리에서 모순을 일으키면서 모든 원인은 신비가 아닌 욥의 죄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이러한 논리는 욥에게 적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알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6).

 

얼핏 들으면 세 친구의 말은 모두 인과응보의 논리만을 말하는 것처럼 보여서 차이점을 알기 어렵다이 책은 각 인물의 메시지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짚어주면서 차이점을 명확히 해준다. 또한 욥기가 신정론에 대한 시원한 답을 내어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욥기를 어떻게 우리 현실의 사회악과 불평등과 알 수 없는 고통에 접근할 수 있을지 방향과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책과 함께 성경을 읽으면서 익숙했던 그러나 깜짝 놀란 구절이 있다. 그 유명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문맥이 빌닷이 욥의 자녀들의 죽음이 그들의 죄에 있다는 비난과 같은 문맥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욥의 자녀들의 죽음을 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불쾌한데 그 문맥에 이 구절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성경 본문을 얼마나 잘못 인용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불행한 사건에 대한 잘못된 해석과 폭력이 오늘날에도 얼마나 되풀이되는지, 누군가의 어리석은 해석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를 생각한다.

 

23:10의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중략)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구절도 욥의 경건을 말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무고함을 말하는 구절로 봐야 하겠다. 갑의 폭력 같은 하나님의 폭력에 순순히 약자처럼 입을 다물거나 주눅 들거나 당하지 않겠다는, 어떻게 보면 되바라져 보이는 욥의 저항은 결코 신앙 없음이 아닌 신앙을 가진 자가 취하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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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s Despair, William Blake(사진 위키미디어) 
 


질문의 방향이 바뀌기를


<특강 욥기>는 욥기의 모든 본문을 주석한 책은 아니다. 그러려면 예컨대 'WBC 주석'처럼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야 한다. 저자가 언젠가 펴낼 주석 출간은 후일로 미루고 잘 정리된 이 책만으로도 충분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우리가 고통의 무게를 얼마나 과소평가하고 평가절하하며 공감하지 못하는지 따져 묻는다현실에는 감당 못할 고난이 있으며, 고난 당한 자에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우리 질문의 방향을 바뀌기를 요청한다. 


욥의 고뇌는 현실사회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떠오르게 한다복잡한 현실 세계에 하나님의 정의를 다시금 묻고 욥의 고뇌를 통해 세상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가 고통 받는 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아픔을 끊임없이 읽어내야 한다고 신학자의 파토스로 간절하게 외친다. 욥의 질문에 오랫동안 천착하며 치열하게 고뇌한 통찰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욥기는 세상의 부조리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읽힐 책이다그러한 고통과 고뇌의 맥락에서 욥기를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다.


<특강 욥기>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것에 비해 어렵지 않으면서도 깊은 통찰을 선사하기 때문에 일독으로 끝낼만한 책이 아니다나처럼 다른 독자들도 새롭고 진지하게 욥을 발견하도록 돕는 저자와의 만남을, 책 속에서 시작하길 바란다.



전현철

포천에 위치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바른교회'라는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입니다. 

IVP 2019-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