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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퍼라는 거대한 산맥을 탐험하고자 하는 모든 여행자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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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하늘샘 (미국 칼빈신학교 박사과정)




친절하고 흥미로운 안내서


‘카이퍼’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어디서 들은 듯하지만 여전히 낯설다고 느끼는 분도 계실 것이고, 반대로 익히 들어 친근한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또 누군가는 참으로 배울 점이 많은 위인이요 사상가라 생각하고, 혹자는 위험하거나 멀리해야 할 인물이라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카이퍼는 과연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입니다.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빛을 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들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신학자인 것처럼 보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 들으면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쉽게 다가가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카이퍼, 그 카이퍼를 친절하고도 흥미롭게 소개하는 책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한국 교회를 위한 카이퍼의 세상 읽기』입니다.



이 책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책은 크게 다섯 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1부에서 저자는 한국 교회가 카이퍼라는 거의 200년 전에 태어났으며 이역만리 네덜란드에서 자라고 활동했던 사상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단순히 카이퍼가 어떤 이론이나 신학을 가르쳤는지에 멈추지 않고, 어떻게 하면 카이퍼의 지혜를 21세기 한국이라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적용하고 풀어낼 수 있을지를 제시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교회는 보통 보수나 진보 정치인 또는 당을 지지하는 식으로 정치에 참여했는데, 그러한 정치적 영향력보다는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에 살며 그에 맞게 정치에 참여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시사합니다. 


2부에서 저자는 ‘진짜’ 기독교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소개된 세계관 운동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며, 카이퍼에게서 참된 세계관 신학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알려 줍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교리 싸움’에서 벗어나 다양한 세계관과 싸울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될 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 맞는 칼뱅주의를 구성할 수 있는 유익한 디딤돌이 된다고 합니다. 또한 카이퍼는 세계관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공공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3부에서 저자는 카이퍼 사상 가운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영역 주권을 다룹니다. 자칫하면 어렵게만 느껴질 수 있는 주제를 저자는 한 요소씩 짚어 가며 설명합니다. 먼저 영역 주권이라는 개념은 좌우, 보수와 진보를 초월합니다. 진보와 보수 중 한 편을 고르기보다는,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주권을 드러내야 합니다. 또 교회는 자기 주권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국가 권력으로부터 자유해야 한다고 말하며, 동시에 신정주의적 기독교 정부 역시도 정답은 아니라고 합니다. 


4부에서 저자는 카이퍼 사상이 어떻게 한 나라를 바꿀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달리 말해, 구체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이 한 국가나 공동체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가르쳐 줍니다. 가장 먼저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 세계관이 어떤 명확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려 줍니다. 특히 교육에 집중하면서, 결국 모든 교육이 각기 다른 세계관에 기반하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관 역시 자기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공적 영역에 참여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또 저자는 기독교 하위문화 형성과 그 영향을 강조한다고 설명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5부에서 저자는 한국인이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논하며, 결국 공공신학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고 외칩니다. 카이퍼는 공공신학이 세속화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공공신학이 정치, 경제, 학문, 예술 등 공적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공적 쟁점을 윤리적 가치 판단을 통해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책만이 선사할 수 있는 기쁨들


카이퍼를 다루는 다른 책과는 구별되는, 이 책만이 선사할 수 있는 기쁨들이 있습니다. 그 특징들에 대해 잠시 다루어 볼까 합니다. 가장 먼저 이 책은 한 편의 긴 편지입니다. 저자가 카이퍼가 되어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옆동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동화처럼 재미있고 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카이퍼 사상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훑고 지나온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본서는 두 가지 역사적 맥락을 아주 자세히 파악하고 있으며, 그 맥락을 고려하여 적절한 메시지를 건네 줍니다. 우선은 카이퍼가 처했던 상황을 알려 줍니다. 카이퍼가 어떤 사상을 어떤 맥락에서 고민하며 발전시켰는지 설명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세계관과 대응하기 위해 씨름했는지 배울 수 있지요. 나아가 저자는 한국과 한국 교회의 형편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 두 가지 지점이 만나서 큰 협력 작용으로 이어집니다. 독자는 카이퍼 신학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그 원리를 자기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저자는 카이퍼 이해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어려움을 제거해 주었습니다. 바로 카이퍼 사상이 정말 다양한 문헌에 흩어져 있다는 걸림돌입니다. 아무리 카이퍼라는 사상가와 친해지고 싶다고 해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알기 어렵습니다. 특히 기독교 세계관이나 영역 주권같이 방대한 개념에 대해 배우려 해도, 한두 권의 책에 그 내용이 모두 담겨 있지 않습니다. 방대한 카이퍼 저작 중에서 중요 개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많은 조각을 모아 주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큰 선물입니다. 



좀 더 함께 고민해 보면 좋을 지점들


본서에는 많은 보석과 지혜가 담겨 있지만, 함께 더 고민해 보면 좋을 요소도 분명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저자는 카이퍼가 지닌 긍정적인 면을 어떤 의미에서는 너무 크게 강조합니다. 저자의 비판 의식을 이해하지만, 좀 더 음영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저자는 카이퍼의 목소리를 이용하여 기독교 세계관이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카이퍼 역시도 자기 이데올로기가 있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소신을 몰아붙이기도 했습니다. 카이퍼가 칼뱅주의를 수용하면서도 칼뱅을 초월하려 한 것처럼, 저자가 카이퍼를 초월하고 능가하는 면모 역시 보여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으로 영역 주권과 합리성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한 것처럼, 영역 주권에 따라 각 영역은 특수한 원리로 움직여야 합니다. 카이퍼는 분명 이 지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카이퍼가 자연 이성만큼 역설하는 내용이 있으니,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저자도 책에서 인용하는 Our Program: A Christian Political Manifesto에 수록된 “The Ordinances of God”라는 문서를 보면, 자연 신학의 한계와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흔히 사회 여러 영역에서는 자연 이성이, 교회 내에서는 성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이퍼도 그런 구분에 대해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결국 성경 속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지점에 있어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나아가 영역 주권이나 기독교 세계관의 근간이 되는 신학적 바탕에 대한 논의도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자가 다음에는 카이퍼의 신학에 대해 다루고 싶다고 했기에 이번에는 어느 정도 생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신학적으로 영역 주권과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카이퍼에게 하나님의 형상이나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일반 은총이라는 개념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 두 가지는 이 책에서 다루는 모든 아름다운 내용을 세우는 기둥이 됩니다. 그러한 신학적 기초도 짧게나마 다루어 주었더라면 카이퍼 사상을 좀 더 온전하게 소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가면서


좀 더 깊이 논의할 부분도 있지만, 이 책이 한국 교회에서 갖는 가치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다룬 것처럼, 이 책은 친절하여 신학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이라도 충분히 읽으실 수 있습니다. 또한 네덜란드, 미국, 한국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어 한국 교회가 어떻게 새롭게 되어야 하는지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기쁘게 읽으시리라 여깁니다. 특별히 카이퍼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방대한 저작 때문에 주저하셨던 분에게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IVP 202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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