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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울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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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 『바울과 그 해석자들』 (N.T. 라이트) 
글_ 최현만 (바울과 그 해석자들 역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갈라디아서 2장 16절 말씀이다. 20년 전의 나는 이 구절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아니, 어떻게 해석했을까?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려고 나름의 접근 방식으로 끙끙댔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 구절 해석과 관련이 있는 이런저런 문제를 떠올린다. 왜 바울은 ‘율법의 행위’와 ‘믿음’을 대조할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번역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는 표현 속에 바울은 어떤 의도를 담았을까? 1세기 유대인들은 ‘의롭게 된다’라는 표현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을까? 갈라디아 교회가 당면했던 위기 상황에 이 구절은 어떻게 적용되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나아가 이 시대의 교회에는? 
질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해석 대상인 성경 본문을 넘어 해석 주체인 나와 해석 행위 그 자체로 향한다. 나는 왜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질문에 나름의 답변을 찾아 이 구절을 이해했다 해도, 나의 해석 과정은 적절하고 그 결과는 믿을 만한가?
이렇게 모든 그리스도인은 나름의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고, 자신의 해석 행위에 의문을 던진다. 해석의 불확실함 속에서 헤맬 때, 자신의 해석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지도가 있다면 길을 찾아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바울과 그 해석자들』은 적어도 바울 해석에 관해서는 우리의 훌륭한 안내자가 되어 줄 책이다.



『바울과 그 해석자들』과 톰 라이트 

이 책의 저자는 톰 라이트로 널리 알려진 N. T. 라이트다. 이 책은 그의 신학 기획에서 나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비판적 실재론, 세계관 기술 같은 역사 방법론을 동원해 예수와 바울을 포함하여 기독교의 시작을 설명하려는 거대한 기획을 진행 중이다. 그 기획의 이름은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질문”이고, 가장 최근(2013년)에 나온 그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 PFG, CH북스)이다. 라이트는 PFG의 서론에서 한두 장을 할애해 최근의 바울 연구사를 다룰 계획이었지만, 내용이 길어져 별도로 이 책 『바울과 그 해석자들』을 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톰 라이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이 책은 원래 바울 사상을 상세하게 풀어 쓴 내 책 PFG의 서론에 포함되는 내용이었다.…이 책의 목적은 달처럼 PFG 주변을 돌며 때로는 이 각도에서, 때로는 저 각도에서 PFG에 다양하고 (내 바람으로는) 기분 좋은 빛을 비추는 것이다. (24쪽) 
라이트의 이와 같은 전체적 신학 기획의 맥락에서 이 책을 읽으면, 원래 의도를 더 충실하게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맥락과 무관하게도 이 책은 독자적 가치가 있는데, 톰 라이트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PFG와 달리 이 책의 목적은 선택 영역에 대한 유익한 개론서로 손색이 없으면서도 군살 없는 설명을 제시하는 데 있다.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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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바울 해석자들의 역사
 
저자인 톰 라이트 자신도 최근 바울 해석사에 관한 ‘유익한 개론서’가 되기를 바란 이 책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 이 책의 큰 흐름은 19세기 이후 바울 해석사의 주요한 계보를 핵심 바울 해석자들을 중심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구성을 보면, 종교사학파, 새 관점, 옛 관점, 묵시학파, 사회적 연구, 정치철학적 접근 등으로 범주화되어 있고, 각 범주에서 중요한 학자들 몇 명과 그 학자들의 대표작 한두 가지(때로는 논문 하나)로 좁혀져 진행된다. 어느 정도는 역사적 순서를 따르고, 바울 해석과 관련된 시대 문화적 상황이 계속 언급되기에 어느 정도는 역사적 순서를 따르고 바울 해석과 관련된 시대 문화적 상황이 계속 언급된다는 면에서, 다소 역사서의 성격을 띤다. 그렇기에 학자들의 신학뿐만 아니라 그 신학과 관련된 삶의 자리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시대의 과제를 두고 고민했던 신앙인으로서 그들을 만날 수 있다.



해석의 틀: 역사, 신학, 주해, 적용

이 책에서 시종일관 이러한 흐름을 조망하고 분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틀이 있다. 그것은 해석과 관련한 네 요소로, 역사, 신학, 주해, 적용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해석할 때 글의 의미를 파악하려는 작업 자체가 ‘주해’이고, 여기에는 역사, 신학, 적용의 요소도 함께 작용한다. 이 세 요소가 바울 해석과 관련해서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624쪽).

- 역사: “바울의 시대와 그의 복잡한 문화 세계에서의 바울에 대해 우리는 충분한 역사적 타당성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 신학: “바울 신학의 일관성에 대해서 혹은 일관성이 없다면 바울이 하나님, 예수, 세계, 인간의 죄, 구원 등에 관해 말해야 했던 내용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 적용: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세계와 교회, 개인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는가?”
성경을 해석할 때, 이 요소들은 부지불식간에 서로 영향을 주면서 해석 작업에 관여한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쉽게 함정에 빠질 수 있고, 그것은 유명한 바울 해석자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해석자는 역사를 강조했지만 실제 역사에 기초하지 않아서, 어떤 해석자는 자신의 신학을 바울에게 뒤집어씌워서, 어떤 해석자는 우리 시대를 위한 적용거리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바울을 오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측면에서 접근이 잘못되었음에도 올바른 바울 이해에 도달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리고 같은 범주를 내세우고 같은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학자들 가운데도, 이런 요소들을 따져 보면 다양한 색깔이 존재한다. 사태가 더 복잡해지는 것처럼 보이는가? 사실, 바울 해석을 둘러싼 상황은 원래 복잡하고, 라이트가 제시하는 이 틀은 그런 복잡한 상황을 정리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되어 준다. 그리고 이 책 자체가 그 틀을 가지고 여러 범주와 학자들의 주장을 평가하는 실제 사례다. 
 


‘투사’의 위험성
 
그런데 책 전체에서 반복해서 드러나듯이, 라이트가 이런 요소 중 가장 기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역사다. 그것도 제대로 된, 두터운 역사 기술이다. 이런 역사를 기초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신의 관점을 1세기에 뒤집어씌우는 ‘투사’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이 함정을 피하지 못한 유명한 신학자들을 여럿 만난다. (이 책의 영국 SPCK판 원서의 표지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한 렘브란트의 자화상이다.) 라이트는 ‘투사’의 위험성을 자주 지적한다. 이를테면,

우리 자신의 성격이나 문화적 전제를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온 자료에 투사하는 식으로는 탐험을 진전시킬 수 없다. (36쪽)
중요한 것은 역사, 그리고 관련 본문의 역사적 주해지, 현대의 대립 명제를 고대 저자에게 투사하는 것이 아니다. (324쪽)


해석의 토대: 두터운 역사
 
‘투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앞서 언급한 ‘두터운 역사 기술’이다. 여기서 ‘두텁다’는 것은 라이트의 전체 기획에서 계속 강조해 온 ‘세계관 기술’과 관련된다. 이 요소는 라이트의 전체 기획에서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고, 또한 이 책에서 웨인 믹스와 데이비드 호렐을 내세우면서 사회과학적 접근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기에, 이와 관련된 라이트 자신의 말을 충분히 인용해 보겠다.

나는 1992년 이후로 세계관 분석이라는 특정한 방법을 설명하고 사용해 왔는데, 나는 그 방법을 동맹군처럼 동원해 나의 신학 분석 작업을 위한 배경을 설정했다.…나는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질문』 시리즈의 첫 책(『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에서 이 모델을 제시했고, 그 모델을 1세기 유대 세계와 일반적인 초기 기독교 운동에 자세하게 적용했다. 다음으로는 그 모델을 예수에게 적용했고, 중간에 부활에 관한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가장 최근에는 그 모델을 바울에게 적용했다. (471쪽)

이 [사회사적] 비전은 역사를 훨씬 더 큰 해석의 격자(사회적 구성, 세계관 등)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그리고 (이 두 가지와 분리된 범주로서가 아니라 그 내부에서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범주로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는지, 무엇을 믿는지, 무엇을 소망하는지 등 다면적인 특성을 그려 내는 사회적·문화적·개인적 묘사의 과제로 본다. 여기가 바로 사회학에 뿌리를 둔 세계관 모델이 자기 존재감을 제대로 보여 주는 지점으로서, 역사에 관한 ‘두터운 묘사’를 제공한다. (628쪽)


사회적 접근의 중요성
 
‘두터운’ 역사의 힘은 그 작업을 통해 ‘신학’의 의미를 더 또렷하게 밝혀 준다는 데 있다. 과거 종교사학파는 철학을 빌려와 초기 기독교의 신학을 해명했고, E. P. 샌더스는 종교 비교를 통해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신학을 설명했고, 묵시학파는 유대교 묵시주의의 틀로 바울 신학을 조망했다. 이런 과정에서 역사는 신학 작업의 들러리거나, 사회 전체적인 관점보다는 ‘신학’과 ‘종교’의 좁은 영역에서만 수행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한 웨인 믹스의 작업을 보면, 끈질기고 집요한 역사 작업의 결과물로 생생한 신학이 드러난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믹스의 엄격한 사회학적 연구의 결과로, 단지 바울 공동체가 품게 된 추상적인 신앙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나 사회학적으로 그들이 가진 공동체의 실제 형태와 정확하게 연관된 개념으로서 유대교 형태의 유일신론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작업은 믹스에게 맡겨졌[고]…유대교 유일신론이 종말론 및 기독론과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음을 이해한 사람도 믹스… 바울의 주된 믿음에 관한 나름의 설명 구조, 즉 유일신론, 묵시, 기독론을 주요 항목으로 상정하고, ‘바울이 하나님이 악, 죄, 죽음을 어떻게 처리했다고 보았는지’의 문제를 그 주요 항목들에 뒤따르는 질문으로 다루는 설명 구조 안에서 ‘해답에서 곤경으로’를 구체화하고 뉘앙스를 부여한 사람[도] 믹스다. (638쪽)
물론 이 모든 요소는 결국 성경 ‘주해’라는 영역에서 제대로 작동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바울 해석을 둘러싼 이러한 논의들을 주해의 영역과 관련해서 어떻게 바라볼지는, 이 책의 마지막 파트 ‘다수의 시선으로 본 안디옥’을 참고하기 바란다.



다시 갈라디아서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 짧은 문장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한 구절에서 어떤 대단한 사상을 끌어낼 수 있을까? 애초에 갈라디아의 교인들은 복잡한 해석 과정 없이도 이 말에 담긴 의미와 의도를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의 인식 체계, 즉 세계관에서 곧장 이해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고 체계 면에서 그들과 상당히 다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을 때 바울과 갈라디아 교인들이 당면했던 구체적 상황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탱했던 전반적인 세계관에 대한 두터운 이해다.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하려는 작업의 성격을 알고 접근한다면, 더 나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바울과 그 해석자들』은 최근 바울 해석자들의 역사를 들려줄 뿐만 아니라, 나와 교회,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바울을 읽는 지금 우리의 해석 작업에도 많은 빛을 비춰 줄 것이다. 





최현만 
청년 때 N. T. 라이트를 접하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그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의 저서를 번역하는 일에 뛰어들었고, ‘에클레시아북스’에서 N. T. 라이트의 책을 비롯해 다수의 기독교 서적을 번역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진료 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유익한 신앙 서적을 발굴하고 소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IVP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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