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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의미를 논하다(박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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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장훈(역자) 

책: 『혁명의 십자가 대속의 십자가』  N. T. 라이트·사이먼 개더콜·로버트 스튜어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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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흥미로운 책은 그리어-허드 포럼에서 속죄라는 주제로 진행된 N. T. 라이트와 사이먼 개더콜의 발제와 토론, 그리고 청중의 질의응답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면 포럼 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생동감뿐 아니라 깨달음의 즐거움까지 함께 느끼려면 속죄라는 주제와 두 학자의 관점을 간략하게나마 미리 아는 것이 좋다. 아울러 책에 추가된 로버트 스튜어트의 서문이 나머지 부분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알면 좋을 것이다. 



속죄의 개요

속죄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속죄를 이루었다는 뜻은 그의 죽음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본 의미에서 파생하는 다음 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속죄 이해는 달라진다. (1) 죄는 무엇이고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가? (2) 예수님의 죽음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3)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교회사의 여러 시점에서 등장한 속죄 모델들은 주로 이 세 질문에 기반한다. 여러 모델 중 라이트와 개더콜의 논의에서 주로 등장하는 두 모델은 ‘형벌 대리적 속죄론’과 ‘승리자 그리스도론’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형벌 대리적 속죄론’에 의하면 죄는 하나님의 명령과 뜻에 대한 불순종이며, 하나님의 정의로운 진노를 초래한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자들에게 임해야 할 하나님의 정의로운 진노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 결과 그들은 진노로 멸망당하지 않아도 되며 하나님과 화해된다. 초기 교회부터 12세기까지 성행했던 ‘승리자 그리스도론’에 의하면, 죄는 불순종이기보다는 그 행위를 저지르게 만드는 강한 세력이다. 따라서 이 죄의 세력이 초래하는 문제는 사망과 사탄과 함께 인류를 속박시켜 타락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 세력들을 물리치고 승리하심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그 결과 인류는 이 악한 세력들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되어 멸망당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 수 있게 된다. 이 두 모델을 계승하거나 연구한 현대 학자들에 의하면, 형벌 대리적 속죄론은 예수님의 죽음의 대리적 성격과 우리와 예수님 사이의 비대칭성을 강조한다. 죄에 대한 형벌로 죽어야 하는 우리를 대리하여 (대리성)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죽지 않아도 된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것이다(비대칭성). 이와 대조적으로, 승리자 그리스도론은 예수님의 죽음의 대표적 성격과 우리와 예수님 사이의 대칭성을 강조한다. 즉, 죄와 악의 세력에 속박당하는 우리의 자리에 우리를 포괄하는 대표자(대표성)인 예수님이 오셔서 악의 세력들을 물리치셨기 때문에 그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대칭성).


라이트와 개더콜은 여러 속죄 모델에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동의한다. 첫째, 이 모델들은 모델을 고안한 신학자들의 배경과 상황에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우리는 맥락을 함께 봐야 하며, 이 모델들의 궁극적인 정당성을 성경에 근거해서 판단해야 한다(이 점에는 많은 신약학자가 동의한다). 둘째, 속죄에 관련된 성경 본문들은 특정 속죄 모델만을 배타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여러 모델의 통합을 요구한다(이 점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신약학자가 많다). 그렇다면 라이트와 개더콜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이들은 성경을 근거로 이 여러 모델을 통합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개더콜은 속죄와 관련된 성경 구절들에 집중하는 반면, 라이트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강조하며 그 맥락 속에서 속죄에 관한 구절들을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개더콜은 형벌 대리적 속죄 모델을 중심으로 통합을 모색하는 반면, 라이트는 승리자 그리스도론 모델을 통한 통합을 제시한다. 두 학자의 비슷하지만 다른 속죄론은 ‘시작 발제’에서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N. T. 라이트의 입장

스튜어트의 서문은 라이트의 관점과 잘 연결된다. 라이트의 시작 발제, 개더콜과의 토론, 그리고 청중과의 질의응답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라이트의 속죄론을 요약하기 위해 다음의 두 질문에 답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첫째, 라이트는 자신이 속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성경 전체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둘째, 라이트는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앞서 소개한 속죄 이해에 관한 세 질문(죄의 문제가 무엇이며, 예수님의 죽음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고, 그 결과가 무엇인가)에 어떻게 답하는가? 

먼저 라이트에 따르면,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시작하신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다. 이 프로젝트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어 그 안에 거하시고 다스리심으로 세상에 자신의 임재와 통치가 가득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홀로 이 프로젝트를 이루시지 않고 자신의 형상을 지닌 인간을 만들어 자신의 임재 안에 두고 그들에게 ‘제사장-왕’의 역할을 부여하셔서 그들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이루고자 계획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을 구현하는 것은 창조 프로젝트를 성취하는 ‘제사장-왕’으로서의 소명을 인식하여 이 소명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분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세상에 실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인간성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도덕적 질서에 부합해야 한다는 도덕성의 요구는 이 소명의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라이트의 표현에 의하면 “소명의 필연적 반사작용”이다). 성경을 이러한 창조 프로젝트로 읽으면 이 이야기는 인간의 회복에서그치지 않고 애초에 인간의 소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피조 세계 전체가 회복될 때 완성된다. 아담에게 주어졌던 ‘제사장-왕’의 소명이 이스라엘로 이어졌다가 최종적으로 메시아 예수님의 백성에게 계승되었기에 이제 이들을 통해 창조 프로젝트가 완성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속죄를 이해하는 라이트에게 (1) 죄는 무엇이고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가? 라이트는 ‘행위로서의 죄’와 ‘세력으로서의 죄’를 구분해서 설명한다. 먼저 행위로서의 죄의 본질은, 아담과 이스라엘의 이야기에 나타나듯, 단순히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우상숭배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제사장-왕’의 소명을 내던지는 것이다. ‘제사장-왕’의 권세를 가진 인간들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우상에게 힘과 권세를 부여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행위는 “어두운 세력”을 형성하고 인간을 속박하여 행위로서의 죄를 계속 짓게 하는 세력으로서의 죄로 작용한다. 행위로서의 죄와 세력으로서의 죄가 초래하는 문제는 인간의 소명이 박탈되고 멸망할 운명에 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것이다.


(2)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라이트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새롭게 출애굽시켜 회복하는 대표자 메시아로 오셔서 인류를 속박하는 세력으로서의 죄를 자신에게로 끌어모아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으로 죽으심으로 이 세력을 무찌르셨다. 대표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됨으로 그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가 되고 우리는 세력으로서의 죄로부터 새 출애굽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행위로서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리적으로 받으신 사건이기도 하다. 라이트는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강조점들로부터 다음의 요지를 추론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벌의 대상은 죄인이기보다는 죄 자체다. 여기서 죄는 세력으로서의 죄와 행위로서의 죄 모두를 가리킨다. 그렇기에 죄인이 받을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받았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죄인 안에 있던 행위로서의 죄와 세력으로서의 죄를 예수님이 자신 안으로 끌어모으셨고, 그 죄를 심판하기 위해 죄인 대신 예수님이 죽으셨다고 이해해야 한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예수님이 대표적이고 대리적으로 겪으신 ‘새 출애굽으로서의 죽음’의 결과로 그리스도의 백성이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회복되어 소명을 되찾는다. 소명을 회복한 자들은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를 이루는 ‘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이어 간다. 이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피조 세계는 회복되어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가득할 것이며 창조 프로젝트는 완성될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지만, 이들을 통해 회복할 피조 세계에 대한 사랑도 나타낸다. 



사이먼 개더콜의 입장

개더콜은 여러 속죄 모델의 통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라이트와 비슷하지만, 성경 전체 이야기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라이트가 이해한 성경 이야기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는 듯하고, 자신이 수용하는 성경 전체 이야기가 있는 듯하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거나 자신의 속죄론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성경에서 관찰되는 두 가지 원리, 즉 죄가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공의의 원리와 죄를 지어도 죽음에 이르지 않을 수 있다는 은혜의 원리를 사용해 속죄에 관련된 본문을 해석하여 예수님의 죽음이 형벌 대리적이 었음을 강조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개더콜에게 (1) 죄는 무엇이고 어떤 문제를 초래하는가? 개더콜도 라이트와 마찬가지로 행위로서의 죄와 세력으로서의 죄를 구분해서 설명한다, 하지만 세력으로서의 죄의 정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며 이것을 역동적 존재로 보기보다 일종의 결함이나 결핍의 상태로 보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을 취한다. 행위로서의 죄가 초래하는 문제는 형벌적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며, 세력으로서의 죄가 초래하는 문제는 인간을 속박하여 죄의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에서 구원받으려면 행위로서의 죄를 용서받아야 하고 세력으로서의 죄에서 구조되어야 한다.


(2) 예수님의 죽음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 개더콜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행위로서의 죄에 대한 용서와 세력으로서의 죄로부터의 해방 모두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방법을 설명할 때는 전자에 초점을 둔다. 즉 예수님은 행위로서의 죄가 초래하는 형벌적 죽음을 죄인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신자들은 행위로서의 죄를 용서받아 형벌적 죽음을 겪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예수님의 형벌 대리적 죽음은 구약의 은혜의 원리가 절정으로 표현된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의 죽음에 예표되어 있으며 이교도 문학에서 등장하는 대리적 죽음의 경우들과는 구별된다. 이교도 문학에서 묘사되는 대리적 죽음은 자격이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인 것에 반해 예수님의 대리적 죽음은 살 자격을 상실한 죄인들을 위해 그들의 형벌을 대신 받는 죽음인 것이다. 개더콜은 예수님의 죽음이 죄인을 어떻게 세력으로서의 죄에서 해방하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3)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개더콜은 예수님의 형벌 대리적 죽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남을 강조한다. 개더콜은 이에 대해 간략하게만 설명하는데, 강조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는 성경의 이야기를 인간의 소명을 통한 피조 세계의 궁극적인 회복으로 이해하는 라이트의 해석에 회의적이며, 오히려 피조 세계보다 인간의 회복을 더 강조한다. 하지만 개더콜의 궁극적인 강조점은 피조 세계도 인간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다. 개더콜의 말을 빌리면 “십자가는 우선적으로 우리나 세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자신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결론

앞에서 간략히 소개한 라이트와 개더콜의 입장은 특정 속죄론보다 성경에 의존하여 속죄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이들이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인 성경 본문들에서 어떻게 도출하고 변호하는지 책을 읽으며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속죄에 대한 이들의 생각은 이 책에서 논의된 것보다 훨씬 정밀하고 풍성하다. 하지만 책의 내용만으로도 이들의 성경 해석과 결론에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고 신학에서 성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성경 학자로서 연구에 임하는 자세와 대화의 모범 역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박장훈

N. T. 라이트의 지도 아래 바울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백석대학교, 아신대학교, 숭실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

IVP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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