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역자 후기(신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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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현기(역자)
책 로버트 뱅크스『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
1980년에 1탄 ‘예배 이야기’가 나온 지 꼭 40년 만에 하마터면 탄생하지 못할 뻔했던 시리즈 3권을 마감한다. 2017년 어느 봄날 정지영 주간이 ‘예배 이야기’를 들고 와 출간 제안을 했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공동체와 엇비슷한 모임 에서 이 책을 합독할 준비를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건, 번역 계획을 알리려고 저자에게 20년 만에 연락하니, 저자는 저자대로 2탄 ‘하루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는 거였다. 내친김에 우리의 제안과 저자의 구상이 맞아떨어져 이 책 ‘선교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었다. 책은 그렇게 필연보다 진한 우연이 겹쳐 태어나기도 한다.
늘 그렇듯 책 만드는 과정은 공동 작업이다. 편집장 정모세와 편집인 이혜영과 디자이너 한현아, 그리고 저자 뱅크스와의 협업이 꽤 잘 어우러졌다. ‘예배’야 원서를 그대로 번역하면 그 만이지만, 한국에서 먼저 출판되는 ‘하루’와 ‘선교’는 저자와 협의해 가며 본문도 일부 수정하고 그림도 같이 찾아내는 작업이었으니 전형적 번역 출판은 아닌 셈이다. ‘선교’에 이르러 판화 작가 강연경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때가 이르러 판화 작업으로 재탄생할 ‘하루’를 기대해도 좋다. 책은 그렇게 여럿이 어울려 만들어 낸다.
원제를 조금 바꾸었다. Stepping Out In Mission Under the Caesar’s Shadow를 그대로 옮기는 대신 『1세기 그리스도인의 선교 이야기』를 제목으로 “로마 제국 어느 회심자의 선교적 일상”을 부제로 달았다. 브라이언 월쉬의 『제국과 천국』이 맘에 들어 ‘제국과 선교’를 제목으로 고려하였으나, 아무래도 전편들 과 체제와 글자 수를 맞추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제목 짓기는 출판의 절반이라고 과장하곤 했는데, 책 제목은 이렇게 꿍꿍대다 나오기도 한다.
제목에 ‘선교’를 달았으나 이 책은 이른바 선교에 대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제대로 선교에 대한 책이다. 본문에 선교란 말이 몇 차례 나오긴 하나, 교회에서 흔히 사용하는 선교와는 사뭇 다른 개념과 맥락에서다. 원문 “not a mission but the mission”은 “우리 자신의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로 번역했다. 선교는 전형적 선교사의 일이기에 앞서, 온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구속적인 사역이며, 하나님의 온 백성이 삶 전체를 통해 참여하는 것이다. 금융업자 푸블리우스의 삶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물론 대사도 바울의 선교 적 삶과 다르지 않고, 우리의 삶과도 다르지 않다. 모든 삶의 조건과 위기는 제자도와 선교의 장이자 기회다. 아굴라와 유니아의 인정과 격려가 하나의 거룩한 안수처럼 다가온다. “당신은 당신의 일을 통해 예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셈이죠.”
우리가 사는 세상엔 제국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 있다. 제국 이란 정치·경제·문화 등 외부 조건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의식 속 깊이 뿌리내린 내적 성향이자 욕망이며 동인이기도 하다. 제국은 정도와 양상은 다르나 역사와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상수라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닐 거다. 뱅크스는 제국의 핍박을 일컬어 1세기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새로운 정상이라지만, 제국 이란 늘 ‘오래고 새로운 정상’이다. 국경마저 넘어선 극단적 양극화, 평화를 짓누르는 분단과 분단을 이용한 이익 극대화, 얄팍한 도덕을 가장한 인간 혐오와 차별, 자연계의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무제한적 환경 파괴는 그야말로 제국의 오만과 폭력이 낳은 결과다. 교회가 교회로 살아야 할 곳은 공멸의 제국에 대한 지구의 응수랄 수도 있는 팬데믹 한복판이다. 교회란 무엇이고 선교란 무엇인지를 추궁 받아야 할 자리 말이다.
출판인이 번역자로 나서는 건 일종의 반칙일 수 있지만 어쩌다 보니 이리 되었다. 이번 작업은, 35년간 IVP에서 일하며 1천 종가량의 출판물을 통해 건네고 싶었던 말을 누구에게나 ‘만만한’ 푸블리우스의 이야기 세 편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였다. 우리에겐 고도의 기독교 전문 학자와 신학도 필요하지만, 세상 속에서 거룩한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삶으로 신학하고 신학을 유발하는 푸블리우스가 더욱 필요하다. 하나님에 대한 신학에서 하나님의 일이 나오기에 앞서 하나님의 일과 사랑에서 신학이 나온다. 우리 삶도 그렇다. 첫 직장을 떠나는 마지막 해 마지막 달에 쓰는 글이 역자 후기이자 출판인 후기가 되었다.
예배와 일상과 선교는 나뉘지 않는 하나의 전체다!
신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