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된다? 넘어 정직한 부대낌이 필요하다(성병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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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병혁
책『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김경아 지음
*IVP가 <뉴스앤조이>와 함께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서 '우수 서평'으로 선정된 성병혁님의 글입니다.
자녀 성교육부터 데이트까지 어물쩍 넘어가지 않으려면
"책 내용이, 우리가 한 얘기랑 거의 같아요!"
2년 전, 우리 가정은 모종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나와 아내, 대학에서의 첫 학기를 무사히 마친 큰아들과 동갑내기 교회 여사친, 교회에서 청소년부를 담당하고 계시는 강도사님까지 총 다섯 명이 ‘성’(sex)을 주제로 다섯 번의 모임을 한 것이다.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까지 연령대가 넓고 가족도 포함하고 있어, 솔직한 대화가 오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결과는 예상외로 좋았다. ‘어, 대화가 되는데?’ 싶었다. 기본적인 내용부터 시작하여 꽤 구체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준비했고 각자 대답과 생각을 자세히 나눴다. 건강한 가정을 준비하려면 성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다는 기치 아래 자발적으로 모여서 나눈 이야기들은 재미있었고 깊었다.
며칠 전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 책을 손에 넣은 뒤 아내가 슬쩍 앞부분을 먼저 읽기 시작하더니, 놀란 기색으로 이야기했다. “지난번 속궁합 얘기 나왔을 때 우리가 한 얘기랑 이분이 하신 얘기가 거의 같아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결혼 20년차를 지나고 있는 우리 부부가 계속해서 배우고 변해 가면서 좋아지는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다. 실제로 나도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여러모로 공감하게 되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성 이야기만 특별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자기를 알아가는 것, 자기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것, 부모 혹은 어른과 자녀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이런 과정의 전제와 결과로 사람과 이웃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 등이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라면, 성과 관련된 부분도 나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이야기인데, 성 이야기는 마치 특별한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신비한 영역인 것처럼 다루거나 꺼려 온 건 아닐까.
무엇보다 50대를 지나고 있는 여성과 어머니로서의 저자가 계속 변화하면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주목할 만했다. 저자 자신의 표현대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세대로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떳떳하고 건강하게 인정하고 표현할 수 없었던 과거를 돌아보며 풀어내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다.
나는『너라는 우주를 만나』라는 책에서 셋째를 입양한 이야기로 저자의 삶을 먼저 접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입양 교육 강사 활동을 하다가 더 근본적인 고민을 안고 공부를 시작해 현재 성교육 강사로 활동 중임을 알았다. 이 책에는 이러한 저자의 고민과 공부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게다가 저자는 자신이 직접 공부한 흔적들을 주(미주)와 참고도서 목록으로 공개하고 함께 공부하자고 초대한다. 개인적으로 이미 갖고 있는 책, 장바구니에 담아 둔 책 외에 본문에서 멋지게 인용한 책들 몇 권이 새롭게 장바구니로 들어가 이후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 같다.
교회를 위한 성 기본서
저자가 밝힌 이 책의 의도와 기대가 여럿 있다. 그중 중요한 한 가지는 이 책이 ‘사회와 교회를 이어 주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과학으로 밝혀지고 있는 사실들과 사회 현상을 신앙 안에서 제대로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교회를 돕고자 한다. 성이라는 주제 자체를 교회에서 거북하고 민감하게 반응할 때가 많은데, 이 책에서 동성애와 젠더 등 민감한 주제들까지 다루고 있어 교회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까 싶기도 한다. 하지만 진지하게 책을 읽어 보면 정직한 부대낌과 고민을 피할 수 없다.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나와 우리에게서 소외되고 차별받아 온 이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교회는 성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통과 성경에 기대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에 갇혀, 역사와 해석을 통과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책에서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서로 대립하는 주장들을 비교적 공정하게 소개한다. 그러니 외면하거나 무턱대고 단정하기 전에 성실한 학생의 자세로 이 책을 읽어 보자. 교회를 위한 성의 기본서로 읽으면 좋겠다. 도리어 이 책의 약점이라면 예상보다(?) 너무 얌전하고 조심스러운 글로 읽힌다는 것이다. 조금 더 도발적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아니다. 기본서로 교과서로 사용하라고 했으니 이 정도가 좋겠다. 우리 집도 이 책을 필독서 삼아 아내와 피 끓는 아들 둘과 함께 ‘어물쩍’ 넘어가지 말고 대화의 시간을 좀 가져봐야 하겠다.
‘그래서’ 저자가 자위에 대해서,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 낙태에 대해서, 동성애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한가?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 직접 읽어 보시길 권한다.
뱀발
이 책에서는 등장인물 중 가명을 사용할 경우 이름 앞에 ‘별표’(*) 표시를 해 두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표지의 제목 앞에 별이 달려 있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렇게 생각하며 혼자 배시시 웃어 본다. 그 별은 표지 콘셉트를 위한 조금은 촌스러운 꾸밈 장식일 수도, 중요하다고 표시하는 수업시간의 강조의 별표일 수도, 어쩌면 성과 관련해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여러 주제를 대신하는 만만한 가명 표시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