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들의 교회를 위하여(송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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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지훈
책 『비혼주의자 마리아』 안정혜 지음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교회 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다. “책을 요리하는 엄마”라는 신학책 서평 만화를 「국민일보」에 연재하였고, “친절한 성경 입문 만화”를 「청소년 매일 성경」(성서유니온)에 연재하고 있는 린든(안정혜) 작가의 작품이다. 이제는 독보적인 기독교 웹툰 플랫폼이 된 ‘에끌툰’(eccll.com)에서 33화에 걸쳐 연재되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연재되었는데 그리스도인은 물론 비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비혼주의자 마리아』가 기독 만화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공감을 끌어내는 작품임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뿐 아니다. 『비혼주의자 마리아』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선정하는 ‘올해의 우수만화도서 60종’에도 선정되었다. 작품이 주는 유익한 메시지와 만화적 재미, 즉 기독교 페미니즘이라는 생소할 수 있는 주제를 풀어내는 학습 만화의 본분에 충실하면서도 서사와 인물 관계를 촘촘히 잘 짜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 점을 높이 산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품의 미덕은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그중 이 책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본래 이 작품은 작가의 구상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편집자의 기획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대중적으로 푸는 것에 대한 고민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이는 이 기획은 결국 린든 작가에게 가닿았다. 만만치 않은 주제를 멋지게 작품으로 만든 작가의 공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번역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독창성이 부족한 기독 출판계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한국 저자의 작품을 기획하고 책으로 펴낸 편집자와 출판사의 수고 또한 소중히 기억하고 싶다. 이들은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적실한 메시지를 누구도 함부로 외면하지 못하는 작품으로 내놓았다. 향후 기독교 페미니즘 운동은 어떤 식으로든 『비혼주의자 마리아』가 주는 유익을 반드시 만나게 될 것이다.
‘정말 이런 목사가 있을까?’ 묻기 전에 현실 직시해야…
이 작품을 끌고 가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목회자의 성 범죄다. 책을 읽은 후에도 윤민후 목사에 대해 ‘정말 이런 목사가 있단 말인가’ 하고 반문할 독자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에 나오는 성범죄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실제 성범죄를 참고하여 재구성되었다. 만화라는 매체 성격상 더 순화되면 순화되었지 과장과 비약은 전혀 없다. 실제로 이런 목사가 있는지 묻는 독자들은, 가슴 아프지만 교회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교회 내 심각한 성범죄가 아니더라도, 구태한 성차별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교회가 과연 누구를 위한 공동체인지 되묻게 된다. 여성의 목사 안수는 허용하지 않으면서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는 제대로 징계하지 않는 강약약강을 보이는 모 교단의 이중적 태도는 지금도 여전하다. 이러니 작품에서 다루는 ‘바울은 여혐 분자인가’라는 질문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치열한 토론이 펼쳐지는 ‘김파도의 독서 모임’의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말씀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교회는 말씀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교회가 시대정신에도 한참 뒤쳐져 있음 또한 깨닫게 된다.
『비혼주의자 마리아』를 누구도 함부로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썩 자신이 없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는 말을 사람들이 심하게 믿는 것인지는 몰라도, 읽지도 않고 결론부터 내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남성 네티즌 평점은 10점 만점에 1.87점으로 이른바 별점 테러를 당했다. 그런데 영화를 실제로 본 남성 관람객의 평점은 9.43점이었다. 페미니즘 영화로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안전한(?) 수위라고들 이야기하는 이 영화에 대해, 보지도 않고 혹평을 내뱉는 편견 짙은 남성들의 평점은 어쩌면 그들 스스로에 대한 점수는 아닐까. 내면에 자리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방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련한 일이다.
그럼에도 남성들을 향한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는『비혼주의자 마리아』에 등장하는 ‘상혁’ 같은 인물 덕분이다. 상혁은 스스로 균형잡힌 신앙과 지성을 추구한다고 여기는 젊은 남성이다. 그는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의 마땅한 창조질서라고 자신 있게 외친다. ‘우리 교회’에는 여성 차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상혁이 서서히 변해 간다. 이런저런 선입견을 가진 인물임에도 그는 탐구를 멈추지는 않았고, 결국 더디지만 교회 내 여성 차별에 대한 현실을 인정했으며, 피해자를 돕는 편에 서게 된다. 나는 그의 변화와 용기가 전체 서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느낀다. 이 작품이 마냥 남성을 탓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남성들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밀고 있음을 느낀다.
스스로를 돌아볼 틈 없는 교회 시스템, 위험하다
주인공 마리아의 대사다. 여기서 ‘교육’을 ‘시스템’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쭉 기독교 울타리 안에서 일해 온 나로서는, 이 대사에 무척 공감한다. 윤 목사도 이런 기독교 교육과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어리숙하고 성실했던 윤 목사가 극한 목회자로 변신(?)한 이유는, 헌신을 가장하여 부교역자의 사역 효율을 극대화시키려 한 담임목사의 압박 때문이었다. 광적인 사역주의는 목회자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목회자들과 이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성도들의 결합은 교회를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의 틀 안에 가둔다. 여기에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이나 현 시대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옛 신학이 함께 작동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과거에 교회에서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마리아의 이 대사에 담긴 교회에 대한 작가의 통찰은 정확하다. 신학적 탐구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능숙한 작가이기에 가능했던 통찰이다.
<비혼주의자 마리아> 92쪽 중에서
나는 교회 자체에 큰 기대를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내 딸들이 다닐 교회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비그리스도인과 결혼하면 큰일이 나는 줄로만 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교회 내 성범죄가 더 심각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에, 이제는 딸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이 더 걱정된다. 아이들이 다니는 교회에 나쁜 남성이 없기를 빌어야만 할까. 지금까지 벌어진 교회 내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은 정말로 피해 여성들이 운이 없어서였을까.
나는 내 딸들을 포함하여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살아갈 세상과 교회가 안전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며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확실히 갖고 있다. 그래서 마리아의 마지막 대사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읽기를 바란다.
“인간 왕을 달라고 떼를 썼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끊임없이 하나님 외에 인간적인 권위를 세우려는 집착과 욕망이 큰 것 같아. 하나님이 싫어하셨던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반대하신 인간 왕을 세워 놓고… 그런 하나님 아닌 존재들에게 지배당하는 걸 마치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혼동하고 있는 거지. 우리 모두 교회에서 그렇게 교육받아 왔어. 하나님 아닌 존재들에게 지배당하도록. 그러니까 우리 지배당하지 말자. 필요하면 싸워서라도.” (310-312면)
교회 안의 모든 여성들의 건투를 빈다. 나도 함께 싸우겠다.
송지훈
성서한국 사무국에서 각종 업무를 담당하며 팀원 없는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동시에 불곰PD라는 또 다른 정체성으로 책 팟캐스트 「금요일, 책에 빠지다」를 제작/진행하고 있으며, 최근 「일요책방」이라는 기독 유튜브 채널도 런칭하여 제작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