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사소함이 하나님의 거룩함으로(박종범)
관련링크
본문
글 박종범
책 『오늘이라는 예배』티시 해리슨 워런 지음
“세계 선교는 설거지부터”
이 문장의 출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일상적인’ 예배의 순서인 설교 가운데 들은 수많은 문장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문장을 참 좋아한다. 선교에 관심이 있어서 이른 나이에 신학부에 들어갔고, 지금은 신학대학원에 다니며 세계복음화를 위한 국제로잔운동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러한 활동들 이상으로 내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것이 선교를 위한 기반이자 그 자체로 선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가 복음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선교를 위한 걸음을 걸어간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선’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오늘이라는 예배”를 살아가지 못함에도 주일(일요일)과 주중에 있는 갖가지 예배를 드림으로 ‘예배자’로 불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성과 속’의 갈림길 속에서 과연 누구를 따르고 있는 것일까?
반복되는 사소한 하루는 곧 축복임을
『오늘이라는 예배』의 저자 티시 해리슨 워런은 고든 콘웰 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성공회 신부/사제이다. 개인적으로 고든 콘웰을 졸업한 여러 아시아권 목회자를 알고 있는지라 그들의 사역이 예전과 선교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저자에 대한 소개는 이쯤하고, 신간을 받아들고서 찬찬히 책의 외관을 살펴보았다. 전면 표지에 위치한 “사소한 하루는 어떻게 거룩한 예전이 되는가”라는 물음은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이다. 특별히 나는 저자가 남편 ‘조너선’에게 건네는 이 물음(내 사랑, 내 친구 –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속에 이 책의 백미가 담겨 있음을 확신했다. 흔하디 흔한 안부의 인사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반려자에게, 또한 가족에게 뱉는 이 안부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예전의 주관자이신 주님을 떠올릴 수 있다. 그분은 진실로 매일 매 순간 우리의 마음을 노크하시고, 우리의 삶을 부르시고 계신다.
책의 차례를 보자면 하루를 열한 단계의 과정으로 나누어 침대에서 일어난 순간부터 다시 잠을 청하는 때까지 세세하게 나누어 놓고 있다. 그리고 이 단계들마다 저자는 (친절히도!) 그 단계에 맞는 예전의 순서를 새겨놓았다. 나는 “노동이 기도라는 말”을 되새기며 매 행동을 기도하듯이 해야 한다는 데는 익숙했다. 하지만 나의 일상의 순서들 또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전의 모습임을 친절히 설명해 주는 이 책을 통해 사소한 하루의 연속은 비극이 아니라 그 자체로 축복의 통로임은 분명해졌다. 비록 저자처럼 함께할 반려자와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
나의 하루와 놀랍도록 비슷한 이야기들
나는 이 책에서 4장 “열쇠 분실”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맞다. 처음에는 이 장의 제목이 흥미를 자극했다. 개인적으로도 열쇠 분실은 일상 중에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예전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하는 흥미를 유발했다. 게다가 내용 전개가 놀랍도록 나의 일상과 유사했다. 열쇠를 분실한 것을 안 순간, 어디서 열쇠를 잃어버렸을지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왜 잃어버렸는지 ‘자책’하며, 감출 수 없는 ‘짜증’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 짜증의 끝은 꼭 찾고 싶다는 ‘절박함’에 닿아 있다. 이러한 모든 시도들은 ‘마지막 몸부림’처럼 처절하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는 상황은 ‘절망’으로 다가온다.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와 함께 흐르는 일련의 과정이 깊이 공감되었다. 그리고 “혹시나 이렇게 ‘절망’으로 마치는 것인가?” 하며 페이지를 서둘러 넘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초조함이 향한 종착은 바로 나의 ‘내면’이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오늘 잃어버린 열쇠는 나의 내면이 길을 잃었음을, 내가 잘못된 것에 의존했음을 드러내는 계시의 순간이 된다”(82면). 하루 중 가장 불행하다 여겨지는 시간이 사실은 우리의 하루를 의미 있게, 나아가 거룩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역설인가! 그리고 그 역설이 결국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힘이 되는지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서평을 쓰는 하루가 사소할 수 있다. 여느 날처럼 서재에 들어서서 누르는 데스크탑의 전원, 의자의 좌우에 빽빽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문-신학 서적들 속에서 과연 나는 “거룩하다 일컫음받으시는 하나님”을 떠올릴 수 있을까? 과연 나의 삶은 그분께 드리는 ‘거룩한 예전’이 될 수 있을까?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가 사소하고, 우리의 생각이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을 살아낸다. 그리고 그분 안에 영원한 삶이 있다는 약속은 우리의 하루가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사소한 나날들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일부라는 거룩함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의 사소함이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바뀌는 일은 바로 ‘오늘’ 일어나는 기적이다.
박종범
서울 연신내에 위치한 남북성결교회 초등부 전도사. 서울신대 M.div. 과정 중이며 한국기독교통일연구소 연구조교, 한국로잔동아리연합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