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변한 사람은 작가인 나 자신이다(안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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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만화의 기획과 작업 제안을 받았을 때, 지금 와서 고백하건대 깊이 고민하지 않고 수락했다. 당시 육아로 단절된 작가 경력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뭔지도 몰랐지만 일단 수락하고 본 이 결정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뉴스로 보고,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는 걸 보면서도, 인터넷에 떠도는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말들에 ‘어떻게 여자가 저렇게 험한 말을…?’ 하며 거부감이 먼저 든 것이 사실 이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안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권위 있는 존재이고, 그것이 창조의 질서라고 철저하게 교육받고 철썩같이 믿으며 온순하게 자라 온 나였다. 그렇기에 나 자신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보다 남성에게 감정 이입하는 것이 더 쉬웠다. 내 안에 축적된 남성적 시선 탓에 나 스스로 여성 혐오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 혐오 살인이라고 분명히 느끼면서도 같은 여성으로서 연대하며 안타까워하기보다 방관자처럼 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이 작품에 처음부터 몰입하기란 쉽지 않았다. 기독교에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가 자문해 보아도 도무지 그 필요성을 찾기 힘들었다. 페미니즘의 역사와 연구 자료 등을 살피다가 이게 아니다 싶었다. 내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인권에 대해 이다지도 불타오르지 않는 이유를 돌아보는 게 먼저였다.
가장 먼저, 내 안에 감춰져 있던 불편한 감정을 마주해야 했다. 분노.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어도 ‘여자니까 감수해야지’, ‘어쩔 수 없어, 이게 맞는 거야’라고 스스로 체념해 버렸던 순간, 나를 지켜 주는 남자들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를 깎아내렸던 순간에 올라 오던 분노. 그 분노의 감정을 나는 외면하고 꼭꼭 눌러 담아 버려서 없는 것처럼 여기고 살았다.
내 인생임에도 내가 외면했던, 여성으로서 겪었던 분노의 경험들을 꺼내서 마주보기 시작하자, 기억들이 지뢰처럼 터져나왔다. 3남매 중 장녀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들어 온 성차별적 발언들, 교회에서 겪은 성차별, 눈물 흘리며 혼자 삭여야 했던 성추행들과 데이트 폭력, 그리고 결혼하고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경험한 일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날 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나의 아픔에 내가 이토록 무지했었구나. 나라는 개인이 속속들이 묵살당했었구나. 너무나 놀라고 끔찍이 아팠다.
자연스레 교회에서 함께 자라 온 다른 여성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팟캐스트와 뉴스, 소셜 미디어 등을 찾아보면서 내가 경험한 사건들이 단지 누군가가 당한 특별한 일들이 아님을 알았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들었고, 성범죄를 당했다. 그들 또한 그런 일들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며 입 다문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는 외면하고 있었다. 숨어 있던 목소리들이 팟캐스트와 트위터라는 익명성이 보장된 음지에서, 관심을 갖지 않으면 결코 들을 수 없는 곳에서 외쳐지고 있었다.
내가 외면했던 내 안의 목소리들, 내가 외면했던 여성들의 목소리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외면해선 안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모두가 외면했던 병자와 약자들과 함께하신 분이다. 그런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 나는 얼마나 여성들의 신음소리를 외면 한 채 살았던가. 나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비혼주의자 마리아』를 그렸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매주 돌아오는 마감의 압박도 아니고 막혀 버린 스토리도 아닌, 나도 모르게 30년 이상 젖어 있었던 내 안의 여성 혐오적 시선이었다. 가스 데이비스 감독의 영화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에서 나사로를 살리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는가. 흔히 치유를 행하시는 예수님을 묘사할 때, 자리에 서서 손을 뻗어 병자를 내려다보는 장엄한 모습으로 그리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예수님을 연기한 배우는 나사로 옆에 누워 그와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사로의 고통이 그에게 전가된 듯 아파했다. 그 장면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내 안의 혐오적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진짜 위로는 그 사람 곁에서 함께 아파하는 것이었다.
『비혼주의자 마리아』를 그렇게 그리고 싶었다. 피해자를 내려다보며 관음적으로, 자극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어쭙잖은 답을 주기보다 그들 옆에 누워서 그들이 바라보는 걸 같이 바라보고 싶었다. 성차별적 신학이 정당화된 교회 안에서 남성들에게 권위가 집중되어 있는 현실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바가 맞는지 알게 된다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런 바람이 이 만화에 잘 담겼는지는 독자들만이 아실 것이다. 연재하는 내내 인스타그램 댓글과 트위터 등에서 보여 주신 독자들의 감상과 응원이 완결까지 달려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 만화는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을 그렸지만, 억압받고 차별받는 여성들은 교회 밖에도 많아서인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많은 독자들도 함께 고민하며 보고 있다고 응원해 주었다. 그래서 내게는 이 만화가 더욱 뜻깊다. 이 자리를 빌려 독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 만화로 인해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은 작가인 나 자신이다. 그렇기에 이 만화를 기획하고 멋지게 책으로 엮어 준 IVP 이종연 간사님과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또한 초기 기획 단계에서 헤매고 있을 때,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 준 ‘믿는 페미’에도 감사를 드린다. 함께 기독교 웹툰이라는 오지를 개척하고 있는 에끌툰 작가들에게도 응원과 감사를 드린다. 끝으로 육아와 육묘를 담당해 주고, 마감을 위해 함께 깊은 밤을 지새워 준 동료 작가이자 남편인 김민석 작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여성은 남성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메시지를 이 세상은 너무나 오랫동안 말해 왔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히스테릭하게 묘사하거나 여성이 수렁에 빠졌을 때 반드시 키다리 아저씨 같은 남성을 등장시켜서 여성은 남성 없이는 자립이 불가능한 것이 정상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러나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개척해 나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아름답다. 그 길이 비록 꽃길이 아닌 진흙탕일지라도, 깊은 바다에 잠겨 숨 막히는 듯한 삶을 겨우 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어느 자리에서든, 그곳에서 하루하루 기필코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 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2019년 여름
안정혜
*본 글은 『비혼주의자 마리아』에 실린 작가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