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예전 같지 않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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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2월 10일에 <뉴스앤조이>에 소개된 『신앙이 예전 같지 않아』 저자 김민석 웹툰 작가 인터뷰 “신앙으로 위장한 자기애 벗어나, 삶으로 복음 드러내야”(인터뷰어: 뉴스앤조이 김은석 간사)를 <뉴스앤조이>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진심을 꾹꾹 담아 찬양을 부르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한다. 설교 말씀은 귀에 쏙쏙 박힌다. 많은 사람이 ‘신앙 좋았던 시절’로 묘사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모태신앙인 이성경 씨는 요즘 찬양 한 소절도 진심으로 안 나오고, 눈을 감아도 기도가 안 나온다. 예배 시간에는 자꾸 멍한 상태가 된다. 이렇게 된 지 벌써 2년째다. 성경 씨는 어느 날 만난 전 남자 친구로부터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듣는다. 잃어버린 신앙을 회복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이다.
『신앙이 예전 같지 않아』(IVP)는 주인공 이성경과 전 남자 친구 한요나, 현 남자 친구 사페레 등이 교회 청소년부 시절부터 초기 기독교 시대인 3세기 중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시점 등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판타지 만화다. 신앙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를 찾던 주인공들은 시간 여행 과정 속에서 ‘신앙이란 본디 무엇일까’, ‘기독교는 여전히 이 세상에 필요한 걸까’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국내 유일 기독교 웹툰 사이트인 “에끌툰”에 2021년 9월부터 50회 연재한 웹툰을 21화로 재구성해 단행본을 만들었다.
이 작품을 쓰고 그린 김민석 작가는 기독교 웹툰계에서 독보적인 인물이다. “에끌툰”을 7년간 운영해 왔고, 2013년부터 직접 쓰고 그린 작품 10여 개를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마가복음 뒷조사』·『창조론 연대기』(새물결플러스) 등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독자를 만났다.
『신앙이 예전 같지 않아』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촘촘한 자료 조사를 토대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전개한다. 결론에 이르러 독자들은 신앙의 본질과 교회의 존재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지만, 그에 앞서 한국교회와 우리의 신앙이 실패한 지점들이 때로는 뼈아프게, 때로는 통렬하게 고발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김민석 작가를 만나 그가 어떤 문제의식으로 이번 작품에 임했는지 물어봤다. 2월 2일 경기 파주시 한 카페에서 나눈 대화를 질의응답식으로 재구성해 정리했다.
Q. 책 서두 ‘작가의 글’에 “이 작품은 신앙과 예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결과적으로 작품 저변에는 교회를 보며 부르는 슬픈 ‘애가’가 흐르고 있다. 기독교를 바라보며 느끼는 슬픔의 발원지들을 찾아서, 기록물을 남기는 듯한 마음으로 이야기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라고 쓰신 대목이 기억에 남아요. 『신앙이 예전 같지 않아』는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기획하셨나요?
처음에는 코로나19 시대를 지나면서 예배도 잘 못 드리고 신앙이 예전 같지 않아진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 신앙과 예배에 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예배와 예전, 신앙을 삶으로 살아 내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게 초기 기독교인들의 예배와 삶이었어요. 공부를 하면서 놀랍고 당황스러운 감정이 올라왔어요.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과 너무 큰 괴리감이 들었거든요. 물론 시대적·문화적 차이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 신앙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느꼈어요.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라면서 ‘죄짓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어요.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가장 중요했고요. 물론 그것들도 중요하죠. 그런데 예수님께 구원받았다면서도 우리는 계속 죄를 짓고 살잖아요? 죄책감을 느끼고 회개하고, 또다시 죄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고요. 회개는 기독교 신앙에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마치 그게 전부인양 모든 신앙의 에너지가 죄와 회개에 집중되는 거예요. 그게 지금 한국교회 신앙의 모습이고 제 모습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보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죄를 짓지 않는 차원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며 살 것인가, 주변 이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였죠. 그래서 세례받거나 입교하는 과정에서도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유심히 살피고, 어떤 요건에 도달하지 못하면 세례를 주지 않거나 입교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좀 충격적이었어요. ‘아, 교회의 초기 모습은 이런 것이었구나.’ 그렇게 신앙이 무엇이고 예배가 무엇인지 공부하고 발견해 가는 과정이 되게 슬프더라고요.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니까요. 처음에는 이번 작품에 신앙의 본질에 대한 내용과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려고 했는데,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슬픔이 쌓여 가고, 현재 한국교회가 실패한 모습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기획 의도가 바뀐 거죠.
Q. 스포일러가 될까 봐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한국교회가 지닌 문제점이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더군요. 특히 9화에서 유스티누스가 로마인들의 삶에서 “복음이 소화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것으로 제시한 네 가지(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이성 관계를 원하는 관습 / 주술적·미신적 관습 / 부와 소유에 대한 경쟁적 욕망 / 다른 문화·관습에 대한 혐오와 폭력)가 인상적이었어요. 이 네 가지 모두 근래 한국교회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문제점에 내포된 것들이잖아요. 이번 작품뿐 아니라 지난 작품들에서도 교회가 지닌 문제점을 건드려 오신 것 같은데, 언제부터 교회의 문제점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게 됐나요?
교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하나씩 점진적으로 쌓여 오다가 이번 작품에서 응축된 게 터져 나온 것 같아요. 초기 기독교를 처음 제대로 공부했는데, 현재 한국교회의 모습과 너무 대비되니까 더 아프고 더 많이 보이고….
제 첫 단행본인 『헤븐리 스파이』(하라쉼)에도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인 얘기가 조금 들어가 있어요. 중세 시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엄청난 학살이라든지, 홀로코스트 때 교회가 나치와 손잡았던 일 같은 거요.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되지’ 싶은 사실들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한 번쯤 작품에 다루거나 어딘가에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작품을 새로 만들 때마다 당시에 제가 발견한 문제점을 제가 아는 만큼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Q. 주인공 사페레와 이성경에 대한 설명이 작품 초반에 좀 나오는데요. 두 사람은 『요한복음 뒷조사』(새물결플러스)의 주인공이기도 하잖아요. 특히 사페레는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고 반기독교 방송을 하던 이력이 있는 인물이고요. 얼마 전에 한 인터뷰에서 『요한복음 뒷조사』를 가장 애착이 가는 책으로 꼽으시기도 했던데, 두 캐릭터를 『신앙이 예전 같지 않아』의 주인공으로 가져온 이유가 있나요?
일단 이 기사를 읽는 분들이 『요한복음 뒷조사』를 한 번씩 읽어 보시면 좋겠네요.(웃음) 원래 기획 초기에는 전혀 다른 설정이었어요. 신앙이 예전 같지 않은 두 남녀가 어릴 적 다닌 교회 예배당을 다시 설계하고 지어 가는 내용이었어요. 그중 한 사람은 목회자고요. 두 사람이 지금은 폐허처럼 변한 예배당을 초기 기독교의 예전과 신앙의 본질을 잘 담아낸 공간으로 만드는 이야기를 그려 보려고 자료 조사도 제법 많이 해 놓았죠.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를 끌고 가자니 스토리가 너무 잔잔하고 캐릭터가 잘 살아나지 않더라고요. 스토리 안에서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어렵고…. 고민 끝에 그 설정을 포기하고, 사페레와 성경이를 다시 등장시킨 거예요.
『요한복음 뒷조사』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큰 생각의 전환을 가져다준 작품이에요. 사실 저는 삼위일체라는 개념, 성부·성자·성령께서 개별적인 위격이시지만 상호 내주하신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한복음 뒷조사』 작업을 하면서 상호 내주하신다는 게 무슨 말인지 조금 이해하게 됐어요. 이전까지는 십자가 사건을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버리신 순간, 완전히 단절된 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십자가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나고 있었다는 것, 예수님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라고 하신 말씀이 십자가의 순간에 중단되거나 취소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죠.
그렇다면 하나님은 원래 자기희생적 성품을 지닌 분이라는 건데, 저한테는 그게 많이 충격적이었어요. 전에는 십자가 사건이 아버지가 속죄를 위해 아들을 도살장에 보내는 이미지로 그려졌는데, 사실 십자가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고통당하셨던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의 순간에도 함께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게 된 거예요.
『요한복음 뒷조사』에 대한 애착이 컸던 만큼 사페레와 성경이라는 캐릭터에도 애착이 컸고, 다른 작품에 한 번쯤 더 등장시키고 싶었어요. 두 사람과 함께 『신앙이 예전 같지 않아』의 중심 인물로 나오는 요나라는 캐릭터가 있는데요. 요나도 교회에서 굉장히 큰 상처를 받고 기독교를 떠난 캐릭터예요. 사페레와 비슷한 삶의 정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페레가 요나와 같이 등장해 대화하고 이야기를 엮어 가다 보면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가 만들어질 것 같았어요.
Q. 성경이는 『요한복음 뒷조사』에서는 신학적인 두뇌가 비상한 캐릭터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면모가 드러나지 않던데요?
능력치가 사라진 거죠. 신앙이 예전 같지 않으니까요.(웃음) 이 작품에서는 성경이가 회개하는 캐릭터로 나오기 때문에 성경이 스스로 무언가를 신학적으로 설명하게 되면 안 맞는 것 같더라고요.
Q. 이번 작품에서 가장 본질적으로 문제 삼는 건 기독교인들의 ‘자기애’인 듯해요. 15화 “기묘한 벽”을 보면 기독교를 없애 버리려는 요나가 기독교인들이 “지독한 자기애에 예수님의 외피를 씌워 놓은” 거대한 인형을 세워 놓고 거기로 달려가 기댄다고 꼬집죠. 현실에서 이런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가장 뼈아프게 경험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특별한 경험을 한 건 아니고요. 평소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라본 기독교인들의 모습이나 소셜미디어를 살펴보고 든 생각이에요. 사실 『요한복음 뒷조사』에도 기독교인들의 자기애를 비판하는 내용이 나와요.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형제자매를 사랑한다고 할 때, 정말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랑조차 자기 신앙생활의 일환일 뿐이라고요. 『영생을 주는 소녀1』(IVP)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죠. 기독교인들이 남들에게 선한 행동을 할 때 정말 이웃의 처지에 공감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이라는 기대 심리를 갖고 한다고요. 이건 아이들이 부모나 선생님의 칭찬과 보상을 기대하며 착한 행동을 하는 것과 같은 거잖아요. 물론 아이들은 그렇게 해서 착한 행동을 학습할 수 있겠지만, 어른이 됐다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정말 이웃을 그 자체로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거죠.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 익숙한 많은 사람이 여전히 선행을 ‘내가 좋은 신앙인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그런 면이 있더라고요. 첫 질문에서 이야기한 내용과도 조금 연결이 되는데요. 내가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고 선한 행동을 할까 고민하기보다는 ‘내가 또 죄를 지었구나’ 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다시 회개하는 데 몰두하는 거죠. 지금 돌아보면 그게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길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은 굉장히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죄를 짓고 하나님께 혼나고 회개하는 건 안정감을 주거든요. 잘못을 해도 엄마·아빠한테 혼날 때는 어떤 울타리 안에 있다는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사실 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행동을 바꿔 더 선하고 윤리적인 삶으로 나아가야 하죠. 거기까지 나아가지 않은 채 계속 죄 문제로 돌아가고, 거기에 집착한다는 것은, 나쁘게 표현하면 약간 ‘마조히즘적’인 것 같아요.
신앙을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삶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울타리로 생각하니까 그 안에서 계속 혼나고 반성하는 일만 반복하며 안정감을 누리는 거죠.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을 때 믿을 만한 사람에게 털어 놓고 혼나고 나면 일단 해소가 되잖아요. 이건 건강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물론 신앙인이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과정은 매일 필요하지만, 돌이켜서 울타리 너머로 나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 내지 못한다면, 그건 병적인 게 아닐까요. 제가 볼 때 그 원인은 기독교인들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를 신앙으로 위장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Q. 주옥같은 대사가 많아요. 예를 들어 초기 기독교인 유니아의 대사 “지식이나 가치관보다 우릴 더 근본적으로 형성시키는 건 ‘내가 매일 하는 일’이에요”, “고통에는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라 응답이 필요하다. 교회는 고통에 다가가고, 관여하고, 응답함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야” 한다는 아포리아의 대사, 키프리아누스 주교가 한 “백 가지 선한 일보다 한 존재를 더 존귀히 여기세요”, “우리는 말이 아닌 행동의 철학자들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것에 대해 말하기보다 그것을 살아 냅니다” 등에는 밑줄을 긋고 싶더라고요. 그 밖에도 교회 현실을 꼬집는 깨알 같은 대사가 참 많은데,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시나요?
우리를 형성시키는 건 내가 매일 하는 일이라고 한 유니아의 대사는 앨런 크라이더의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IVP)에서 아비투스(habitus)를 설명한 내용을 참고했고요. “우리는 말이 아닌 행동의 철학자들입니다”는 키프리아누스가 실제로 썼던 글을 인용한 거죠. 평소에 제가 고민하던 내용들이 대사에 많이 반영되는 것 같고요.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이 언뜻언뜻 나오는 건 제가 모태신앙으로 교회 생활을 쭉 해 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게 떠오른 말들을 조금 객관화해서 약간 풍자적으로 표현하곤 하죠. 아내 안정혜 작가가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안 작가가 저보다 기억의 창고가 좀 더 큰 것 같아요.
Q. 쓰고 그리신 작품마다 다양한 신학 서적이 각주로 달려 있더라고요. ‘신학 전문 웹툰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언제부터 신학 서적에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마가복음 뒷조사』 작업을 시작할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신앙의 대상으로 기도하며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과 복음서를 읽어 가면서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이 많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꾸 눈에 밟히는 거예요. ‘분명 같은 분인데 왜 다르게 보일까’ 하는 질문이 생겼고, 내가 믿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복음서에 대한 성경신학자들의 글이 많이 보여서 자연스럽게 찾아 읽게 된 것 같아요. 때를 좀 잘 만난 것 같기도 해요. 2015~2016년부터 국내에 성경신학자들의 책이 많이 쏟아져 나왔거든요. 지금도 나오고 있고요.
Q. 특별히 찾아 읽는 저자나 주제가 있나요?
어떤 질문이 생기느냐에 따라서 매번 바뀌는 듯해요. 복음서의 예수님을 알고 싶었던 때에는 1세기의 역사적인 정황에 온 관심이 쏠려서 그 당시를 다룬 신학자·역사학자들 책을 열심히 봤고요. 좋은 신간이 나오는지 항상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는 편이에요. 이번 작품에서 참고한 책들도 나온 지 얼마 안 된 책들이고요. 요새는 구약과 고대 근동 관련 책을 열심히 찾아 읽고 있어요. 『창세기 뒷조사』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Q. 혹시 그동안 작가님 작품에 대해 시비를 거는 신학자들은 없었나요?
시비 거는 분은 많은데 그중에 신학자는 없었어요. 신학자분들은 오히려 반겨 주셨죠. 어떻게 보면 신학이라는 분야가 대중적으로는 굉장히 비주류이기 때문에, 청년들도 관심을 갖도록 노출해 줬다는 면에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Q. 2013년에 “픽트리성경”이라는 원어 성경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하셨던데요?
당시 저희 웹툰을 갖고 앱(app)을 만들어 보자며 찾아온 팀이 있었어요. 웹툰을 앱으로 개발할 생각은 없었고, 평소 성경 앱에 아쉬운 점을 느끼고 있던 터라 그걸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어요. 당시 한글 성경 앱으로는 문맥을 더 이해하거나 히브리어·헬라어 원어 뜻을 알기 어려워서 아쉬웠거든요. 해외에는 성경에 나오는 단어에 바로 원어를 매칭해서 사전을 띄워 주는 사이트나 앱이 많더라고요. 한국에서도 그런 앱을 만들면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물론 로고스 같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워낙 고가여서 평범한 성도들이 1만 원 대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기획과 디자인을 맡고 그쪽 팀에서 개발을 맡아서 만들게 된 거예요. 그런데 평신도들 보다는 신학생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것 같아요. 입학 시즌인 3월이나 9월에 많이들 구매하시더라고요.
Q.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이가 이런 말을 하죠. “신앙이 예전 같지 않을 때 나는 되돌아가야 할까? 교회는 늘 생각지 않은 곳에서 새롭게 출발했고, 머물러 있지 않았다. 자신이 갖고 있던 사랑의 방식을 과신하지 않고 진정 필요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늘 찾고 배우는 그곳이 교회이기를.” 결국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교회에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 같아요. 혹시 한국교회 안에 새롭게 형성돼야 할 교회의 모습으로 작가님이 그리는 상像이 있나요?
예배 방식이나 공동체의 성격 같은 것은 각기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곳곳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이 바뀔 정도로 교회 공동체가 사회와 이웃과 소통해 나가고 섬기는 여러 행동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교회들이 없는 건 아니죠.
제가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교회가 전도를 안 했다는 점이에요. 기독교인들의 삶이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이어서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살지?’ 궁금해하며 계속 교회로 찾아왔다고 해요. 전도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죠. ‘아, 기독교인은 저런 사람들이구나’ 하고 각인될 정도로 삶이 달랐던 거예요. 지금은 교회와 기독교인이 워낙 많아져서 그런 식의 변화는 어렵겠지만, 기독교인들이 삶으로 보여 주려고 애쓰는 모습이 자꾸 생겨나면 좋겠어요.
Q. 교회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교회를 떠난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게도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까요?
그런 분들은 저와 심정적으로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에끌툰 연재 당시 마지막화에 올라온 댓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어요. “등장인물들의 하나님을 향한 질문이 제가 하나님께 외치고 싶었던 질문이라 감정이입이 되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감동적이더라고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구나, 하나님을 향해 따지고 싶은 마음을 품은 분들이 계셨구나’ 싶었죠. 그런 분들에게는 비슷한 생각을 만화로 표현해 주는 작품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 댓글에 위로를 받았거든요.
Q. 독자들의 반응 중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나요?
요즘에는 독자님들이 응원을 많이 해 주세요. 기독교 콘텐츠 업계가 전체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제가 혹시나 기독교 웹툰을 놓아 버릴까 봐 걱정해 주시는 것 같아요.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응원해 주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댓글을 보면 그런 뉘앙스가 느껴지더라고요. 지금까지 에끌툰을 운영해 오면서 쭉 독자님들과 호흡해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질문이 생기고 생각이 바뀌어 가는 제 여정을 독자님들이 고스란히 함께 걸어 주고 계신 것 같아 힘을 많이 얻어요.
Q.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 중인 『창세기 뒷조사』는 무슨 내용인지 살짝 설명해 주세요.
제가 뒷조사 시리즈로 마가복음·요한복음·요한계시록까지 신약을 계속 다뤘는데, 용기 내서 처음으로 구약을 한 번 다뤄 보려고 해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요한복음 뒷조사』 작업할 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주제가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구약을 읽을 때도 그런 관점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구약을 보면 하나님이 잘 이해되지 않거나 잔혹하다고 느껴지는 내용들이 나오잖아요? 노아의홍수 때 모든 사람을 비롯해 죄 없는 동물들까지 모두 죽여 없앤다거나, 가나안 정복 때 하나도 남김없이 진멸하라고 명령하는 내용처럼요. 특히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한 부분은 당시 인신 제사 풍습을 연상시키는데, ‘하나님이 정말 그걸 요구하셨다고?’라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앞서 『창조론 연대기』라는 작품에서는 신앙과 과학의 관계에 맞춰서 창세기 1장을 중심으로 다뤘다면, 『창세기 뒷조사』에서는 사람들이 구약의 하나님에 대해 갖는 오해와 질문을 중점적으로 다뤄 보려고요. 쉽지 않다는 걸 공부하면서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