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읽고 쓰는 이야기 잔치(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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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경아
책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댄 알렌더 지음
이야기의 힘
우연히 한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 명의 ‘이야기꾼’이 또 다른 세 명의 ‘이야기 친구’에게 어떤 날, 어떤 사람, 어떤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는 방식은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했고, 그 사건이 나와 상관있는 일처럼 느끼게 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거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이야기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결말을 향해 갈수록 우리는 등장인물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응원하기도 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이게 이야기의 힘이다.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이야기에 관한 책이다.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니?”라고 독자를 권유하는 책이다. 책은 2006년 초에 출간되었다. 출간과 동시에 내 손에 들어왔고, 어려운 신학책들과는 달리 내가 읽을 수 있는 쉬운(?) 책처럼 보였다. 그후 이 책은 내 ‘인생 책’ 중의 하나가 되었다. 태평양을 오가는 이사를 두 번이나 했는데도, 이 책은 버려지지 않고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2020년 6월에 개정판이 나오자 그것도 얼른 구해놓았다.
이야기 잔치
작년 봄, 잠깐 스쳐 지나갈 것으로 예상한 코로나 사태는 기약 없이 이어졌다.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닌 데다가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억울해할 수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은 뭘까? ‘그래, 사람들을 모아서 책모임을 하자!’ 누군가와 같이 읽고 싶은 책은 차고도 넘쳤다. 책모임 이름은 ‘호모 레겐스(읽는 사람)’라고 지었다. 페이스북으로 같이 읽을 책을 소개하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온라인으로 책모임을 진행했다.
첫 4개월 동안, 7권의 책을 18개 그룹에서 읽고 나누었다.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 4부에 보면, 저자가 어느 수련회에서 만난 엘리자베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호모 레겐스’는 엘리자베스가 표현한 바로 그 ‘이야기 잔치’였다. 엘리자베스는 잔치야말로 성경의 핵심 주제라고 했는데, 나를 비롯한 호모 레겐스 멤버들은 책을 매개로 이야기 잔치를 벌였다. 우리는 “네가 어디 있었느냐?(과거) 네가 어디 있느냐?(현재) 네가 어디로 가고 있느냐?(미래)”(209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호모 레겐스는 코로나로 갈 길 몰라 헤매는 우리를 다독여준 이야기 공동체였다. 다음번 호모 레겐스에서 『나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려고 했는데, 때마침 IVP에서 독후감을 써 달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다시 책을 정독했다. 처음에 왜 이 책에 매료되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2006년이 내게 어떤 해였는지 떠올리니 내가 왜 이 책에 꽂혔는지 이해가 되어서 웃음이 났다. 또, 이렇게 어려운 책을 그때 어떻게 이해한 건지 신기하기도 했다. 2006년의 나는 ‘내가 어떤 이야기 속에 떨어진 거지? 내 이야기의 결말은 뭐지?’ 같은 궁금증에 혼란했던 것 같다. 별거에 들어간 친정 부모님으로 인한 속앓이, 계속 약을 먹고 살아야 하는 신세, 능력도 없으면서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고단함, 게다가 전업주부가 아닌 내 재능은 무엇인가 하는 좌절 등등, 이런 생각들로 내 마음에는 쉼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나는 내 인생에서 이게 늘 궁금했다.
내가 저자인 댄 알렌더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댄은 말했다. “나는 배고픈 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254쪽). 금식의 필요와 중요함을 이야기하려고 하면서도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와아, 이런 삐딱함이라니! 딱 내 스타일이야!’ 그는 “그저 편안한 기독교적 수식어들로 가득한 미적지근한 이야기나 쓰는 것으로 만족”(241쪽)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겪는 어려움의 현장에 재빠르게 예수님을 투입하지 못했다. 나는 왜 믿음이 없는가, 주눅이 들었다. 믿음도 성적처럼 자꾸 비교했다. 그런데 저자는 우리가 버려지고 배반당하고 상실과 습격을 경험하는 현장에서 “예수님의 사랑 어린 얼굴이 위로와 좋은 기분을 가져다주는 것을 상상하며 그 과정을 마감해 버려서는 안 된다”(231쪽)라고 말한다. 대신 자신의 기억들을 기꺼이 곱씹어야 하며, 그 과거의 사건들의 의미를 충분히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뇌와 분노를 품고 하나님과 씨름하라고 부추긴다. 그 자리에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분노로 울부짖으시며, 우리를 부르셔서 자신의 검을 받아들고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들과 맞서 싸우게 하신다”(233쪽)고 말한다. 언짢은 기분에 입에 발린 종교적 언어로 밴드나 붙여주는 저자가 아니라서 좋았다.
비극을 읽어라
“당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분명 그 저자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저자를 사랑한다면, 그분이 당신의 인생을 위해서 그 인생 속에 써 넣으신 이야기도 사랑할 것이다”(18쪽). 진짜 그렇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 저자를 좋아할 수 없는 법이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에 미친 모든 영향력들을 한데 섞어서,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는 주제부가 있는 교향곡을 만들어 내신다”(93쪽)고 했는데, 사실 하나님이 나를 공동 저자로서 내 인생에 불러주셨다는 사실이 감사로 다가오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그때는 내 이야기도, 저자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야기에 참여하게 하신 것은 엄청난 겸손이고, 그분은 우리가 이야기를 쓰기 바라실 뿐 아니라 계속 써 나가도록 응원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사실, “우리를 공동 저자로 인정하시며 우리가 그분과 더불어 쓴 내용에 완전히 매혹되신다”(39쪽)는 그분의 선의(善意)를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저자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극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나를 찾아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혼, 성적 학대, 다른 사람의 배신, 실직, 부부간의 갈등, 자동차 사고, 질병, 의미나 희망이나 기쁨의 상실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들여다보는 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굳이 다시 그걸 곱씹어 볼 필요가 있나 하며 우리는 잽싸게 신앙적인 좋은 말 대잔치로 도피한다.
그러나 “비극은 우리의 마음이 행동하도록 뒤흔든다. 모든 열정은 고난이라는 기반 위에서 세워지고, 위기를 통해 성숙하며, 고난에 직면해서 내리는 결정에 의해 특징지워진다”(105쪽). “어떻게 고난의 물줄기가 우리의 영토를 뚫고 들어와 우리 성품의 윤곽을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도 바로 과거와 현재에 일어난 우리의 비극 한가운데서다. 무엇보다 비극이야말로 우리의 정체성과 성품을 형성한다”(106쪽). “하나님은 샬롬을 사용하시듯, 고통과 상한 마음도 사용하신다”(152쪽). 이걸 깨닫는 게 신앙생활 아닐까.
쓰라
저자는 3부에서 무엇이든 일단 쓰고 뭐든 종이에 적으라고 힘주어 말한다. 현재 내가 거부하는 건 무엇인지,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지, 내 꿈을 실현하는 데 유익한 것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 이런 것들을 통해 결국 하나님에 관한 어떤 부분을 드러내고 싶은지 종이에 적으라고 한다.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육아 중에, 비록 띄엄띄엄일지라도, 나는 일기를 썼다. 신세 한탄으로 끝나는 글이 대부분이었지만 쓰는 시간만큼은 나를 가장 나답게 해주었다. 무작정 그렇게 했던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 같아 새삼 놀랍다.
잘 쓰기 위해서는 함께 이야기 잔치를 할 친구,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의 이야기를 곰곰이 들어 주고 우리가 좀 더 온전하고 깊이 있게 이야기를 쓰도록 도와줄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 이야기에 단순한 피드백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경축할 공동체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완전히 운이 좋았다. 남편의 진로에 따라 옮겨간 낯선 곳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좋은 친구들을 붙여주셨다. 내가 내 이야기를 잘 쓰도록(live) 격려하고 경축해주는 사람들을 만났고, 나중에는 실제로 내 이야기를 잘 쓰도록(write) 돕는 문우들을 만났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자기 인생의 비극을 읽어 내는(호모 레겐스) 것을 넘어 직접 쓰는 공동체(호모 스크리벤스)를 만들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비극을 읽어 내고 쓰는 이야기 잔치를 열망하는 분들, 도대체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지 자기 인생이 낯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보너스
책을 읽는 동안 잠들어있는 머리와 무디어진 마음을 죽비처럼 내리치는 구절들을 만났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큰 소득이다.
-비극이 우리의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언제나 비극보다 큰 존재다. (34쪽)
-모든 선택의 저변에는 갈망이 있다. 우리가 언제, 무엇에 대해 ‘예’라고 말할지를 결정해 주는 것이 바로 그 갈망이다. (86쪽)
-어린아이가 신발끈 묶는 것을 도와주는 일은, 영광을 향해 거룩하게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101쪽)
-우리는 일관되게 일관성 없는 모순덩어리다. (134쪽)
-고뇌와 분노의 제거는 치유의 표시도 아니다. 고뇌를 제거하면 자비도 제거된다. 분노를 지워 버리면 정의를 갈망하는 허기도 없어진다. (231쪽)
-기도는 흥정이다. 하나님과 타협을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미래의 이야기와 관련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타협하기를 바라신다. (234쪽)
-우리의 쓰라린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보기 전에는, 절대로 그 이야기를 감싸 안을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된다 해도, 슬픔은 떠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고통을 통해 누군가가 유익을 얻는 것을 보면서 그 고통에 소망이 더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의 과거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244쪽)
김경아
말하고 글 쓰는 일을 한다. ‘진로와 소명 연구소’에서 성교육 강사로 일하고, ‘너라는 우주를 만나’,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