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살던 세계, 그들이 만든 세계 '바울의 사회적 세계'(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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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영호
책 『1세기 기독교와 도시문화』웨인 믹스 지음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들”이라는 3인칭과 “세상”이라는 말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방송사 홈페이지에는 “드라마 제작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소개되어 있다. 밖에서 보고 막연히 추측하는 것과는 그들의 세상이 사뭇 다를 수 있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웨인 믹스(Wayne A. Meeks) 저 『1세기 기독교와 도시 문화』의 원제는 The First Urban Christians다. 처음 도시 그리스도인들! 이 사람들을 알기 위해 그들이 살던 세계를 들여다보자는 제안을 하는 책이다. 부제는 “The Social World of the Apostle Paul”, 사도 바울의 사회적 세계다. 이 부제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초기 기독교의 사회적 세계’라는) 용어는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초기 기독교 그룹들의 환경을 가리킬 뿐 아니라 그들이 인식한 세계와 그들이 자신들만의 특별한 언어와 다른 의미 있는 행동을 통해 나름대로 형태를 만들어 나가고 의미를 부여한 세계를 가리킨다. 하나는 그들이 로마 제국 안에 살고 있던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 자신이 건설한 세계다. 우리는 이제 바깥의 시각, 바울계 그룹들이 살던 환경(ecology)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삶을 형성한 의미 있는 여러 행동 패턴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p. 40)
저자의 목표는 두 가지다. ‘그들이 살던 세계’를 소개하고, ‘그들이 만든 세계’를 규명하는 것이다. 전자를 ‘바울의 세계’, 후자를 ‘바울의 세계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목표가 두 번째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톰 라이트(Tom Wright)는 웨인 믹스의 이 책을 극찬하면서도 바로 이 지점에서 아쉬움을 표명한다. 라이트는 자신의 바울 이해의 목표를 바울이 구축한 세계관을 파악하여 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라이트는 믹스가 자신과 같은 목표를 설정했으나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인해서 그러한 논증을 더욱 발전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1)고 한다. 라이트는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제3부를 믹스가 The First Urban Christians의 6장에서 제시한 밑그림을 따라서 기획했다고 했다.2)
라이트의 믹스 읽기에 동의한다면, The First Urban Christians를 초대 교회의 배경을 소개하는 책으로 이해하는 독해의 한계를 볼 수 있다. IVP에서 붙인 번역서의 제목은 그런 한계를 일정 정도 공유하는 것 같아 아쉽다.
톰 라이트는 ‘저평가’되었다고 아쉬워했지만, 믹스의 이 책이 끼친 영향을 보면 놀랍다. 2009년에 After the First Urban Christians: The Social-Scientific Study of Pauline Christianity Twenty-Five Years Later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에서 보는 대로 믹스의 책이 출간된 지 25년째 되던 해, 그가 제기한 주제들을 발전시킨 연구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책의 구성은 The First Urban Christians를 그대로 따르면서 각 장의 논의들이 얼마나 풍성하고 다양한 연구들을 생산해 냈는지를 소개한다. 그 책만 펼쳐 보아도 The First Urban Christians의 지대한 영향을 알 수 있다.
방법론적 신중함
믹스가 ‘바울의 세계관’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돌진해 나가지 못한 것은 그의 개인적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신중함은 그의 학문적 방법론의 핵심적 미덕이다. 이 책은 역사, 사회(과)학 (sociology 혹은 social science), 신학 세 영역에 걸쳐 있다. 서구의 많은 성서학자가 그렇듯이, 믹스의 학자적 자의식은 신학자보다 역사가에 가깝다. 그가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두 영역은 역사와 사회 과학이다. 역사는 유일회적으로 일어난 과거의 일을 다루고, 사회 과학은 일반적인 이론을 지향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사회 과학의 일반화를 경계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론으로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사회 과학을 역사 연구에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피터 브라운(Peter Brown)의 유명한 말을 인용한다. “그들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혼인합니다.”
역사와 사회 과학이 신중하고 사려 깊은 동거를 이룬 후에도 바울의 세계에 대한 연구는 또 하나의 잠재적 원수를 의식해야 한다. 신학이다. 믹스의 방법론이 신학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았기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회사가의 눈에 있는 티를 제거하려는 신학자는 먼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조심해야 한다(p. 30).
역사학자나 신학자들이 사회학이나 문화 인류학 연구에 흔히 하는 비판은 환원주의라는 것이다. 이는 한두 가지 시각으로 전체를 설명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믹스는 신학적 개념 한두 개(예를 들어, 영지주의, 율법주의 등)로 복잡다단한 상황을 설명하려는 것 역시 신학적 환원주의일 뿐이라 말한다. 사회학적 환원의 예는 많다. 신약학자 중에 브루스 말리나(Bruce Malina) 같은 이들이 지중해 세계 문화의 독특성, 이를테면 “명예와 수치” 같은 개념으로 텍스트에 적용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갈등 이론으로 본문을 설명하려는 시도들, 막스 베버 이론의 적용 또한 이런 환원주의에 빠지는 흔한 예다. 『기독교의 발흥』(The Rise of Christianity)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는 자신의 연구가 환원주의적임을 노골적으로 인정하는 예외적 학자다.
이러한 저작들과 믹스의 책을 비교해 보면 방법론적 신중함이 이 책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침묵으로부터의 논증은 조심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영역이다”라는 표현이 거듭 나온다. 로드니 스타크의 거침없는 단정에 익숙한 독자라면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믹스의 이 책은 역사와 사회 과학과 신학이 서로를 과도하게 침해하거나 일방적으로 압도하지 않는, 신중한 동거와 조율을 통해 바울의 세계관에 접근하려는 시도의 모범이다.
이 책의 서문은 이런 방법론적 논의를 잘 소개한다. 1장은 바울계 기독교의 도시 환경을 소개한다. 제정 초기 로마 제국의 도시들은 “고대 세계”라는 일반적 용어로 불리기에는 너무도 독특하고 역동적인 세계였다. 예를 들면, “이동성”이라는 제목으로 믹스는 지리적 이동성(여행)과 사회 계층의 이동(계층 상승)을 논하는데, 당시의 도시들은 고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활발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계층과 공동체의 사회적 모델
믹스의 이 책이 나온 1983년은 초기 기독교에 대한 사회사적 연구의 르네상스라 할 만한 시기였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저지(E. A. Judge), 독일의 타이센(G. Theissen), 미국 예일 대학의 말허비(A. Malherbe)와 믹스가 대표적 논자들이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대체로 빈곤층에 속해 있었다는 오랜 ‘옛 합의’(old consensus)를 뒤집고, 최상층과 최하층을 제외한 다양한 계층이 교회 안에 존재했다는 ‘새 합의’(new consensus)를 형성했다. 이 책의 2장은 새 합의 진영의 핵심적 주장이다. 이 견해는 한동안 광범위한 지지를 얻다가 2000년대 이후로 거센 도전을 받았다. 이 도전은 양 진영의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졌으며, 그 덕에 지금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 계층 문제에 대한 꽤 선명한 통찰을 갖게 되었다.
3장에서는 ‘에클레시아’라고 불리는 바울 공동체의 특성을 다룬다. 바울이 사역하던 교회의 사회적 구성, 조직이나 리더십 등이 당시 사회의 다른 모임들과 부분적으로 유사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그 후보들로 회당, 가정, 자발적 조합, 철학 학파를 꼽고 차례로 살핀다. 이 모델들은 바울 공동체의 다양한 사회적 면모를 밝히는 데 상당한 공헌을 했으며, 각 모델의 적합성과 장단점에 대한 풍성한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바울의 교회들은 쿰란 공동체에 비길 만큼 강력한 결속력을 보였는데, 그러면서도 광야로 가서 은둔 생활을 하지 않고, 도시의 일상생활을 계속해 나갔다는 것이 인상적인 특징이다. “바울계 그룹이 남긴 문헌은 강한 내부 결속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조치와 외부인들이 널리 받아들일 수 있는 정상적 소통을 지속하려는 의도 사이의 긴장”(p. 271) 을 보인다. 세계에 대한 이런 독특한 인식은 믹스가 자신의 연구 초점을 “도시”에 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사회적 배경에서 사회적 세계로
이런 독특한 인식을 가능하게 한 힘은 ‘신학적 언술’뿐 아니라, ‘의례’(ritual)에 힘입은 바 크다. 5장에서는 세례, 주의 만찬을 포함하여 우리가 ‘예배학’이라 부를 만한 요소들, 그리고 공동체의 독특한 자의식을 형성하게 만든 관행들을 탐구한다. 4장에서는 교회의 정치 조직(governance)을 다루고 있는데, 권위의 소재를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데 그치고 있어,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1장은 “바울이 살던 세계”, 6장은 “바울이 만든 세계”를 제시하고, 2-5장은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5장까지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6장에 와서 전체 논의가 바울의 세계관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의 신중함 때문에 많은 신학적 주장을 펼치지는 않지만, 독자들은 믹스가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톰 라이트의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비롯한 다른 바울 신학 논의들을 평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믹스의 이 책 이후에 발전된 논의는 나의 책 『에클레시아』(새물결 플러스)와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IVP, 근간)에서 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쉽지 않은 책을 탁월하게 번역해 낸 박규태 목사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대한 관심을 계속 환기시키며 우리 신앙이 출발한 자리로 초대하는 IVP의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주
1) 톰 라이트, 박문재 옮김,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 상』 (서울: CH북스, 2015), p. 84.
2) N. T. Wright, Paul and His Recent Interpreter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5), p. 259.
박영호
1세기의 문서인 신약성서가 21세기에도 갈 길을 보여 준다고 믿는 ‘말씀의 일꾼’(눅1:2). 부산 대학교 영문과,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대원과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석사, 시카고 대학교 인문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예일 대학교 재학 시 믹스 교수와의 만남은 이후 학문의 중요한 방향을 형성했다, 2005년에 시카고 지역에 약속의 교회를 개척해 10년 동안 섬겼고, 2015년에 귀국하여 한일 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경건 실천 처장으로 일했다.「한국 기독교 신학 논총」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포항제일교회 담임 목사, 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 원장으로 한국 교회를 섬기고 있다. 지은 책으로 『다시 만나는 교회』(복있는사람), 『에클레시아』(새물결플러스), 『빌립보서』(홍성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