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서평

집을 생각하며(백지윤)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링크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본문

글 ​백지윤(역자)

책 미로슬라브 볼프, 매슈 크로스문『세상에 생명을 주는 신학』



84b17a5cf0872cec3bb56550b8bf2cba_1605488660_71.jpg

기독교는 세상을 정말 살 만하게 하는가



올 여름이 코비드 격리로 평생 기억될 게 분명하다면, 개인적으로는 집 레노베이션 공사를 했던 지난해 여름 역시 평생 잊기 힘들 것 같다. 그 즈음 작업했던 볼프와 크로스문의 신간이 이렇게 예쁜 책으로 만들어져 나왔다. 표지 디자인,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대략 한 해가 지난 지금,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결국 불안 장애까지 겪은 끝에 이제 나의 집은 아직 자질구레한 마무리가 필요한 구석들이 눈에 밟히기는 해도 나름 나의 색깔을 입은 익숙함과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 되었다. 사실 나는 집, 사람이 사는 공간에 무척 관심이 많은데, 집은 우리의 취향, 생활 양식, 가치관 등을 고스란히 반영하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구성되고 디자인된 공간이 역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나 일상의 구조,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로 살아가느냐 하는 우리의 정체성과 의미까지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는, 문자적인 수준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집 문제와 씨름하던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심오한 차원의 씨름 대상이었던 이 책에서도 집이 매우 핵심적인 은유라는 것이다. 볼프와 크로스문이, 진정으로 번영하는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성취되는가에 대한 질문이 기독교 신학의 중심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자신들의 답으로 제시하는 그림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 된 세상이다. 흠, 하나님의 집이 된 세상이라니. 문득, 저녁 무렵 동산을 거니시던 하나님이 떠오른다. 집과 산책.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하나님과 공유하는 세상. 두 저자의 창의적 비전이 기이한 연상 작용과 맞물려 가져다주는 가슴 설레는 이미지이자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볼프와 크로스문은 이렇게 하나님 나라, 성전,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 새 창조 등으로 종종 표현되던 동일한 개념을,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거하기에 적합한 집’이라는 친근하면서도 심오한 그림 언어로 제시한다.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벽돌 벽, 한쪽 벽면을 채운 낮은 책장 위로 걸린 밝은 색감의 액자들, 나무틀에 필라멘트 전구 줄을 칭칭 감아 내려 만든 러스틱한 전등,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파닥거리는 새들의 바쁜 날갯짓을 보며 매일 경이감과 감사가 벅차오르는 파티오라는 나만의 공간까지. 나의 색깔을 덧입은 이 집이,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과 평안으로 가득 넘쳐 풍성히 나뉘는 성령 충만한 장소이기를 바란다. 거꾸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번영하는 삶에 대한 단 하나의 참되고 보편적인 비전이 저마다의 진정성과 다양성을 억압하지 않고 각 시대, 사회, 집단, 개인마다 개별적이고 특정한 방식으로 ‘즉흥 연주’될 수 있어야 하겠다는 저자들의 바람 역시 많은 이에게 의미 있게 들려지고 다가가기를 바란다.

28bac76335c7b0576599804a75ff7024_1605575439_35.jpg


 

아무쪼록 저 아름다운 표지의 책이 꽂힌 매력적인 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더불어 좋은 삶의 체험적 삼중 구조(tripartite heuristic structure)랄지, ‘텔레이오스’(teleios)의 이중 의미랄지, 혹은 예기적으로(proleptic) 번영하는 삶의 특징이 고난받는 사랑일 수밖에 없는 이유 등에 대해 마음 맞는 이들과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모임도 많아지면 좋겠다(코비드 상황이 빨리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세생신』 역자 식으로 말해 본다). 




백지윤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술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캐나다 리젠트 칼리지에서 기독교 문화학을 공부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살면서, 다차원적이고 통합적인 하나님 나라 이해, 종말론적 긴장, 창조와 재창조, 인간의 의미 그리고 이 모든 주제에 대해 문화와 예술이 갖는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손에 잡히는 바울』『알라』『땅에서 부르는 하늘의 노래, 시편』『이것이 복음이다』『모든 사람을 위한 신약의 기도』『오늘이라는 예배』『BST 스가랴』『일과 성령』(이상 IVP) 등이 있다.





IVP 2020-11-16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