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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값싸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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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 은혜란 무엇인가 (김형태)
글_김관성(울산낮은담교회 담임목사)


 

강단에 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은혜’라는 단어를 매주 사용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단어를 얼마나 알고 사용해 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래 설교할수록 이 단어는 점점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무게를 앗아갑니다. 이 책은 그 무뎌진 감각을 다시 일깨웁니다.

  저자가 먼저 하는 일은 우리가 이 말을 얼마나 헐값에 쓰는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회의가 길어지면 누군가 손을 들고 말합니다. “그냥, 은혜대로 합시다.” 저자는 이 표현이 성경적 은혜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합니다. 원칙을 피하기 위한 수사로 은혜를 쓰는 것, 그것이 바로 본회퍼가 말한 ‘값싼 은혜’입니다. 히틀러에 동조한 독일 교회를 향해 던졌던 이 비판을 저자는 오늘 한국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불편하지만 피하지 않습니다. 그 정직함이 이 책을 단순한 신학 해설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진지한 질문으로 만듭니다.


  이 책의 학문적 토대는 바클레이가 제시한 은혜의 여섯 가지 ‘극대화’ 개념입니다. 초충만성, 단일성, 우선성, 비상응성, 유효성, 비순환성. 그런데 저자는 이것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일성과 비순환성은 성경적 은혜와 거리가 있다고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만 지닌 분이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은혜는 아무 기대도 없는 일방향 증여가 아니라 감사와 응답을 요청하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스승의 이론 위에 서 있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바울 본문과의 정합성을 따라 직접 판단합니다. 이 지점이 이 책의 학문적 신뢰를 높여 줍니다.


  바울의 은혜 신학의 핵심으로 저자가 지목하는 것은 ‘비상응성’(incongruity), 곧 자격이 전혀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바울의 자기 고백을 따라가 보면 이 개념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 중에 가장 작은 자”(고전 15:9)에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엡 3:8)로, 그리고 마침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 1:15)로. 이 고백이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은혜를 더 깊이 알수록 자신의 자격 없음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의 ‘가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이 아니라 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역설입니다. 저자는 이를 ‘역방향 이력서’라고 표현합니다. 세상이 자랑할 것을 쌓는 이력서가 아니라, 약함과 고난의 목록을 쌓아가는 삶. 그러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은혜를 아는 삶은 용서를 붙들되 제멋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동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값을 매길 수 없고 결코 갚을 길도 없는 은혜를 받은 우리는,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우리의 전 생애에 걸쳐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25, 33쪽). 이 문장들이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가르는 칼날입니다.


  아울러 이 책이 조용히 교정하는 오해가 또 하나 있습니다. 은혜를 아무 응답도 기대하지 않는 일방향 행위로 이해하는 경향입니다. 저자는 문화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연구를 끌어들여 고대 사회의 선물 문화를 소환합니다. 고린도후서 8-9장의 마케도니아 교회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로, 교회의 나눔이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의 감사가 다시 하나님께로. 은혜와 선물과 감사가 모두 같은 어근 ‘카리스’에서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래서 은혜는 순환합니다.


  짜장면 한 그릇에 팔려 처음 교회에 나오게 된 신앙 입문기, 신대원 시험 전날 차 안에서 고린도후서 5:15을 읽다 울었던 아내 이야기. 이 이야기들은 신학 개념을 장식하는 예화가 아닙니다. 진리를 선명하게 비추는 창입니다. 어렵지 않지만 얕지 않고, 목회적이면서도 지적인 깊이를 잃지 않습니다.


  에필로그에서는 한참을 멈췄습니다. 시각장애인 어머니가 생의 마지막 힘을 다해 한동안 신앙에서 멀어진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셨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듯이 적어 내려간 그 문장은 “모든 것이 은혜였소”였습니다. 그 문자가 찬양 가사인 줄도 몰랐던 아들은 장례식장에서야 처음 알게 됐다고 합니다. 이 장면 앞에서 저는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저자가 책 첫머리에서 했던 말이 겹쳐 들렸습니다.


  “은혜는 단순히 감동과 연결된 일시적인 감정이나, 우리 영혼을 위로하는 특정한 경험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안에서 실제로 역사하며 반드시 효력을 미치는 능력입니다”(23, 121쪽).


  이 책은 은혜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은혜를 고백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성취입니다. ‘은혜’라는 말을 오래 써 왔지만 정작 그 의미를 다시 묻고 싶은 분들께 진심으로 권합니다. 꼭 한 권 사서 읽어 보시기를 간청합니다.










 
IVP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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