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절기를 지키면 절기가 우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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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상의 주요 절기가 다가올 때마다 소셜 미디어에서 절기를 대하는 다양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는 각자가 속한 교단과 그 신학적 성향, 그리고 개인의 신앙관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어떤 이들은 절기를 맞아 구원 역사에 다시금 은혜를 받고 자신을 돌아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투적으로 절기 무용론을 주장하며 예전과 교회력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든 개인의 자유이지만, 무엇이 ‘바른’ 예배인가를 따지는 논의에만 머무른 채 그것을 어떻게 풍요롭게 누릴 것인가를 묻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로 인해 안타깝게도 신앙의 깊이를 스스로 좁히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복음주의 성향의 미국 IVP 출판사가 ‘시간의 충만함’(The Fullness of Time)이라는 이름으로 절기 시리즈를 기획해 여러 권의 책을 펴낸 것은 의미 있는 시도다. 성탄절, 부활절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절기뿐 아니라 대림절, 주현절처럼 그리 익숙하지 않은 절기도 빠짐없이 다루었다. 복음주의 교회들이 간과해 온 절기의 형성적 힘을 다시 조명하고, 좁아진 신앙의 시야를 넓혀 풍성한 기독교 전통과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한국 IVP는 이 시리즈 제목을 ‘교회의 시간’으로 옮겼다.)
절기의 의미와 힘을 보여 주는 책
웨슬리 힐이 저술한 『부활절, 기뻐하며 나아가다』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미국 일리노이주 에번스턴(Evanston)에 위치한 이매뉴얼 루터교회의 2014년 이스터 비질(Easter Vigil, 부활밤 예배)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개릿 신학교에서 박사 과정 중이었고, 예배 역사학의 권위자인 프랭크 센(Frank C. Senn)이 목회하던 이매뉴얼 루터교회가 절기를 어떻게 지키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주요 절기가 있을 때마다 그 교회를 찾아, 책으로 배운 예전이 실제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관찰하곤 했다.
여러 절기를 경험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이스터 비질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토요일 늦은 밤, 기숙사를 나서 셰리든 로드(Sheridan Road)를 건너 교회에 도착했을 때, 입구의 모닥불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가운데에는 프랭크 센이 루터교 목회자의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채 서 있었다.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 자리는 깊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성금요일의 침묵이 토요일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문답과 찬양이 이어진 뒤, 사람들은 촛불만이 밝혀진 어둑한 본당으로 들어갔다. 인공 조명 없이 어둠 속에서 이어지는 예전을 경험하는 동안, 그 시간은 내게 죽음과 부활 사이의 문지방을 넘어가는 듯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말은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마음속에는 사순절 동안 듣고 보고 배운 모든 것이 하나로 모아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고난받으신 주님에 대한 감사와 부활의 아침을 향한 열망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부활절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신자의 삶을 형성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이 글에서 이렇게 긴 개인적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기독교 전통 속의 절기는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기도와 찬송, 말씀과 의례를 통해 신자의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것으로, 결국 우리의 정체성과 신앙을 형성하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을 담담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절기를 통해 몸에 새겨지는 신앙
미국 웨스턴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이자 성공회 사제인 웨슬리 힐(Wesley Hill)은 학자적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결코 학문적 차원의 글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교회 안에서 삶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절기의 의미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글을 풀어낸다. 앞서 내가 언급한 이매뉴얼 루터교회의 이스터 비질에 대한 기억처럼, 저자는 더럼 대성당에서의 인상적인 부활밤 예배를 생생하게 그려 냄으로써 읽는 이를 단숨에 그 현장으로 데려간다.
이 책은 부활을 하루의 사건이 아니라, 교회력 속에서 살아 내는 하나의 ‘시간’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부활 절기는 사순절 뒤에 이어지는 부속 기간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부활절은 40일간의 사순절보다 더 긴 50일간의 절기다. 저자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바탕으로, 부활의 기쁨이 어떻게 일상 속에서 지속되고 확장되는지를 보여 주며, 절기를 통해 신앙이 어떻게 몸에 새겨지는지를 차분하게 제시한다.
북미의 저명한 예전학자 게일 램쇼(Gail Ramshaw)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절기를 지키면 절기가 우리를 지킨다.”
매년 돌아오는 절기, 교회의 시간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구원사의 의미가 우리의 삶과 몸을 통해 다시 형성되는 시간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고난과 부활의 예배를 새롭게 경험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이 책을 주목해 보라. 이 책은 그 길로 우리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초대한다.
글_문화랑
고려신학대학원 예배학 부교수. 저서로 『예배학 지도 그리기』(이레서원), 『미래 교회교육 지도 그리기』(생명의말씀사)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