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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는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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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 이것이 바울이다(톰 라이트|최현만 옮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유홍준 교수는 이 문장을 문화유산에 대한 그의 깊은 열정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사용했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보이는 유적의 가치는 그 정도가 전부가 아니라고 그는 외쳤다. 이는 눈에 보이는 시각적 아름다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자, 그 이면에 흐르는 위대한 시대정신을 함께 보자고 손을 내미는 초대장이었다.


이 같은 열정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람들에게 외치는 신학자가 있다. 바로 톰 라이트다. 그는 사람들이 성경을 그저 눈으로만 읽으며 “안개가 자욱한 구름 사이를 헤매는 것”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다. 톰 라이트는 독자들을 기독교의 웅장한 조망이 펼쳐지는 자리로 데려가, “산봉우리와 빙하와 절벽과 바위들이 선명하게 우뚝 서 있는” 풍경을 보여 주고자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한 청년의 곁으로 데려간다.


이 청년은 야웨를 모욕하는 이교도들과, 그 이교도들의 방식에 물들어 버린 이스라엘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분노와 갈망이 동시에 끓어오르는 인물이다. 그는 야웨가 온 세상의 참된 왕이 되시는 그날을 꿈꾸며, 그 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그 청년의 곁에 서서 톰 라이트는 우리에게 외친다. “이것이 바울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서서 기독교라는 커다란 산맥이 얼마나 웅장한지를 이제는 제대로 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기독교의 풍경은 낯설다. 한낮의 태양 아래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걷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이 거의 발을 들이지 않는 곁길로 빠져든 느낌이다. 길은 어두워지고 방향 감각은 흐려진다. 위험하고 낯설어 보인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톰 라이트라는 좋은 안내자가 있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어떤 모습이 바울인가? 죽어서 천국에 가기 위해 수많은 규칙을 엄격히 지켜 냈을 바울인가, 아니면 식민지가 되어 버린 이스라엘의 현실 앞에서 토라를 몇 번이고 다시 펼쳐 들었을 바울인가? 개인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애썼을 바울인가, 아니면 야웨가 참된 왕이 되시는 그날을 갈망하며 역사의 한복판에서 씨름했을 바울인가? 톰 라이트는 바울이 어떤 인물인지 우리에게 곧바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가 그동안 바울을 어떻게 읽어 왔는지를 되묻는다. 문제는 바울이 아니라 바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울을 ‘교리의 사람’으로 읽어 왔다. 율법과 은혜, 행위와 믿음, 유대교와 기독교를 가르는 날카로운 논쟁의 중심에 그를 세워 두고, 체계적인 언어로 정리해 왔다. 그 과정에서 바울은 점점 더 명확해졌지만, 동시에 점점 더 납작해졌다. 톰 라이트는 바로 그 지점을 지적하며 묻는다. “이것이 정말 바울인가?” 톰 라이트가 『이것이 바울이다』에서 보여 주는 바울은 체계의 완성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인물이다. 신학 논쟁 속의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세계의 운명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살아 낸 유대인이다.


야웨 하나님에 대한 열심으로 가득했던 유대인 바울과 함께 바라보는 기독교는 놀랍다. 그것은 어두운 교회의 장의자 한 켠에서 사후 세계와 개인의 미래를 걱정하는 기독교가 아니다.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이 끓어오르고, 구약에서 신약까지 장엄한 대서사시가 이어지며,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가득해지는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충만한 기독교다. 톰 라이트가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장엄한 풍경이다.


이 책의 미덕은 바울을 다시 ‘위험한 인물’로 돌려놓는 데 있다. 익숙한 교회 언어 속에서 길들여진 바울이 아니라, 로마 제국 한복판에서 “예수가 주님이시다”라고 외치며 살아간 급진적인 유대인 바울. 톰 라이트는 바울을 신학자의 책상 위에서 끌어내려 역사와 정치, 공동체와 삶의 자리로 데려온다. 그 결과 바울은 더 이상 과거의 논쟁거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 된다.


『이것이 바울이다』는 바울에 대한 최종 정답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독자에게 하나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안개 속에서 헤매던 독자를 산 위로 데려가, 넓은 풍경을 함께 바라보게 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이제 다시 읽어 보라.” 바울의 편지를, 복음을, 그리고 당신이 살아가는 이 세계를 말이다.


이 책을 덮으며 독자는 질문 하나를 안고 산을 내려오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바울은 누구였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곧 이렇게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믿고 따르고 있는 복음은 누구를 위한 이야기인가?” 톰 라이트는 질문을 남긴 채 조용히 물러선다. 그러나 그 질문은 오래 남아 시선을 바꾼다. 이제 우리는 전과 같은 방식으로 바울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_정태형
이웃과 함께하는 여린교회 담임목사이며, 다음세대를 세우기 위해 여러 일을 도모하고 있는 다음세대 선교사. 『이것이 바울이다』를 편집했다.




 
IVP 2026-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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