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상실의 시대, 교회의 비전을 회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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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 『레슬리 뉴비긴,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레슬리 뉴비긴 | 신국원 옮김)
1984년 1월 1일의 첫 시간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전 세계에서 위성 생중계로 방영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때문이다. 이는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well)이 그의 책 『1984』에서 예언한 감시와 통제의 텔레스크린을 뒤집는 기획이었다. 백남준은 기술을 통해 인간이 억압받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아니라, 창조와 소통, 그리고 자유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백남준이 기술 문명의 밝은 측면을 예술로 드러냈다면, 같은 시기에 대부분은 알지 못했을 한 선교사 출신 사상가는 인류 문명이 안고 있는 근본적 위기와 희망의 가능성을 신학적으로 제시했다. 의 『레슬리 뉴비긴,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The Other Side of 1984)는 1984년이라는 상징적인 해를 맞아, 현대 문화가 빠져 있는 교착 상태와 그 속에서 교회의 길을 깊이 묻고 있다.
1. 뉴비긴의 선교적 기획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은 책의 첫머리에서 “미래가 있는가?”(Is there a future?)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가 인도 선교 사역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받은 충격은 바로 ‘희망의 상실’이라고 한다. 남인도 마드라스의 빈민들은 내일에 대한 기대라도 가졌지만, 영국 사회에는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리는 마음조차 없었다. 이는 18세기 계몽주의와 근대가 약속한 ‘진보의 미래’가 무너진 데 따른 결과였다. 과학과 기술은 더 이상 해방과 행복의 원천이 아니었고, 오히려 핵무기 확산, 기후 위기, 냉전의 불안, 복지국가의 한계와 같은 위협의 원천으로 다가왔다. 그는 간명하게 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에 과연 미래가 있는가?”(19쪽)
뉴비긴의 비판은 계몽주의 자체의 기획을 정면으로 겨눈다. 계몽주의는 모든 현상을 자연의 법칙과 합리적 설명으로 해명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사실 모든 설명은 이미 수용된 전제와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설명은 이미 수용되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틀 안에서만 작동한다”(32쪽)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성이 교리의 권위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합리성의 힘만으로 인간에게 의미 있는 세계를 열어 주지 못했다. 그 결과 현대인은 권리와 자유를 말하면서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물음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 계몽주의적 진보는 한계에 부딪혔고, 현대 문화는 진보의 종착역에서 오히려 길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뉴비긴은 “어떤 분야에서의 효과적 행동을 위한 전제 조건은 사물의 실상을 바로 아는 것”(50쪽)이라고 했다. 그는 계몽주의가 뒤바꾼 ‘믿음’과 ‘의심’의 관계를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기독교 전통에서 믿음은 신뢰와 사랑의 행위였지만, 계몽주의는 의심을 탐구의 원리로 격상시키고 믿음을 사적·비합리적 잔재로 밀어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탐구는 의심보다 “주의를 기울이고 받아들이는 행위가 일차적이며, 이것이 신앙의 행위”(53쪽)이다. 의심조차 특정한 신념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틀은 이성과 과학을 절대화하지 않고, 믿음과 공동체적 확신을 탐구의 출발점으로 회복하는 데서 가능하다.
뉴비긴은 교회를 향해 세 가지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첫째, 교리(dogma)의 적절한 역할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교리는 억압적 규율이 아니라, 신앙 행위를 가능케 하는 공동체의 고백이다. 따라서 교리주의를 넘어선 살아 있는 교리 이해가 필요하다. 둘째, 콘스탄티누스주의의 함정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교회가 공적 영역에서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권력과 동일시되는 순간 기독교는 본래적 초월성을 잃는다. 실제로 교회와 국가의 결합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참극을 낳았고, 그에 대한 반발로 계몽주의가 등장했다. 셋째, 성경은 공적 영역에 대한 판단과 권위를 제공하는가? 그는 “우리는 정치 개입의 위임을 받았는가?”(88쪽)라는 질문을 앞의 두 질문보다 훨씬 상세하게 논하며, 기독교적 비전 아래서 공·사 영역의 이분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결국 문제는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서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악한 자의 지배 아래서”(94쪽) 참여할 것인가이다.
그의 결론은 명확하다. 교회는 정치적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도 사회 전체에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인종차별이나 빈익빈 부익부 심화 같은 사안은 성경적 제자도와 대립되기 때문에 기독교적 비전 아래 명징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특정 정치 강령을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과 동일시할 수 없다”(96쪽)는 점을 강조하며, 정치적 사안에 관한 기독교적 절대주의의 위험을 경고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문화가 자명하게 여겨온 다섯 가지 전제를 비판한다. 첫째, 인간됨의 본질은 자율적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상호관계성에 있다. 둘째, 행복과 존엄성은 소비사회가 제시하는 유형적 행복을 넘어서는 대안을 기독교가 제공해야 한다. 셋째, 복지 문제와 관련하여, 단순한 권리 투쟁보다 상호 책임을 담아내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려야 한다. 넷째, 이념적 유토피아가 무너진 자리에서 교회는 십자가의 길을 통해 역사에 희망을 증언해야 한다. 다섯째, 앎의 과정은 무엇을 아는가가 아니라 누구를 신뢰하는가의 문제이며, “성경적 비전은 우리 자신들보다 훨씬 큰 인격적 실재에 대한 신뢰의 관계성”을 중심에 둔다.
이 책은 짧은 분량이지만, 계몽주의 세계관에 대한 예리한 비판, 교회의 공공적 사명에 대한 신학적 질문, 복음의 진리에 대한 변증을 응축해 담고 있다. 흔히 레슬리 뉴비긴은 “20세기 교회의 교부”라고 부른다. 그의 글은 과거의 비평을 넘어 오늘의 교회가 다시 희망을 품고 세상 속에서 증언자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신학적 초대다.
2. 한국 교회에 주는 시사점
뉴비긴이 던진 물음은 단순히 서구 사회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그의 통찰은 탈기독교·세속화·정치 양극화라는 흐름 속에 서 있는 한국 교회가 스스로의 길을 성찰하는 데 중요한 거울이 된다.
첫째, 뉴비긴의 문제의식은 1980-90년대 한국 교회에서 전개된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맞닿아 있다. 세계관 운동은 신앙을 사적 영역에 가두지 않고 삶 전체를 복음의 틀로 해석하려는 시도였다. 뉴비긴은 계몽주의적 합리성이 제공하는 세속적 설명이 인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신앙만이 삶과 문화 전체를 해석할 수 있는 참된 틀임을 강조했다. 이는 한국 교회의 세계관 운동이 신학적으로 설득력을 얻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둘째, 그의 변증은 공공신학 담론과 깊게 연결된다. 뉴비긴은 복음을 개인 내면의 확신이나 교회 울타리에 가두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사회와 문화 속에서 공적 증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한국 신학계에서 발전한 공공신학, 즉 교회가 사회적 공론장에서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요청과 그대로 이어진다. 이미 1980년대 초에 그는 교회가 어떻게 공공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사상적 지평을 열어주었다.
셋째, 2000년대 이후 활발히 논의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개념 역시 뉴비긴의 영향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서구 사회 자체를 선교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그의 독창적 통찰을 담고 있다. 선교는 더 이상 해외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세속화된 사회 전체에서 복음을 증언하는 교회의 존재 방식이다. 다원화·탈기독교 상황을 맞은 한국 교회 역시 이제 자체를 선교적 공동체로 다시 세워야 한다.
넷째, 오늘날 한국 교회가 정치적 이념에 쉽게 경도되는 현실에 대한 교훈도 크다. 특정 정당이나 이념과 결합할 때 교회는 복음의 초월성과 사회적 신뢰를 잃고 정치 집단의 대변자로 전락한다. 뉴비긴은 콘스탄티누스주의의 함정을 경고하며, 교회가 권력과 동일시될 때 복음의 보편성을 훼손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교회는 정치적 진영 논리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화해, 공의를 공공 영역에서 증언해야 한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링컨 대통령의 창의성과 지혜가 그가 어린 시절 집에서 읽을 수 있던 유일한 두 권의 책 성경과 이솝우화 때문이라는 주장을 본 적이 있다. 가난해서 책이 부족한 상황이 역설적으로, 어린 링컨으로 하여금 성경과 이솝우화를 반복해서 읽으며 사고의 깊이를 다질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세상 속 교회의 길을 묻다』는 레슬리 뉴비긴의 사유를 확대 전개한 다른 저서들이 공유하는 근본적 통찰을 응축해서 담았다. 현대 문명의 실상을 통찰하며,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근본적 물음을 제기한다. 원액과 같은 농밀한 내용이라, 오늘 우리의 상황에 대한 적용과 성찰이라는 물을 부어야 진가가 드러난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 또한 행간의 의미를 곱씹고 되새길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글_김선일
김선일은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와 박사(실천신학 전도학 전공)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의 실천 및 선교 담당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