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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처럼 보이는 환대, 그러나 시작되는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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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 『환대의 신학』 김진혁 
글_오인표 (IVP 간사_마케터)



성탄절. 한 후배 목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 그가 처음 부임한 교회에서 성탄 전야 예배를 드리던 중, 예배당 한가운데로 술에 취한 노숙인 행색의 한 남성이 들어섰다. 예배는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사람들의 눈빛은 당황과 불쾌함, 그리고 은근한 경계심으로 얼룩졌다.


하지만 그 장면은 기획된연극이었다. 타 교회 목사에게 부탁해 연기자로 투입한 것. 따뜻하게 장식된 예배당 안에, 함께 있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성도들의 몸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던 거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결국 가장 낮은 자, 가장 낯선 이를 향한 하나님의 환대가 아니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시도였다.


그런데 실험은 실패에 가까웠다. 연기에 너무 몰입한 그 목사는 분위기를 심각하게 흐렸고, 성도들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눈살이 맺혔다. 연극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땐 이미 늦었다. 몇몇은 분노했고, 그는 교회에서 쫓겨날 뻔했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환대를 일깨우고자 한그 목사는 결국 교회의 환대로 다음 해 성탄절에도 같은 자리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일화는 한 가지 질문을 담고 있다. 환대란 무엇인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베풀 수 있는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에게 환대는 단지 선행의 미덕일까, 아니면 신앙의 본질인가?


김진혁 교수의 『환대의 신학』은 이 질문을 우리 신앙 한복판으로 끌고 온다. 책이 말하는 환대는 선행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존재론적 사건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 주셨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식탁으로 초대하셨다. 그 환대가 복음의 중심에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귀한 이유는, 환대가 이상처럼 보이지만 정작 실천하기 어려운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는 점이다. 환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자를 위해 공간과 시간, 감정을 내어 주는 일은 불편을 동반한다. 또한 낯선 이의 존재는 공동체의 질서를 교란시키고, ‘우리라는 경계를 흔든다. 그래서 우리는 환대를 말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외면하면서도 이상으로 포장하는 간극에 놓인다.


김 교수는 그 간극을 환대의 신학으로 메운다. 현대 철학자들이 주도해 온 환대 담론을 삼위일체 신학의 언어로 다시 길어 올린다. 환대는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며, 존재의 방식이다. 교회는 봉사를 통해좋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통제 가능한 환대에 머물 때 환대는 소비되거나 제도화된다. 그러므로 그는 묻는다.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환대 사이에 벌어진 불필요한간격이 없는지”(p. 15). 책은 그 간극을 면밀히 살피고 그 사이 다리를 놓는다.


『환대의 신학』은 단지 조직신학의 확장이 아니다. 이 책은 오늘날 피로에 빠진 교회를 향한 권면이다. 저자는 오늘날 교회가 가장 자주 말하지만, “환대 사역에 탈진해 버린 현실”(p. 15)을 지적하며 환대의 신학을 시작한다. 환대는 이상적인 실천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행하신 방식이며, 우리가 따라야 할 실존적 길이다.


성탄절의 그 연극처럼, 환대는 대개 실패처럼 보인다. 불편하고, 논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오해도 산다. 그러나 그 불편함의 틈에서야말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주셨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환대는 신학적 용기이며, 실천되어야 할 존재 방식이다. 더불어 성령이 함께하셔야 가능하다는 신앙의 고백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앙이다.


결국, 환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학적 실천이다. 그것은 성공적으로 꾸며진 행사나 깔끔하게 정리된 선행이 아니라, 관계의 혼란과 예기치 않은 불편, 심지어 상처를 감수하면서도 다시금 문을 여는 일이다. 『환대의 신학』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를 멈춰 세우고, 묻고, 초대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환대를 경험했다면 우리 자리 역시 낯선 이를 맞이할 공간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아야한다. 환대는 실패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실패를 통해 드러나는 복음이 깊고 진실한 것임을 나는 믿는다.

IVP 202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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