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 온 삶, 온 교회를 위한 하나님 나라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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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집을 지으려면 건물의 기초를 놓기 위해 땅을 넓고 깊게 파야 한다. 기초가 협소하면 그 위에는 큰 집을 세울 수 없다. 건물의 기초에 따라 위에 세울 수 있는 건물의 크기가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이 든든하게 서려면 기초가 크고 튼튼해야 한다.
노종문 목사가 쓴 『하나님 나라 복음과 제자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초가 되는 ‘복음’을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내용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있었던 것인데, 저자가 먼저 세상에 내놓고야 말았다. 그것도 매우 훌륭하게 말이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한편, 내가 안 쓰길 잘했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 책은 공학도다운 논리적 촘촘함과 신학자다운 학문적 깊이와 캠퍼스 간사 출신다운 실제성을 고루 갖춘 훌륭한 책이기 때문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이란 그저 죄를 용서받고 사후에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복음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과 초대교회에게 복음이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이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신 예수를 통해 이 세상에 도래했음을 복음으로 믿었음을 말해 준다. 초대교회가 믿고 전파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개인주의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복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먼저 그 복음은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하는 질문에만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하는 질문을 다룹니다”(21쪽).
게다가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우리 주위에 가까이 와 있는 나라요. 하나님의 통치”다. 20세기 복음주의 교회의 이러한 복음에 대한 개인주의적이고 내세 지향적인 이해는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가 말한 것처럼 개인 구원과 내세에 집중하느라 세상에서 살아갈 ‘사회 윤리’를 제시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저자는 깊이 있는 성서학 연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새로운 출애굽’ 사건의 실현으로 설명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창조하시는 새 언약을 위한 희생이라는 것이다. “새 언약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에 율법을 새기는 것, 부드러운 마음과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율례들과 규례들을 행하게 하시는 것, 성령과 그 말씀을 그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고 영원히 머물게 하시는 것”(62쪽)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된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고, 새 율법인 산상수훈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제자 공동체, 즉 새 언약의 백성을 탄생시킨다.
형벌대속론의 한계를 넘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새 언약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해 냄으로 ‘형벌대속론’이 지니고 있었던 한계를 넘어선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연합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예수 안으로 들어가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96쪽). 이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 되어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우리를 해방한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그와 연합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이 삶은 이 세상에서 죄의 지배로부터의 해방과 사탄에 대한 승리와 자유를 뜻한다. 특히 이 책은 성령이 하시는 일에 주목하는데, 성령은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를 살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삶이 지금 여기에서 가능하도록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신다. 요컨대, 복음이란 죄 사함과 내세에 대한 보장을 넘어선 현실에서의 총체적 삶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새 언약의 선물인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내면으로부터 변화시켜 나가시며 율법의 요구, 즉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는 요구를 성취하게 만드십니다”(97쪽).
우리의 죄를 슬퍼하고, 우리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것은 정말 좋은 태도이다. 그러나 형벌대속론은 우리를 죄책감과 죄를 용서받는 일에 붙들어 놓아 삶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제쳐놓고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 죽은 행실에서 벗어나는 회개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세례에 관한 가르침과 안수와 죽은 사람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과 관련해서, 또다시 기초를 놓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히 6:1-3). 자신의 죄를 크게 느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과 산상수훈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서 그리스도인이 나아가야 할 완전한 곳은 바로 예수님의 산상수훈이다. 한때 산상수훈은 이 땅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저 하늘의 윤리라고 가르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생활의 초점은 “예수님의 말씀들을 철저히 배우고 예수님의 명령대로 살아가는 것”(117쪽)이다. 우리가 산상수훈의 명령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 자체에 이미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능력과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고(118쪽) 우리 안에 부어진 성령님이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은 초대교회의 새신자들에게 가르쳐졌다는데, 오랫동안 산상수훈을 오르기 불가능한 산으로 여겨 왔던 것이 많이 부끄럽다.
저자는 교회의 부르심을 복음의 선포보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주목해 제자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복음 선포의 단계는 필수적이나 전체 사역의 무게 중심은 아닙니다.”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의무’가 아니라 유일한 의무인 제자도가 양쪽으로 펼쳐지는 모습”이다(159쪽).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사상과 삶과 희망을 따라 사는 것이 제자도라면, 이 제자도를 갖출 때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함께 약속하신 정의와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며, 가난한 자가 없는 풍요로움과 축복의 공동체를 선물로 향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상과 세계관, 그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훈련을 받아 세상의 번영을 위해 일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위한 복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안에서 세상을 보다 멋지고 풍성하게 살아 낼 수 있다. 복음은 온 세상, 모든 사람, 모든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한국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교과서로 삼아 읽기를 권한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목회자들이 읽고 익히면 좋을 책이다. 또한 교회 생활을 오래 했으나 기독교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여기는 성도들,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초신자들과 추구자들에게 권한다. 이 책을 통해 신앙의 기초를 넓고 깊게, 그리고 굳건하게 다질 수 있을 것이다.
김유복 / 대구기쁨의교회 담임목사. 캠퍼스 간사로 섬기던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쳐 왔으며 교회와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세워 가고 있다. 추구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소개하는 『깨어진 세상, 희망의 복음』(IVP)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