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쟁에서의 전략적 후퇴에 주목하라(이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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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승용
책 <베네딕트 옵션> 로드 드레허 지음
<베네딕트 옵션>은 미국의 보수주의 기독교가 어떤 고민과 변화의 지점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책이다. 그러나 미국 건국 신화와 몇 가지 도덕적 쟁점에 집중하며 공화당의 정치적 입장과 결을 같이 하는 기존의 기독교 우파와 여러 지점에서 다르다. 또 국가를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콘스탄틴주의를 경멸하고 교회를 대항 공동체로 인식하는 존 요더나 스탠리 하우어워스 같은 재세례파와도 다르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자주 인용하는 하우어워스의 사상보다 더 큰 맥락, 즉 매킨타이어의 덕 이론이나 로버트 웨버의 복음주의 공동체와 예전 회복, 제임스 스미스의 개혁파 신학을 참조하며 설명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독교?
사회학자 제임스 헌터는 자신의 책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에서 복음주의 기독교 내에 존재하는 문화적, 사회적 참여 전략을 분석하고 ‘신실한 현존’이란 새로운 전략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오스 기니스 <르네상스>, 스캇 맥나이트 <하나님 나라의 비밀>, 로스 다우섯 <나쁜 종교>, 팀 켈러 <센터처치> 같은 책에서 저자들은 헌터의 분석과 주장을 토대로 자신들의 문화전쟁의 전략을 수정하기도 했다. <베네딕트 옵션> 또한 이런 맥락에서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분석을 바탕으로 더 이상 기독교 고유의 가치가 공적 영역에서 하나의 옵션으로 선택받거나 존중받기 어려운 세속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판단하면서 일종의 전략적 후퇴로 ‘베네딕트 옵션’을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문화전쟁’에서의 패배 혹은 성찰과 반성이 깔려 있다. 저자는 현대 기독교가 직면한 문제들 중 젠더, 교육, 육아 문제에 있어 가장 큰 위기감을 느끼는데, 누구나 자신이 경험한 위기를 강조하기 마련이지만 어떤 문제보다 섬세하게 다뤄야 할 이 문제에 관해 저자가 펼치는 논증과 주장은 그에 미치지 못해 못내 아쉽다(특히 LGBTQ 문제에 있어 그렇다). 그럼에도 ‘베네딕트 옵션’은 변혁을 위한 지금의 최선의 선택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보수주의 신앙관을 견지하는 저자가 대항 공동체를 주장하는 대목이 무척 흥미로웠다. 분리주의, 배타주의 같은 특정 운동에 소속되지 않은 저자의 입에서 대항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강조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는 저자가 기독교 신학이나 운동가 출신이라기보다는 칼럼니스트로 꾸준히 독해하고 고민한 자리, 즉 특정 교파나 운동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베네딕트 옵션과 한국 교회
한국 교회는 왜 젊은 세대에게 외면당하고 있을까? 왜 예배당은 들어가기 어려운 장소가 되었는가? 이런 상황에서도 교회 본질을 회복한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천박한 정치의식에서 비롯된 정치적 발언과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혐오 주장, 가짜뉴스에 근거하고 이를 다시 확산하는 설교로 가득한 교회 강단, 대한민국-선택된 백성이라는 건국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교회, 철학과 신학을 들먹이지만 오류투성인 기독 지성의 주장,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동원되는 신앙 논리 등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우리 교회에 정말 희망이 있을까?
<베네딕트 옵션>은 그런 희망을 갖게 하는 많은 가능성 중 하나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논쟁적 요소가 있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생각하는 기독교, 성찰하는 보수주의 기독교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보수와 진보라는 획일적 구분 이전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회복을 경험하고 싶다는 작은 기대를 갖게 됐다.
이승용
책을 통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즐거움을 누리다가 우연히 기독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은 IVP에서 마케터로 일한다. 아내와 함께 두 아이를 키우며 경기도 광주 산자락 아래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