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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baud)는 그의 저서 『지옥에서 보낸 한철』에서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는 사랑에 관한 기존의 이해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랭보는 당시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 연애 관계에 대한 인식이 진정한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고 느꼈고, 따라서 사랑의 의미를 다시 찾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랑의 재발명’을 외쳤다.
‘재발명’에 대한 랭보의 용법을 참고하면, 『평신도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은 평신도에 관한 현재의 이해가 불충분하니 그 존재를 다시 들여다보자는 제안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평신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평신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기에, 저자는 평신도를 재발견하자고 하는가?
교회의 재발견
이 책은 한국 평신도교회 공부모임이 기획한 책이다. 저자는 IVP에서 〈1세기 교회 시리즈〉를 출간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로버트 뱅크스 박사로, 평신도교회 공부모임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교회를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을 함께해 왔다. 교회의 고착화된 구조와 예배 형태,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여러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회의 본질을 다시 찾아야 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참된 교회로 살아가는 삶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초대교회로부터 그 여정을 시작한다.
초대교회는 이 책의 원제인 Church Of, For, & By the People에서 볼 수 있듯이, 그저 예수님의 몸으로 살기로 한 ‘사람들’이었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세워지는 오늘날의 교회와는 달랐다. 그들은 소규모로 모여 서로를 잘 알았고, 함께 식사하며 예수님을 기념했으며, 각자 받은 은사에 따라 가르치고 예언하고 돌보았다. 당시에는 그런 표현이 없었지만, 초대교회는 평신도교회였던 셈이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 평신도교회란 직분에 따른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서로 섬기고 섬김받는 공동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교회는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목회자가 없는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신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말씀을 가르쳐도 될까?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잘못 가르치거나 배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한국 교회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질문이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은 장마다 저자가 한국 청중과 나눈 질의응답을 실어서 독자들의 질문을 일부 미리 해결해 주고 있다.
나는 3장에서 이 질문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1세기 교회와 달리 정통과 이단을 구별하기 위해 다양한 신학적 논의가 요구되는 지금은, 교회를 세우는 데 신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저자는 단호하게 답한다. 공부가 누군가를 교회의 지도자로 만들지 않으며, 지도력은 지식뿐 아니라 영적·목양적·실천적 은사를 필요로 한다.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 한다는 사실을 신뢰해야 한다. 교회는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은 목회자나 신학자가 있는 교회라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답변을 읽으며 예상치 못한 위로를 받았다. 나는 현재 우리 교회에서 매주 서너 명 정도가 모이는 청년부 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그전까지 우리 교회에는 청년부 예배나 별도의 모임이 없었다. 대학에서 IVF라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경험했던 나는, 또래 신앙 공동체가 주는 기쁨과 유익을 우리 교회 청년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청년부를 담당하시던 사모님께 조심스럽게 말씀드렸고, 그렇게 작은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청년부 모임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이유 중 하나는, 청년부를 담당하시는 사모님이었다. 사모님은 내게 청년부 모임을 맡기겠다고 하시고는, 모임에 당신이 꼭 참석해야 한다고 하셨다. 청년들끼리 모임을 하도록 두었다가 사이비에 빠진 다른 교회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내가 모임을 인도하면서 청년들에게 ‘이상한 걸 가르칠까 봐’ 걱정된다고 하셨다.
이런 대화 속에서 상처를 받았지만, 동시에 정말로 신학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교회 모임을 인도하는 것은 부적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청년부 모임을 위해 사모님이 정해 주신 교재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거의 없는 우리 교회 청년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만한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런 상황은 나를 지치게 했다.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매주 말씀과 우리 청년부를 묵상하며 청년들에게 와닿을 만한 언어로 교재를 번역하다 보니, 내게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풍성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복음이 어떻게 나의 이야기가 되는지 자신 있게, 또 기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priesthood of all believers)과 ‘모든 신자의 소명’(vocation) 곁에 ‘모든 신자의 신학자직’(professor-hood of all believers)도 인정해야 합니다. 모든 신자는 성경을 읽고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신학자가 됩니다. (153쪽)
하나님의 재발견
교회 모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IVF 간사님이 해 주신 조언이 있다. “하나님이 일하실 공간을 여는 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평신도를 ‘목회자가 아닌 신도’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납작한 이해다. 평신도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 그 자체다. 평신도를 재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를 위해,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재발견하는 일이다. 그 일하심을 신뢰하고, 기대하며, 의지하면 평신도교회에 대한 많은 두려움이 걷히리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