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권 성경 주석을 장만할 예정이라면(류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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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류호준(류호준 교수의 무지개 성서교실)
책『IVP 성경비평주석 신약』
소개하는 성경 주석은 17년 전인 2003년 11월에 미국 출판사 어드만(Eerdmans)에서 출간한 1,672쪽의 방대한 단권 성경 주석(Eerdmans Commentary on the Bible = ECB)입니다. 구약 편집장은 영국 쉐필드 대학의 존 로저손(John W. Rogerson, 1935-2018)이, 신약 편집장은 영국 더함 대학교의 제임스 던(James Dunn, 1939-2020)입니다. 두 사람 모두 편집장을 맡아 수고할 때가 60대였으니 학문적으로 경지에 오를 시기였습니다.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었습니다. 책도 17년 전이니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당시 어드만 출판사에 직접 방문하여 싼 가격으로 구매한 추억이 있기에 늦게나마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보니 개인적 감회가 새롭습니다.
한국 IVP 출판사가《IVP 성경 비평주석 신약》이란 이름으로 먼저 신약을 출판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점을 밝힙니다.
첫째, 원래의 “성경 주석”이라는 제목 대신에 “성경 비평주석”이란 제목을 붙인 것에는 분명 한국 독자들에게 뭔가를 알리려는 의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즉, 학계에서 “비평”(criticism) 혹은 “비평적”(critical)이란 단어는 “철저하게 자세하게 들여다 보다.”라는 뜻입니다. 이른바 “역사 비평적”(historical-critical) 관심사를 포함하여 모든 학문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텍스트를 살핀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본 주석을 “비평 주석”이라 부르리라.
둘째, 이 주석이 사용하는 성경 본문은 NRSV(New Revised Standard Version)으로 영어권 개신교(+ 가톨릭)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66권 외에 토빗서, 유딧서, 솔로몬의 지혜서, 시락서(집회서), 바룩서, 에스드라서, 에녹서, 마카베오서, 므낫세의 기도, 70인역 에스더, 다니엘 부록, 시편 151편 등과 같은 “외경”(外經, Apocrypha)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본 주석은 외경에 대한 주석도 담고 있는데 “성경 비평주석 구약”에 들어 있습니다. 참고로, NRSV가 미국 주류 교단들(National Council of Churches = NCC 소속)이 주로 사용하는 번역이라면 미국 복음주의 신자들은 주로 NIV(New International Version)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셋째, 신약 주석의 경우, 각 절 주석이 아니라 단락별 주석을 제공합니다. 각 권에 관한 총론(예, 제목, 저자, 구성, 저작연대, 사회적 역사적 배경, 청중, 공동체, 상징, 주제, 사상과 신학, 마지막으로 추천 참고도서)을 다루는 기고자도 있지만 간단하게 다루고 바로 주석으로 들어가는 기고자도 많습니다.
넷째, 본문 주석에 있어서 학문적으로 꼭 다루어야 할 문제는 빠짐없이 다루고 있는 듯 보입니다. 이 점은 왜 당대 최고의 유능한 학자들이 기고자들로 선정되었는지를 입증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부분에서 균등한 것은 아닙니다.
다섯째, 기고자들의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따라서 특정한 신학적 입장을 지닌 독자들에게 시야를 넓혀주는 이점이 있습니다. 기고자들은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 학자를 망라하고 있기에 이른바 주석이 공교회적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여섯째, 주석에선 본문을 단순히 다른 말로 반복해서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문헌적 전승과 사회적 배경을 알려주며, 언어학과 수사학을 사용해 본문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문성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일곱째, 단락 주석은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고 독자 친화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쉽게 개별 성경 본문의 뜻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덟째, 책의 끝에 “주제별 / 인물 이름 찾아보기”(subject / name index)를 실은 것은 아주 잘한 것입니다. 편집진들의 수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종종 칭찬에서 빠지는 번역자들의 엄청난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맨 앞부분에 있는 논문 “신약 성경의 전승사”(제임스 던)과 “신약 전승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조엘 그린)과 책의 중간 부분에 “신약 서신서”(빅터 퍼니시)는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책의 마지막에 있는 두 논문 “신약 외경”(로버트 반 부어스트)과 “사해 두루마리와 신약성경”(대니얼 할로우)을 선택적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책 출간 이후 17년 세월이 흘렀으니 신약 연구 방법론도 변화가 있고 새로운 학자들이 나타나 세대교체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주석을 통한 본문 이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고로 이 주석서는 한국에서 다양한 신학적 스펙트럼 아래 있는 목사들과 신부들과 성서학자들과 신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다가오는 깔끔한 학문적 단권 주석서라고 믿습니다. 단순히 설교 거리나 경건한 영적 말씀을 찾는 사람들에겐 지루하고 골치 아픈 독서가 되겠지만 말입니다. 성경은 열어놓고 이 주석서는 옆에 놓고, 함께 깊게 탐구하고 공부하면 성경을 보는 안목은 깊어지고 성경 이해의 폭은 넓어지리라. 한번 작정하고 성경 각 권을 독파해나가는 계획을 세워보시면 어떨까요. 기쁨의 만족감이 뿌듯한 긍지와 만날 것입니다.
* 이 글은 '류호준 교수의 무지개 성서교실'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