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트 옵션>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배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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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덕만
책 『베네딕트 옵션』로드 드레허 지음
로드 드레허는 누구인가
로드 드레허는 1967년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태어나 세인트 프랜시스빌이란 작은 마을에서 성장했다. 1987년에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에서 언론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1997년 줄리 헤리스 드레허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감리교인으로 성장한 드레허는 1993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가톨릭 매체에 왕성하게 글을 기고했다. 하지만 2002년에 발생한 가톨릭교회 내 성추행 스캔들에 환멸을 느끼고 2006년 동방 정교회로 옮겼다.
2002년, 그는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에 스스로 “그래놀라 보수주의”granola conservatism라 명명한 미국 보수주의의 하위 범주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드레허는 이런 종류의 보수주의자를 “크런치 보수주의자”crunchy cons(반문화적이지만 전통적 보수주의 스타일을 포용하는 공화당원들)라고 부르며, 이들은 환경 보존, 검소한 생활, 전통적 가족 가치의 보존을 주장하고 시장 자본주의에 대해 회의적 입장을 견지하며 대체로 종교적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 드레허는 이 주제를 확대하여 『크런치 보수주의자』Crunchy Cons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그는 한동안 「더 댈러스 모닝 뉴스」The Dallas Morning News에 사설과 칼럼을 썼고, 2009년부터 존 템플턴 재단John Templeton Foundation의 출판 책임자로 일했다. 2013년에는 루이지애나에서 보낸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여동생의 암 투병을 다룬 책, 『루시 레밍의 작은 길』The Little Way of Ruthie Leming 을 출판했으며, 2015년에는 단테의 『신곡』이 여동생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에 끼친 영향을 서술한 『단테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구할 수 있는가』How Dante Can Save Your Life 를 출판했다. 그리고 2017년, 『베네딕트 옵션』The Benedict Option이 그의 손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는 현재 격월간지 「더 아메리칸 컨서버티브」The American Conservative의 선임 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드레허는 지난 10여 년간 이 베네딕트 옵션이란 주제에 천착해 써왔다. 그는 철학자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가 대표작 『덕의 상실』After Virtue에서 도덕적 다원주의 시대의 중요한 대안으로 6세기의 성 베네딕투스를 언급했던 데서 이런 아이디어를 발견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드레허의 관심과 활동의 범위는 그리스도인 보수주의자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진영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2015년, 미 대법원이 동성혼을 합헌으로 인정한 ‘오버거펠 대 호지스’Obergefell vs. Hodges 판결 이후 일군의 저서들이 앞 다투어 출판되기 시작했을 때,1 그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여 『베네딕트 옵션』을 출판했다.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전국적 차원의 관심과 논쟁을 촉발하며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역사가 조너선 브로니츠키Jonathan Bronitsky는 “이런 일련의 출판물들 중 단연 중심축the main column”은 로드 드레허의 『베네딕트 옵션』이라고 평가했으며, 정치 문화 평론가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도 이 책을 “이 세대의 가장 중요한 종교 서적”이라고 극찬했다.
<베네딕트 옵션>의 주장
기본적으로, 드레허는 이 책에서 미국을 “탈기독교 국가”a Post-Christian Nation로 정의한다. 한국어판 서론에서, 그는 “기독교 신앙이 우리나라에서 죽어 가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런 상황을 1장 제목처럼 아무런 대책 없이 맞이한 “대홍수”로 묘사한다. 그리고 예단한다.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서구 문명 내 기독교의 실질적 사망을 목도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처럼 서구, 특히 미국의 상황을 묵시적으로 이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세속주의의 확산으로 미국에서 기독교적 가치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판단에, 기독교 가치의 붕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가 동성애, 동성혼의 확산이다. 동성애자들의 인권이 증진되는 것에 비례하여, 이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보수 그리스도인들의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의 토대 위에 건설된 미국 사회가 어쩌다 이지경에 이르렀을까? 이런 비극적 현실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드레허는 서구 지성사를 분석한다. 이 비극은 14세기에 “형이상학적 실재론이 유명론에 패배함으로써 초월적 세계와 물질세계를 잇는 핵심이 제거”된 것에서 기원했다. 이후, 종교개혁, 계몽주의, 산업혁명,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역할은 서구에서 극단적으로 축소되고 인간의 주권과 영향력은 빠르게 강화되었다. 특별히, 1960년대 출현한 성 혁명은 “새로이 부상하는 사회 질서의 중심에 욕망하는 개인을 세워 모셨으며, 5세기에 동고트족이 불운한 서로마 제국 최후의 황제를 폐위했던 것처럼 쇠약해진 기독교를 퇴위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드레허는 기독교 진보주의자들은 이런 흐름에 동조하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기독교 우파로 대변되는 근본주의자들은 정치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궁극적으로 실패했다고 진단한다.
이런 극단적 위기의식 하에, 드레허는 6세기의 성 베네딕투스와 그의 수도원 운동을 문제 해결의 결정적 실마리로 제시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런 문제 인식과 해법 제시에는 정치철학자 매킨타이어가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매킨타이어는 『덕의 상실』에서 현 서구 사회의 문화적 상태를 로마 제국의 몰락에 비유하면서 이에 대한 해법으로 “또 다른—확실히 아주 다른— 성 베네딕투스”를 기다린다고 말했는데, 드레허는 매킨타이어의 이런 문제의식과 해법을 자신의 책에 그대로 채용한다. 드레허는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민족에게 멸망당한 상황에서 성 베네딕투스 새로운 수도원 운동을 시작하여 기독교 문명을 보존하고 재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즉, 드레허는 베네딕투스가 세운 수도원이 질서, 기도, 노동, 금욕주의, 안정성, 공동체, 환대, 균형을 실천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전통을 세상으로 전파했던 경험을 세속주의의 대홍수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미국 사회와 미국 교회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책 원서의 부제를 그대로 옮기면 “탈기독교 국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전략”이다. 드레허는 이에 맞게 책 대부분을 구체적 전략을 제시하는 데 할애한다. 기본적으로, 그는 기존 보수 그리스도인들의 정치 운동이 미국 사회를 세속주의로부터 구원하는 데 실패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진단한다. 동시에, 전통적 기독교 신앙과 가치관을 보존하고 육성할 대안 공동체 건설에 관심을 집중한다. 기본적으로, 그는 베네딕투스 수도원을 가정, 교회, 지역 사회로 이식할 것을 요구한다. 즉, 세속주의의 악영향으로부터 자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기독교 가정을 수도원으로 만들라고 주문한다. 부모들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기도와 성경을 가르치고, 인터넷과 휴대폰의 유혹을 차단하며, 올바른 성 문화와 기독교적 가치를 교육하라고 촉구한다. 그와 동시에, 수도원 영성은 교회로 확장되어야 한다. 교회는 과거의 유산을 재발견하고 예전적 예배, 금욕주의, 징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며 반기독교적인 주류 사회 속에서 “유배와 순교의 가능성”을 담대히 인정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교인들은 공동체 근처에 거주하면서 교회를 중심으로 한 거룩한 마을을 구성하고, 교회의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같은 뜻을 품은 타종교인 및 다른 교파 사람과도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드레허가 제시한 여러 전략은 구체적이고 포괄적이다.
<베네딕트 옵션>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은 미국 교회를 향해 쓴 책이다. 따라서 한국 독자들이 드레허가 제시하는 예시에 공감하며 읽기는 쉽지 않다.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나 교회가 갖는 위치와 영향력은 한국과는 크게 다르며, 미국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와 도전 역시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한국 교회에 유용한 지침이나 조언이 될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다만 저자의 입장이 분명하고 급진적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며 책의 논지, 내용, 대안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이 책의 저자가 취하고 있는 신학적·실천적 입장이 매우 흥미롭다. 기본적으로 드레허는 매우 보수적인 그리스도인이다. 성, 가정, 교육, 교회에 대한 그의 입장에서 그의 보수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그가 기독교 우파와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하는 대목은 우리의 주목을 끈다. 사실, 드레허가 다루는 쟁점과 해법은 기독교 우파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고, 동성애, 낙태, 포르노를 반대하는 것은 기독교 우파의 오랜 관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레허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으로 대변되는 보수 기독교의 정치 활동을 통해 미국 사회에 침투하는 세속주의를 차단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비판하면서, 정치를 통해 미국 사회를 기독교 사회로 회복시키려는 기독교 우파의 노력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그렇기에, 베네딕트 옵션은 미국의 정치 지형도 내에서 기독교 우파의 급격한 추락을 뼈아프게 인식한 보수 그리스도인들의 새로운 각성이자 출구 모색으로 보인다. 현재 태극기 부대로 대변되는 한국 기독교 내 보수 세력에게도 이 옵션은 자성의 계기를 제공하는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둘째, 드레허의 종교적 편력과 대안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드레허는 감리교인으로 출발하여, 성인이 된 후 자발적 결단에 의해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가 마침내 동방 정교회에 귀의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제리 폴웰Jerry Falwell과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이 주도했던 기독교 우파의 쟁점들을 그대로 공유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톨릭에 속한 베네딕투스 규칙서와 동방 정교회의 예배 문화를 제시한다. 그야말로 신앙적 정체성과 사역이 ‘에큐메니컬’하다. 물론, 기존의 기독교 우파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보수적 유대인 및 가톨릭 신자들에게 연대를 제안했고, 심지어 모르몬교도인 미트 롬니Willard Mitt Romney에게 표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드레허는 단지 정치적 목적을 넘어 구체적 이론과 대안을 위해 개신교 복음주의뿐 아니라 가톨릭 전통과 동방 정교회 전통을 적극적으로 포용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보수적 에큐메니즘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여전히 자신만의 신학적 전통에 갇혀 있는 한국의 대다수 보수주의자에게는 매우 낯설고 기이해 보일 것이다.
셋째, 드레허가 해법으로 제시하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신학적·정치적 차이를 넘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가정을 수도원 공동체로 만들라고 권면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성경과 전통, 고전을 가르치고, 그들을 포르노와 인터넷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라고 강권한다. 동시에, 교회에서 수도원적 가르침을 교육하고 실천하며, 교회 간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상호 단결과 영향력 확장을 도모하라고 조언한다. 동시에, 이런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사회와 대결하길 주저하지 말고, 경우에 따라선 박해와 수난도 피하지 말라고 도전한다. 양적 성장과 번영 신학, 정치적·경제적 헤게모니에 집착하면서 급속도로 추락하는 한국 교회에는 드레허의 이런 강력한 충고와 따끔한 채찍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
한편, 이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먼저, 드레허는 미국의 현재 상황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서구 지성사를 해석하는데, 그 서술만으로 서구 역사를 이해한다면 이는 역사를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구 사회가 14세기에 실재론 대신 유명론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후 인간중심적·반기독교적 특성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은 14세기 이후에 나타난 수많은 역사적 사실과 함께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드레허 본인도 인지하듯, 몇 가지 개념을 가지고 역사적 인과 관계를 쉽사리 설정하면 오해를 낳기 쉽다. 또한 그는 현재의 미국 상황을 6세기 유럽과 동일시하고, “성 베네딕투스의 규칙”을 미국 교회를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제시한다. 물론 과거의 유산을 계승하여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지만, 6세기 유럽과 21세기 미국을 동일선상에 위치시키고 소수의 전문 수련자가 모인 수도원 공동체를 위한 규칙서를 탈기독교-다종교 세속 사회를 위한 해법으로 삼고자 한다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를 충분히 고려하고 재해석해야 한다. 과거의 유산을 단순 적용하여 나타나는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드레허의 문제의식은 주로 가정, 공동체, 신앙에 집중하고 있기에 이 안에서 가난, 전쟁, 환경, 자본, 인권 등의 더 넓은 문제를 찾아보긴 어렵다. 물론 대안 교육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본주의 경쟁 체제에 함몰되지 말아야 하고 인종을 차별하는 과오를 범해선 안 된다는 정도의 언급을 하지만, 자신이 제시하는 수도원 전통이 사회 속 여러 이슈를 포괄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을 위해 사회를 무시하지 않고 개인적 순결을 위해 구조적 정의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드레허의 입장이 기독교의 윤리와 실천을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는지 물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데이비드 브룩스가 드레허가 제시하는 대응 방식에 이견이 있음에도 이 책을 두고 “지난 10년간 나온 책 중 가장 논쟁적이고도 중요한 종교 서적”이라고 평가했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평가는 드레허의 논의가 사회에 편만한 문화 현상에서 나타나는 쟁점을 명확히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언급했듯, 그는 세속적 근대성이 “교육 수준이 높고 부유하며 문화적으로 전 세계와 면밀히 연결되어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정교회 신자이자 보수주의자인 드레허가 제기하는 쟁점과 대안의 적실성을 판단해 가면서, 오히려 이 책을 통해 한국 기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현주소를 파악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 <한국교회, 인문주의에서 답을 찾다> 저자
*본 글은 <베네딕트 옵션> 해설에 실린 글을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