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성경과 세상 이야기의 교차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신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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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와 크레이그는 오랫동안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쳐 왔다. 둘 다 한때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기독교학문연구소(Institute for Christian Studies)에서 동문으로 수학한 데다 생각이나 비전도 흡사해 잘 통한다. 특별히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과 거기서 비롯되는 선교적 비전으로 세계 역사를 보고 그 맥락 속에서 철학을 이해하는 일도 함께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은 이전 작품인 『성경은 드라마다』와 『세계관은 이야기다』(원제목을 직역하면 ‘교차로에서 살아가기’)에서 다루지 못한 일반 사상의 역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쓴 철학사 책이 적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의 특수한 접근은 이제껏 국내에서는 한 번도 접할 수 없던 유의 통찰을 담고 있다. 사실 근대와 포스트모던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통과하는 오늘날 이 책처럼 성경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의 ‘교차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소개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기독교적 안목에서 철학사 전반을 살피려 노력하면서 특히 20세기에 일어난 ‘기독교 철학의 르네상스’를 심도 있게 다룬 데 있다.
공저자 마이클 고힌(왼쪽)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누군가 말했듯이 신앙과 철학은 애증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다양하고도 깊이 있게 세계와 삶의 비밀을 이해하려 해온 가장 세련된 지적 노력이다. 궁극적인 질문들을 다루어 왔다는 점에서 학문의 근본적인 형태다. 한편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신앙이며 삶 전체다.
물론 기독교 신앙은 철학을 한 부분으로 가질 수 있다. 즉 신앙의 구체적인 행위이자 표현으로서 철학적 사고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또 필요하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 속에는 많은 철학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어 상당한 철학적 성과를 남겼다. 보통 기독교 사상사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지성적으로 뛰어난 은사를 가진 이들이 그들의 역사적·문화적 상황 속에서 어떤 철학적 사유와 논의했는지 정리하는 일로 여겨진다.
기독교 철학은 복음 전파와 사랑의 봉사 같은 그리스도인의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세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세상의 것을 단순히 채용하거나 답습하는 데서 그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기독교 철학은 각 시대에 주어진 신앙적·교회적·신학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21세기 교차로에 선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으로나 교회 공동체적으로 비기독교 사상과 대면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역사 속에서 긴장으로 가득한 신앙과 문화의 지형을 지나면서 실제로 그들의 길을 어떻게 노정해 왔느냐’다. 그리고 과연 그런 작업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역사적 고찰을 통해 보여 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다. 이 책은 지성의 결여를 극복하는 일과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교회를 위한 철학의 과제를 발견하는 일, 선교 강국인 한국이 세계 기독교 역사의 현시점에서 해야 할 지적 과제를 발견하는 일, 향후 신학의 한 중심으로서 기독교 철학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좋은 기초를 제공한다.
사실 처음 번역을 기획했을 당시에는 이 책을 단순히 번역하기보다는 저자들과 우리 실정에 맞추어 선교적으로 ‘상황화’된 한국어판을 함께 쓰는 일을 논의했었다. 이 일이 성사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극동의 감추어진 ‘은자의 나라’가 아니다. 아침이 고요한 ‘조선’도 아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교역국이자 온갖 물류와 사상이 교차하는 글로벌 허브가 되었다. 특히 근대사의 질곡 속에서 선교 역사상 유래 없는 성장을 이루었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한국 교회에는 세계 사상과의 선교적 만남을 통해 씨름해야 할 고유한 과제가 있다. 그 일은 우리가 할 수밖에 없는데 조만간 그러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항상 책을 내건 번역을 하건 그 과정 속에서 가족들의 고마움을 새기게 된다. 지금도 이 작업을 격려해주는 아내 신동원과 두 딸 희원과 현진, 그리고 새 식구가 된 댄에게 감사한다.
2019년 11월 1일
신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