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복음을 믿고, 어떤 이야기를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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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기독교 신앙에서 ‘복음’은 너무나 익숙한 단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죄 사함과 구원,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는 교회 안에서 수없이 반복된다.
그런데 익숙하다는 것은 때로 위험하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묻지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복음이란 정말 무엇인가?’ ‘구원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교회는 왜 존재하는가?’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마이클 고힌의 『기독교 신앙의 정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질문들을 다시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다.
이 책은 복음을 개인의 구원이나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에 가두지 않고,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이야기 안에 다시 위치시킨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까지 단단하게 연결해 낸다.
책을 읽으며 계속해서 되뇌게 되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복음을 너무 작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1. 예수님 자체가 복음이다
고힌은 우리가 복음을 ‘나를 구원해 주는 능력’ 정도로 축소하는 것을 경계한다.
복음은 비인격적인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의 관계에 관한 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비인격적인 '구원 능력'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 자신과의 교제에 있기 때문이다.” (p.66)
이어지는 복음에 대한 그의 설명은 더욱 선명하다.
“이 나라는 얼굴과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 자체가 복음이다.” (p.67)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열쇠다.
복음은 ‘내가 무엇을 얻는가’에 대한 소식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하게 되는가’에 대한 소식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을 넘어,
그분을 왕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2. 구원은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다
이 책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구원’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이해를 뒤흔드는 대목이다.
성도들에게 구원은 흔히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으로 국한되곤 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그보다 훨씬 크고 입체적이다.
고힌이 말하는 기독교 신앙의 참된 목표는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새 창조’다.
“기독교 신앙의 참된 목표는 온 창조 세계의 회복이다.” (p.84)
이 관점은 그리스도인의 현재 삶을 완전히 새롭게 조명하게 한다.
만일 구원이 단순히 이 세상을 떠나는 탈출구라면
지금의 삶은 천국행을 기다리는 대기실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구원이 온 창조 세계의 회복이라면,
우리의 가정과 직장, 사회와 문화는 더 이상 신앙의 주변부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회복하실 그 세계를 지금 미리 살아 내는 거룩한 현장이 된다.
그래서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하고, 가정에서 사랑을 나누며, 이웃을 돌보고,
소비와 성공을 부추기는 세상의 기준을 분별하는 일 모두가 엄연한 신앙의 문제다.
3. 복음을 온전하게 회복한다는 것
고힌은 복음의 의미를 이렇게 집약한다.
“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역사 속에,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 안에,
성령의 능력으로 도래했다는 선포다.” (p.108)
여기에는 개인의 죄 사함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도래,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 공동체의 형성, 그리고 새 창조에 대한 소망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그는 “이 중에서 무언가 빠져 있다면 복음의 ‘온전한 진리’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p.108).
이 지점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깊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우리는 복음을 너무 쉽게 개인화한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는 고백은 소중하지만,
거기에서 멈추면 복음은 나의 영혼 안위만을 위한 메시지로 쪼그라든다.
고힌은 개인의 구원과 창조 세계의 회복,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그리고 교회 공동체와 세상에서의 삶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복음 안에 담겨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4.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과연 어떤 공동체여야 할까?
고힌은 선교를 교회가 수행하는 수많은 활동 중의 하나로 보지 않는다.
전도 프로그램을 많이 돌리거나 해외 선교를 공격적으로 지원한다고 해서
본질적인 ‘선교적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선교’는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심지어 가는 것(이 세 가지를 다 포함하긴 하지만)이 아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존재의 문제다. 선교는 교회의 정체성이다.” (p.224)
교회가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선교적인 존재라는 뜻이다.
예배하고 교육하고 봉사하는 일상적 활동 너머에,
“그래서 너희는 어떤 사람들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이 도사리고 있다.
교회의 선교는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공동체로 ‘존재하는가’ 그 자체에서 이미 판가름 난다.
5. 문화의 포로가 된 교회
고힌은 이 지점에서 더욱 아프고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오히려 세상에 의해 변화되고 잠식당하고 있다는 경고다.
“우리가 지닌 이름은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따라서 우리의 평판이 더럽혀질 때 그분의 이름도 진흙탕으로 함께 끌려들어 간다.” (p.28)
이어서 그는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 시간과 장소에,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p.28)
교회는 교회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교회 안 깊숙이 침투한 성공주의, 소비주의, 무한 경쟁과 물질주의의 풍조를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
고힌은 이것을 ‘우상 숭배적 풍조에 타협하여 문화의 포로가 되는 것’이라 진단한다(p.28).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말하는 동안,
정작 우리 자신이 세상의 방식에 길들여지고 변질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6. 결국, 어떤 이야기를 살아가는가
책을 덮고 나서 오랫동안 마음을 떠나지 않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살아가고 있는가?
입으로는 복음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나의 발걸음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세상이 주입하는 성공과 경쟁의 이야기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인가, 아니면 나의 욕망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삶인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설계하신 삶을 살아 내어 참으로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줄 때, 우리의 삶은 매력적인 삶이 될 것이다.” (p.224)
신앙이란 누군가에게 거창한 교리를 주입하는 것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가장 ‘인간다운 삶’을 일상 속에서 기꺼이 살아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일 예배가 끝난 뒤의 월요일은 신앙의 공백기가 아니다.
우리가 출근하는 직장, 머무는 가정, 살아가는 동네와 맺는 모든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지는 최전선이다.
기독교 신앙의 정수는 기독교에 대한 지식을 머릿속에 더 많이 쌓아두는 데 있지 않다.
내가 하나님의 거대한 이야기 안에서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 이야기에 합당한 발걸음으로 오늘을 살아내는 것.
고힌의 책은 바로 그 치열하고도 감격스러운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정말 복음을 믿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복음의 이야기를 어떤 삶으로 살아갈 것인가?
박진 목사
예수를 말하고 예수를 말하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살아가는 일하는 목회자.
크리스천 독서 모임을 이끌며, 신앙 서적 리뷰 콘텐츠 사역자로 살아가고 있다.
경기도 일산에 있는 ‘더봄 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