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서평

깨어짐의 영광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링크 퍼가기
카카오톡으로 보내기

본문

02f0e88564f97533e9e2592d459df703_1767141383_0044.jpg 

글_오인표 (IVP 간사_마케터)


 

2023,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Jeff Koons)풍선개’(Balloon Dog) 조각상이 마이애미 아트 페어에서 산산조각 났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사고였지만, 작품은 한 번의 충격으로 백 조각이 넘는 파편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 4 2천 달러(한화로 약 5,500만 원)의 가치를 지닌 작품이 산산조각으로 깨져 이리저리 흩어진 그 순간, 전시장은 정적에 잠겼다. 그런데 곧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전까지는 많은 작품 중 하나에 불과했는데, 깨지게 되자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그 파편 하나하나가 더 많은 의미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깨진 조각들은 원래 작품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렸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고로 쿤스의 풍선개작품이 799개에서 798개로 줄어, 나머지 작품의 희소성이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향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14:3). 사람들이 모두 손익과 효율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그녀는 값비싼 옥합을 단번에 깨뜨렸다. 깨진 옥합의 조각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향유는 예수님의 머리 위로 흘러내렸다. 그 순간부터낭비수치라는 말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그 깨뜨림이좋은 일이라고 하셨다( 14:6). 깨어진 옥합에서 풍겨 나온 진한 향기는 질투와 악의로 가득 찬 공간을 새롭게 채웠다. 결국 기록된 말씀 속에서 지금도 향기를 내고 있는 것은지켜진 옥합이 아니라깨진 옥합이다.


케파 셈팡기의 『공동체를 위하여 깨어지는 삶』은 이 두 장면을 정확히 하나로 잇는다. 셈팡기는 말한다. 빛 가운데 걷는 길은 결국 어둠이 숨겨 주던 나의 모습이 드러나고, 그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어딘가가 깨질 수밖에 없는이라고.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서, 함께하는 사람을 품을 수 없이 굳어버린 마음과 단단한 고집에 금이 가고, 깨어지기 시작하는 길. 그리고 그 깨짐이야말로 공동체를 살리는 시작이라고 그는 증언한다.


제프 쿤스의 조각상이 깨지고 난 뒤, 사람들은 멈춰 섰다. 파편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 향유 옥합도 마찬가지다. 옥합이 깨진 뒤에야 향기가 퍼져 나갔다. 셈팡기가 말하는빛 가운데 서는 일도 결국 같은 결이다. 우리가 깨지기 전까지 진정한 공동체는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깨지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향기가 나기 시작한다.

『공동체를 위하여 깨어지는 삶』은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다.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빛 가운데 행하고 있습니까?”
깨어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빛 가운데 걷는다는 것은 흠 없이 버티는 길이 아니라, 필요할 때 기꺼이 자신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공동체를 위해 먼저 한 발 물러서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나의 고집을 내려놓는 사람. 그 사람이 깨어진 사람이고, 빛 가운데 걷는 사람이다.


쿤스의 작품이 깨진 사건이 더 많은 이야기를 불러냈듯, 그리고 향유 옥합이 깨지는 순간 향기가 방을 채웠듯, 우리의 신앙도 깨지는 지점에서 비로소 말하기 시작한다. 온전해 보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부서지는 순간부터 드러나고, 그 자리에서 공동체가 살아난다.


그렇다면 참된 신앙의 승리는 무엇일까? 나 하나를 흠 없이 지켜 내는 데 있을까, 아니면 기꺼이 나를 깨뜨리는데 있을까? 『공동체를 위하여 깨어지는 삶』은 결국 깨뜨림이 공동체를 살린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마치 향유의 향기가 그 자리의 모든 사람에게 배어들었던 것처럼.

 


 
IVP 2025-12-31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