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라는 경이를 주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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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비’에 대한 그림책을 읽을 때였다. 비가 내리는 소리, 비가 손에 닿는 느낌, 빗물이 고인 웅덩이에서 첨벙거릴 때의 기분 등 다양한 내용이 책에 나왔다. 실제로 비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경험해 본 아이들은 비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을 잘 표현한다. 함께 책을 읽는 나도 신이 난다. 반면, ‘비 맞으면 대머리 된대요’ ‘비 오는 거 싫어요’라고만 말하는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면 안타까움이 먼저 찾아든다. 비와 함께한 소소한 일상이나 느낌, 경험이 없는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고 나누는 이야기도 뭔가 건조하다.
우리는 이것을 ‘감수성’이라고 표현한다. 어린이에게 감수성은 중요하다. 외부 자극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 느껴 보는 것이 모든 앎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삶의 소소한 일상을 헤아려 잘 느끼고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시간은 그래서 너무나 소중하다.
놀기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하나님!
『오늘을 위한 작은 기도』는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짧은 기도문 스물아홉 편이 담긴 그림책으로, 아침에 눈을 뜨고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기까지 어린이들의 평범한 하루의 일상을 살핀다. 기도문을 따라 읽다 보면 일상의 순간이 예배가 됨을 깨닫는다. 이 작은 그림책은 삶의 모든 순간, 하나님에 대한 감수성을 경험하게 한다. 창조 세계에 대한,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수성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
기도문 중 단연 아이들의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표현은 ‘놀기 좋아하는 하나님’일 것이다. 놀이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고, 놀이를 통해 기쁨과 웃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은 놀이라는 일상의 경험 속 하나님을 만나게 해 준다. 저 높고 높은 곳에 근엄하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 친구가 되어 함께 웃는 하나님, ‘나와 함께 놀고 있는 하나님’을 말이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영역, 동식물과 함께하는 자연 세계도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일상이다. 내가 부르는 노래를 하나님이 듣고 싶어 하신다는 고백은 참 의미심장하다. 오늘이라도 자녀들과 혹은 친구들과 하나님이 온 세상을 향해 어떻게 노래하고 계신지, 내가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를 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 같은지 이야기해 봐도 좋겠다. 찬송가든 동요든 노래 부르는 그 시간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그분을 예배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림을 통해 입체감이 더해지다
이 책에 담긴 그림은 파란색 단색으로만 그려진 펜화다. 그림이 독자적 이야기를 전해주기보다 기도문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2. 거울을 보며’와 ‘15. 하기 싫은 일을 하며’ 페이지에 담긴 그림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는 거울을 보며 “저는 거울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을 봅니다”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고, 나를 사랑하신다고 고백한다. 그림 작가는 허리에 손을 짚고 거울을 보는 소녀의 뒷모습을 그렸는데, 소녀가 보는 거울 속 위대한 작품은 전신이 아닌 얼굴의 일부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을 본다고 하지만 우리는 아주 일부만 볼 수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보여 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녀의 곁에 서서 기분 좋게 다리를 부비는 고양이를 통해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허리에 손을 얹고 “저도 하나님이 만드신 저를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소녀의 당당함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에서는 커다란 빨래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소년의 팔이 축 늘어져 있다. 이 일은 소년에게 고되고 힘든 일 같다. 하지만, 예수님도 일하셨으니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작은 기쁨을 찾도록 도와 달라고 소년은 간구한다. 구시렁거리면서도 자기 할 일을 하는 우직함이 느껴져 웃음이 나오는 그림이다. 무엇보다 눈 밝은 독자들은 소년이 하는 작은 집안일과 예수님의 창조와 치유 사역이 동격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나님은 일상과 분리된 특별한 사역만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느린 일상에서의 작은 행위를 예배로 받으시고, 그 시간을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신다!
‘오늘’의 경이를 발견하고 싶다면!
스물아홉 편의 기도문을 세 명의 저자가 썼다. 특별히 『오늘이라는 예배』 『밤에 드리는 기도』라는 책으로, 소소한 일상의 순간이 예배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준 티시 해리슨 워런이 참여한 것이 눈에 띈다. 짧고 함축적인 기도문에 담긴 의미 하나하나를 느껴 보고 싶다면, 티시의 이 두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가령, 이 그림책의 ‘24. 양치하며’의 기도문을 읽으면 『오늘이라는 예배』의 3장 ‘이 닦기’가 생각나는데, 그 책에서 티시는 이를 닦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행위 안에 담긴 경이와 예배의 의미를 설명한다. 그 책을 읽고 다시 이 기도문을 읽는다면 한 단어 한 단어 곱씹으며 기도하게 될 것이다.
다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처음부터 끝까지 기도문을 읽어 본다. 한 아이의 하루가 그려진다. 하루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이 주신 충만함으로 가득하다. 아이는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한다. ‘와!’ 하는 경탄의 소리와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보인다. 자유롭고 조화로운 하루를 아이가 살고 있다. 모든 순간을 하나님과 함께. 이렇게 살 수 있는 신비는 멀리 있지 않다. 특별한 순간에만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오늘’ 안에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 하나님이 주신 경이를 알아보고 반복해서 그 앞에 나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