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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격적 지식
 

[과학과 성경, 갈등인가 화해인가?] 중에서…

저자: 찰스 험멜
역자: 황영철
발행일: 1991.07.25

“인격적 지식”

최근까지만 해도, 과학자는 객관적이라는 대중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대상과 분리되어 감정을 배제한 연구자가 냉정한 논리와 관찰을 통하여 방법론적으로 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며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황이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물리 화학의 뛰어난 교수이며 과학 철학자-는 모든 지식이 인격적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했다. 인간의 모든 지식 습득은, 지식을 습득할 때 그를 자극하고 인도하는 증명되지 않는 결단의 틀(신앙 구조)안에서 이루어진다. 한 인간의 신앙 구조는 궁극적인 가정들(우주는 질서 정연하다)로부터 일산적인 확신(내일도 태양이 뜰 것이다)에 이르는 광범위한 신념들을 포함한다. 전자는 가정되어야 하고, 후자는 감각적 인식에 근거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해되지도 않고 표현되지도 않지만, 다른 모든 지식의 기초를 형성하는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이다. 형식적인 증명(확실성)이 없다는 것이, 신학이나 과학에서 갖는 믿음이 증거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궁극적인 것이든 일상적인 것이든, 믿음은 장님이 아니다. 믿음은 우리의 경험에서 흡수된 증거로부터 일어나고, 그 안에서 구체화된다. 이것의 요점은 과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연구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믿음은 지식 습득의 동기를 부여하며 그것을 통일시키는 요소라는 것이다.
나아가서 그런 앎은 단순히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마음의 기능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앎은 인간 경험의 모든 것에 부딪히는 전인격의 기능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앎의 과정은 단순히 이지적인 것뿐만 아니라 감정적•의지적•영적•신체적 차원이 일부를 구성한다. 우리의 지식은 물리적 실체에 대한 관찰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도 포함한다. 이런 면에서 과학적 지식은 지극히 인격적이다. 연구는 결코 대상과 격리되어서 감정이 배제된 것이 아니다. 폴라니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과학자는 의도를 가지고 책임 있게 열심을 품고 연구한다고 단언한다. “갑자기 과학을 향한 모든 열정을 상실하고, 대신에 그레이 하운드(개의 일종)를 키우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된 과학자는 그 순간부터 과학자 사회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한 과학자의 신앙 구조는 연구의 모든 단계에서 기능을 발휘한다. 과학적 방법과 그 가정들이 근본적으로 타당하며 질문의 여지가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는 어떤 사람도 과학을 할 수 없다. 폴라니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우리는 ‘이해를 추구할 때 갖는 믿음’(fides quaerens intellectum)이라는 말 속에서 기독 교회의 교부들에 의하여 풍자적으로 서술된 과정의 한 실례를 발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과학자는 아직 풀리지 않은 어떤 문제나 수수께끼로 인해 당황할 수 있다. 그러다가 문제는 풀릴 수 있다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연구에 착수하도록 이끈다. 그런 믿음으로 결국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 목표를 향하여 여러 달 혹은 여러 해 동안 연구에 시간을 쏟기도 한다-마치 화성의 궤도를 상대로 씨름한 케플러나, 가속의 문제 앞에서 전전긍긍했던 갈릴레오처럼.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어떤 진리의 비전은 계속적인 반성과 부가적인 증거에 의하여 점점 힘을 얻게 된다.” 폴라니는 모든 창조적 활동 분야에서 나타나는 발전 과정을 네 단계로 구분한다. 준비, 부화(incubation), 조명 그리고 확증이 그것이다. 코페르니쿠스와 뉴턴에게는 조명이 비교적 일찍 왔지만, 확증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렸다.
과학자는 과학자 집단이 결국은 연구를 통해 무엇이 참된 것인지를 밝혀 내리라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각각의 발견을 개인적인 것이지만, 그 가설의 타당성은 개인적인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자들이 관여하고 있는 집단에 의하여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