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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에서 학문으로
 

[그리스도인의 비전] 중에서…

저자: 리차드 미들톤, 브라이안 왈쉬
역자: 황영철
발행일: 1987.05.10

“세계관에서 학문으로”

하나의 세계관 혹은 모든 삶에 대한 시각이 학문 활동에서 최초로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그 학자가 이론적인 철학적 틀(framework)을 구성할 때이다. 홈즈는 말하기를 “ ‘기독교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세계관적으로(worldviewishly)’ 생각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오직 이런 방식에 의해서만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학문의 “꼭대기에” 이원론적으로 부가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학문에 대하여 “내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관, 철학, 그리고 학문의 관계는 두 가지 사실을 암시한다. 첫째로, 만약 모든 학문이 종교적이라면, 기독교적 학문만이 유별나게 종교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학문은 궁극적으로 종교적인 공약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설사 그 공약이 이성에 대한 공약이라 할지라도), 이제 참된 문제는 신앙과 학문을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다. 즉 신앙과 학문은 언제나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유일한 참된 질문은 어느 신앙이냐는 것이다. 학문의 암묵적인 종교적 성격을 의식하지 못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기독교 신앙과는 대립되는 신앙의 조망에서 학문 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으로 학문한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연구를 인도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두 번째 함축으로 연결된다.
만약 학문이 실제로, 여기서 옹호된 것과 같은 세계관-철학-학문 모델에 따라서 구성되고 있다면, 대학 연구에 있어서의 기독교적인 갱신에는 어떤 기독교 철학적인 통찰이 요구될 것이다. 그런 통찰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학문적 증거란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학생” 이 되는 것은 자기의 학과에다가 성경 구절이나 기독교 신학을 그저 적용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월터스토프는 논하기를 성경은 “우리가 어떤 이론을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를 정할 때에 참조할 수 있는 확실히 알려진 명제의 집단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지는 않는다” 라고 한다. 오히려 성경적 삶의 시각의 확실성으로부터 특정한 과학적 분석의 세부 사항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철학적 패러다임에 의하여 매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적 세계관에 민감하며 거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런 이론적인 틀을 개발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