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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팍한 이해를 뛰어넘어 코헬렛의 깊은 세계를 탐험하다(김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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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김지명

책 『특강 전도서』권지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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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 죽음, 기쁨에 대한 모놀로그




전도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특별한 강의


교회에서 전도서를 본문으로 삼은 설교를 듣게 되면 거의 어김없이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 12:1)는 구절을 사용하는 것을 본다. 설교자들은 코헬렛이 하는 모든 말을 노년의 솔로몬이 표현한 '후회'로 일축하고, "너희는 나처럼 후회하는 삶을 살지 말고 젊어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전도서의 의미를 규정하고 제한한다. 그러다 보니 교인 대부분이 전도서를 솔로몬이 "말년에 쓴 허무한 인생사에 대한 회한이 담긴 회고록"(19쪽)으로 이해할 뿐, 그 이상을 생각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성서학자의 입장에서 코헬렛이 들려주는 복잡하고 의미심장한 말들을 이렇게 단순화하고 축소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전도서는 어려운 책이기 때문에, 연구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 그 이상의 의미를 본문에서 발견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전도서는 이해를 도와줄 특별한 강의를 필요로 하는데, 이번에 출간된 권지성 박사의 <특강 전도서>(IVP)는 그 필요를 매우 만족스럽게 채워 주는 한글로 쓰인 몇 안 되는 책이다.


꼼꼼한 연구를 통해 신중하게 집필된 전도서 주석


<특강 전도서>는 전도서 본문을 다루는 12개 장과 들어가는 글, 나가는 글로 구성돼 있는 주석적 안내서다. 들어가는 글에서는 저술 연대와 시대 배경 등을 설명하며 전도서를 간략히 개관하고, 1장부터 12장까지는 전도서 내용을 12단락으로 나눠 한 단락씩 서술한다. 나가는 글에서는 전도서가 현대사회, 특히 코로나19 상황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가질 수 있는 의미와 그 밖의 사회 이슈를 언급한다. 


450쪽을 훌쩍 넘기는 분량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특강 전도서>는 꼼꼼한 연구를 통해 매우 신중하게 집필된 책이다. 전도서는 구약성경에서 비교적 분량이 적은 책이지만 다양한 면에서 연구할 것이 많은 본문이고, 막연한 선입견으로 오해하기 쉬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의 두께는 전도서에 대한 충실한 연구 과정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얄팍하게 규정된 기존의 전도서 이해를 넘어 바른 읽기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신뢰감을 준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단호하게 말한다. "전도서의 주제는 '인생의 헛됨'이 아니다"(7쪽).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의 진리는 세상과 하나님에 대한 깊고 본질적인 질문에 치열하게 응답하고 논쟁하며 발전해 왔다. '왜 의로우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에 온갖 폭력이 난무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가?' 같은 질문 말이다. 저자는 지금의 기독교가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들의 질문을 신앙의 이름으로 정죄하며 침묵시켰고, 번영주의에 물들어 성경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도서가 의심·사유·성찰·행함을 통해 다시금 기독교를 진리의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한다(8~9쪽).


모호한 전도서 본문을 정확하게 읽는 즐거움

이 책은 전도서 본문 자체를 전달하는 데 상당히 공을 들인다. 전도서의 히브리어 본문은 번역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문장 성분이 과하거나 부족해 보이는 구문이 즐비하고 의미가 모호한 단어가 많아, 직역만으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번역 성경들은 저마다의 해석과 이해를 바탕으로 나름의 번역을 내놓기 때문에 각 구절의 원문이 얼마나 복잡한지, 혹은 그 안에 어떤 함의가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번역의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하지만, 특히 전도서 번역에 있어 큰 어려움이다. 그래서 전도서는 각 번역이 주는 의미와 느낌의 차이가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모든 것이 헛되다"(전 1:2)는 전도자의 표현을 들 수 있다. '헛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 감정이겠으나, 특별히 한국 독자들에게 '헛됨'은 사자성어 '일장춘몽一場春夢'을 연상시키며 인생의 부귀영화가 한바탕 봄꿈처럼 지나가 버린다는 의미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전도자가 말한 '헛됨'이 과연 그와 같은 정서로 대변될 수 있을까? 저자는 '헛되다'의 원어 '헤벨'이 문자적으로는 '수증기', '호흡' 등으로 해석되고, 문학적 쓰임새에 따라 다양한 은유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덧없음'뿐만 아니라 '텅 빔', '기만', '허탄함', '지각 없음', '부조리함' 등 매우 다양한 의미로 다양한 맥락에서 '헤벨'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55~59쪽).

전도서는 본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저자는 이런 설명을 충분히 제공해 전도서 본문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의 설명 자체가 주는 흥미와 즐거움이 커 성경 읽는 기쁨을 더해 준다.


전문가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주석


<특강 전도서>는 전문가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주석이다. 영어·독일어·프랑스어 책들로 구성된 긴 참고 문헌 목록은 이 책이 얼마나 철저한 연구의 결과로 탄생했는지를 입증한다. 예컨대 코헬렛은 논리적으로 모순된 독백을 다수 포함하고 인생에 대한 허무와 비관도 드러내고 있는데, 경전 속에 이러한 문서가 포함돼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거나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대 근동이라는 문화적 맥락에서 볼 때 코헬렛의 발언들은 그리 독특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코헬렛의 독백을 B.C. 1000 ~ B.C. 500년경 아카디아 후기 문학 중 하나인 '비관주의 다이얼로그'와 비교해 설명한다. 이 문헌은 '주인'과 '종'의 대화로 구성돼 있는데, 종은 주인이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의 허점을 파고들며 주인의 의식의 흐름을 바꿔 놓고, 결국 대화의 방향을 죽음으로 귀결시킨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식으로 코헬렛의 모순된 독백과 아카디아 '비관주의 다이얼로그'를 비교해 보면, 기존의 교조주의적 성경 읽기에 매몰된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고, 나아가 전도서를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에서 탄생한 문학으로 이해하게 돼, 보다 자유롭게 신학적 사유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이 책에는 전도서의 주 화자와 제3의 목소리에 대한 설명이 있다. 전도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다윗의 아들이 주 화자로 소개돼 있기 때문에 대개는 '솔로몬'이 그 주인공이라고 생각된다. 즉 '왕'이 노년에 인생을 돌아보며 하는 조언이라는 관점으로 글을 대하게 된다. 하지만 전도서는 거의 시종일관 권력에 대해 비판적이다. 왕이 권력의 자리에서 자기 멋대로 행하여 그 피해가 신하와 백성들에게 가해지는 이야기를 왕의 입장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기술하기도 한다. 과연 이 글의 화자는 누구일까? 저자는 본문이 가진 다양한 특징을 연구하여 이 글이 솔로몬의 때(B.C. 1000년경)가 아닌 B.C. 3세기 어느 때에 쓰였을 가능성에 대해 논증하고, 그 시대를 자세히 설명해 코헬렛의 권력 비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저자는 우리가 종종 무심코 넘기게 되는 전도서 내 제3의 목소리를 언급한다. <특강 전도서> 12장 '편집자의 신학'은 바로 이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이 목소리를 '편집자'로 소개하고 그의 발언이 코헬렛의 발언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고 논증해, 전도서가 큰 맥락에서 대화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밝힌다. 전도서가 일방적 교리 교육을 옹호하기보다 의심·사유·성찰을 통한 새로운 신앙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전도서 본문 안에서 이미 제3의 화자가 이견을 개진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면서 종결되는 구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이 책은 확실히 전문가의 책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적어도 전도서에 대해서만큼은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흥미로운 설명 


전문가들의 글은 일반 독자에게는 지루해 보이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삽입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2절),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3절)와 같이 짝을 이루는 진술들로 유명한 전도서 3장의 전반부는 시간에 대한 묘사로 가득하다. 저자는 책 3장에 '시간들의 시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내용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이어서 4장에는 '정의에 대한 회의'라는 제목을 달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에 나온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일화를 들어 설명을 시작한다. 


이 외에도 5장에서는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를, 6장에서는 '세계 행복 보고서'를 소개하는 등 본문 설명을 위해 흥미로운 요소를 활용한다. 각 장 끝에는 '적용'을 제시하는데, 여기에서도 저자는 '판사 석궁 테러 사건'(162쪽), '2008년 세계 금융 위기'(239쪽), '친일 반민족 행위자 국립묘지 안장 현황'(321쪽) 등과 같은 사회 이슈를 언급하며, 우리 현실과 삶을 돌아보게 하는 유익한 통찰을 보여 주고 글을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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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신앙을 이해하게 돕는 도전적인 길잡이


<특강 전도서>는 오늘날 세상과 신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전도서 저자의 관점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9장 '인생의 몫'에서 저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천국에 가기를 원할까?"라는 질문으로 운을 뗀 후에 "'천국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보거나 골프나 스키 같은 스포츠, 그리고 담배나 술을 할 수 있나요?' '그런 것이 없다면 별로 가고 싶지 않아요'"라는 답변을 제시한다(325쪽). 누군가에게 인생의 목적은 먹고, 보고, 즐기는 행복에 머물러 있음을 꼬집어 이야기한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코헬렛이 말하는 인생의 목적도 '즐거움'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진정한 즐거움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것"이다(326쪽). 저자는 코헬렛이 말한 '즐거움'은 개인의 쾌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일상 속에서 공동체적 행복을 이뤄 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즐거움이기에 일상을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몫'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가는 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언급하며 세상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한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사고방식 가운데 하나는 기계적 인과응보 사상이다. 우리는 "오늘 새벽 기도에 참석하지 않았더니 하나님께서 갑작스런 비가 내리게 하셔서 길을 가던 중 정신이 번쩍 들게 하셨다"라든지, "십일조를 하지 않았더니 당장 내가 보유한 주식의 주가가 떨어져 십일조만큼 손해를 보게 하셨다"라든지, 혹은 "전도를 했더니 다시 주가가 올라 손해를 만회했다" 같이, 모든 것을 인과적으로 보고 해석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어떤 이들은 습관적으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기도의 말문을 연다. 그러나 과연 선하신 하나님이 다스린 세상의 역사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가? 인류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오히려 비극에 가깝다. 세상은 정확히 인과율을 따라 돌아가지 않는다. 선입견 없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비로소 코헬렛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권지성 박사의 <특강 전도서>는 그런 눈과 귀를 열어 준다.확인도 안 되는 억지 인과율을 만들어 내는 것을 좋은 신앙 취급하던 시대는 코로나19와 함께 저물어 가야 한다. 이 책은 코헬렛의 관점에서 오늘날 세상과 신앙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도전적인 길잡이가 될 것이다.


코헬렛의 깊은 세계로 인도하는 훌륭한 안내서

<특강 전도서>는 신학 교육을 전문적으로 받지 않은 독자들도 충분히 쉽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전도서에 대한 전문적인 글이면서도 비전문가들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지나치게 현학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문장이 명료할 뿐 아니라 흥미로운 사건과 예시를 들어 이해하기 쉽다. 또 의미의 적용에 있어서도 깊이 있는 통찰력을 보여 준다.

성서학 전문가가 쓴 글답게 전도서 이해를 위해 필요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어 신학생들에게 특히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구약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위해 참고·활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광범위한 연구·조사를 포함하고 있으며, 매우 전문적인 내용도 충실히 담고 있다. 두꺼운 책이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으나, 누구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명한 유익을 얻게 해 줄 책이다. 전도서에 대한 기존의 얄팍한 이해를 뛰어넘어, 코헬렛의 깊은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는 훌륭한 안내서다.




김지명

장로회신학대학교(M.Div)와 에머리 대학교(Th.M)에서 공부했고, 텍사스 브라이트 신학대학원(Brite Divinity School)에서 구약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센트럴 침례신학대학원(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가르쳤고, 현재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전도서를 다룬 <Reanimating Qohelet’s Contradictory Voices: Studies of Open-Ended Discourse on Wisdom in Ecclesiastes>(Brill, 2018)가 있다.




*이 글은 뉴스앤조이(2021년 4월 21일)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IVP 2021-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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