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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세계관·복음·선교를 아우르다(송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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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규

『왕의 복음』브루스 라일리 애쉬포드, 히스 A. 토마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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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를 위한 성경, 세계관, 선교



왕의 복음: 내력과 개요


성경을 이해하고자 힘쓰는 이들은 종종 문학이나 역사, 혹은 윤리나 교리의 각도에서 접근한다. 이것이 마냥 부적절하거나 무익하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성경이 표명하는 구원 메시지의 특성을 포착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느껴진다. 브루스 애쉬포드(Bruce R. Ashford)와 히스 토머스(Heath A. Thomas)는 성경이 하나의 포괄적 내러티브라는 점을 살리고자 '성경 이야기'(Biblical Story) 개념을 채택했고, 이로부터 세계관·복음·선교라는 주제를 논한다. 이 과정을 밟아 탄생한 책이 바로 왕의 복음(IVP)이다.

 

왕의 복음은 상기했듯 두 저자의 작품이다. 전반부 네 장은 성경 이야기의 구원사적 흐름을 따라 창조-타락-구속-회복을 설명한다. 5'막간'에서는 성경 이야기와 긴밀히 연관된 세 가지 개념 기독교 세계관 복음 기독교 선교를 선보인다. 후반부 네 장에서는 선교의 총체적 성격을 신학적·사회적·문화적·세계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전반부는 성경학자인 히스 토머스가 주로 작성했다. 그는 미국에서 영문학·신학을 전공했고, 예레미야애가 연구로 영국 글로스터셔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모교 오클라호마침례교대학교 구약 교수이자 총장으로 있다. 후반부는 미국 남침례교 소속 사우스이스턴침례신학교 신학과 문화 교수인 브루스 애쉬포드가 주로 맡았다. 그는 젊은 시절 몇 년간 러시아에서 살았고, 귀국 후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현재 가르치는 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전형적인 미국 침례교 계통의 복음주의자이지만 네덜란드 기원의 신칼빈주의 사상에 깊이 심취해 영향을 받았다. 미국의 정치·문화 상황에서 어떻게 공공신학을 펼칠 수 있을지가 그의 주된 관심사다.

 


북미 복음주의계의 최근 동향 


만일 왕의 복음2000년경에 쓰였다면(그렇게 되기는 힘들었겠지만), 독자들은 책 내용에 놀라면서도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성경 이야기, 세계관, 복음, 선교 등 굵직굵직한 주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러한 복합적 제시 방식이 가능했을까? 물론 일차적으로는 두 저자의 학문적 역량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몸담은 북미 복음주의 내의 추세 변화 또한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도까지 북미 복음주의 내에는 성경 이해, 세계관, 선교 등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점진적인 변화의 흐름이 있었다. 첫째, 성경의 내러티브적 성격을 심각히 받아들이게 됐다. 복음주의자들은 심지어 1990년대 중반까지도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거나 희석하는 견해들과 싸우느라 정작 성경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펼치는 일에는 별 힘을 기울이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기폭제가 된 대표적 작품이 성경은 드라마다(IVP, 원작 2004년 발간)였다. 이 책은 성경을 하나의 큰 '이야기'로 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분수령 역할을 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성경학자(크레이그 바르톨로뮤)와 선교학자(마이클 고힌)가 함께 책을 썼다는 사실이다.

 

둘째, 기독교 세계관을 지적·철학적 성격의 탐구 과제로 국한시키지 않았다. 원하든 원치 않든 기독교 세계관은 네덜란드의 지적 전통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세계관 연구 또한 대개 그런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편향된 시각이 올바른 성경 이해나 선교적 과제의 중차대성에 역기능으로 작동하자, 기독교 지도자들은 경각심을 갖게 됐다. 이런 점에서 창조·타락·구속확대개정판(IVP, 원작 2005년 발간) 후기에 실린 마이클 고힌의 "이야기와 선교 사이에서 세계관을 탐색하다"라는 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기독교 세계관이 성경의 내러티브적 성격과 선교의 중요성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이후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선교라는 주제를 성경신학적으로 정리한 작품 하나님의 선교(IVP, 원작 2006년 발간), 하나님 백성의 선교(IVP, 원작 2010년 발간)를 썼다. 그리고 제임스 스미스는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IVP, 원작 2009년 발간)를 통해 인간의 욕망·사랑이 지성·인지보다 앞선다고 주장해 기존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폭 수정을 가했다.

 

북미 복음주의권에서 일어난 위와 같은 변화로, '성경 이야기'는 복음과 선교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관까지도 포괄하는 핵심 개념으로 등장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왕의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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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복음: 특징과 강점


왕의 복음은 어떤 면에서 우리의 주목과 인정을 받아야 할까? 만일 이 책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복음주의권 신학·신앙 지형에 어떤 손실을 초래할까? 세 가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왕의 복음은 여러 성경적 주제들을 통합했다는 점에서 유례가 없는 작품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 두 저자는 성경 이야기를 바탕으로 세계관·복음·선교를 다뤘다. 이 세 가지 주제 하나하나가 매우 중대하고 본질적이라는 점이 이 책의 가치를 높인다. 한 가지 주제만 제대로 다루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듯 세 가지 주제를 솜씨 있게 한꺼번에 다뤘으니 대단한 일이다. 각 주제는 유기적으로 통합돼 성경 이야기의 장엄성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성경 이야기, 세계관, 복음, 선교 등 어떤 분야와 관련해서도 손꼽힐 만한 작품으로 각광 받을 것이다.

 

둘째, 왕의 복음은 구성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합성·체계성·일관성을 유지한다. 모든 글의 형식적 생명은 정합성·체계성·일관성 유지에 있다. 거창한 주제들이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경우에는 이러한 특성을 잃어버리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성경 이야기를 구원사적으로 개진하든, 기독교 선교의 총체적 측면을 묘사하든, 형식적 특성을 고스란히 보존한다는 데 있다.

 

정합성은 각 부분 사이에 모순이 없고 서로 잘 맞아떨어지는 특질이다. 이 책에서는 이스라엘 언약이 실상 아브라함 언약의 민족 단위적 실행임을 상기시킬 때(129), 방향이 잘못된 창조 질서는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되어야 함을 설명할 때(188) 정합성이 잘 드러난다.

 

체계성은 일정한 원리에 따라 계통적 통일을 이루는 특질이다. 이 점이 가장 잘 현시되는 주제는 언약인데, 두 저자는 창조와의 언약을 필두로 해서 새 언약에 이르기까지 언약들 사이에 '진전'이라는 원리가 관통함을 밝힌다(111). 또 하나님의 선교를 언급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선교의 사회적·문화적·세계적 측면을 아우른다고 말하는데(198), 이 역시 글의 체계성을 반영하는 진술이다.

 

일관성은 태도나 방법 따위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특질을 말한다. 두 저자는 이 책 전체에 걸쳐 성경 이야기로부터 세계관·복음·선교가 도출되고, 세계관·복음·선교는 다시금 성경 이야기로 귀결된다고 설명하는데, 이야말로 전형적인 일관성의 예시다.

 

셋째, 왕의 복음은 이질적 요소끼리의 신학적 교배(theological cross-fertilization)가 품위 있게 이뤄진, 보기 드문 책이다. 여기에서 이질적 요소라 함은, 네덜란드 신칼빈주의의 신학적 강조점과 미국 남침례교 계통의 복음주의적 특징을 의미한다. 전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문화 영역 전반에 적용해 일반 은총, 문화 명령, 영역 주권 등을 강조했다. 후자는 전형적인 복음주의자들로, 개인 경건, 지역 교회의 역할, 전도와 대위임령 등에 헌신돼 있었다. 이 두 요소는 같은 복음주의의 우산 아래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물과 기름처럼 배타적으로 겉돌곤 했다.

 

그러나 적어도 왕의 복음에서는 그렇지 않다. 두 저자 모두 남침례교 (혹은 남침례교와 연계된 조직)에 속해 있으면서도 개혁파 신학자들과의 유대를 공공히 했다. 히스 토머스의 경우에는 개혁파 학자(크레이그 바르톨로뮤)와 공동으로 신학적 해석 관련 저술을 편집했고, 브루스 애쉬포드는 신칼빈주의의 기수들(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로부터 근본적 가르침과 영감을 얻었다. 특히 애쉬포드의 글을 읽다 보면, 흡사 카이퍼가 오늘날 남침례교 현장에 나타나 공공신학 강의를 하는 것같이 느껴질 정도로 둘 사이에 사상적 친화성이 강하다.

 

이 책은 위와 같은 세 가지 면에서 독특성과 강점이 있다. 성경의 내러티브적 성격, 세계관, 복음, 선교 등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지 않은 이들까지도 이 책자를 통해 신앙적 각성을 맛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전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저서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세 마리 여우 길들이기·예배당 중심의 기독교를 탈피하라·새로 쓴 기독교, 세계, (IVP), 평신도 신학 1, 2(홍성사) 등이 있다.




IVP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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