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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질문과 고민 거세한 교회,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 얼마나 많을까(최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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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효미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김경아 지음


*IVP가 <뉴스앤조이>와 함께 진행한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서 '우수 서평'으로 선정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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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 봐. 남자 밥 먹는 걸 보면 밤에 어떤지 알 수 있어."

 

"어떻게?"

 

"밥을 게걸스럽게 먹으면 섹스도 그렇게 하지."

 

"(그러면 그렇지…) 말이 되냐?"

 

"맛을 음미하며 먹는 사람이면 밤에도 그럴 확률이 높아."


어느 날, 친구가 세상의 비기를 전수하듯 나를 가르쳤다. 내가 속한 한쪽 세계는 음으로 양으로 순결을 강조하고, 또 다른 세계는 "몇 년을 사귀고도 아직 '안 했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건데 덜컥 결혼하고 안 맞으면 어쩔래?" 하며 채근하던 시절이었다.

 

결혼할 남자 친구가 있는 스물여섯 살 내게, 성에 대한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는 "했어, 안 했어?"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랜 연애로 서로를 아주 잘 안다 자부했음에도, 유독 섹스에 있어서는 그도 나도 그저 "성과 죄를 동시에 떠올리는"(93쪽) 안타까운 청춘들이었다. 적당한 진도 이상을 고민하지 못했다.

 

그 후 15년이 흘렀다. 무수히 귓가를 스쳐 간 '섹스 썰' 중 십수 년 전의 시시덕거림이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IVP)을 읽으며 떠오른 건, 시답잖은 저 대화가 살면서 깨달은 진실의 일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성이 한 사람의 다른 부분과 똑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기적인 사람은 섹스도 이기적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매사 게걸스럽고 급한 사람이 잠자리에서만 섬세하고 진득할 가능성은 낮다. 한 사람의 성은 그가 어떻게 관계 맺고 소통하는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28쪽)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동의한다.

 

이렇게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화두로 문을 여는 책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은, 성이라는 주제로 펼칠 수 있는 가장 넓은 스펙트럼의 입문서일 것 같다. 저자는 250쪽 남짓한 본문에 성별 정체성, 혼전 성관계, 자위, 낙태, 젠더 감수성, 성 역할과 고정관념, 차별과 폭력, 성적 자기 결정권 등 광범위한 주제들을 망라했다. "섹스에 대해 의논할 수 있는 어른"(24쪽)이 되고자 공부하고 강의하고 저술했다는 저자가, 그런 어른이 되려면 얕게라도 짚지 않을 수 없는 주제들이라고, 이 책을 시작으로 더 깊이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호소하는 것도 같다.

 

정말이지, 성에 대해 쉽게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이성애를 기본 값으로 혼전 순결이면 '만고 땡'인 도그마는 폐기된 듯 보인다. 동성애를 비롯해 결론이 난 줄 알았던 많은 사안은 처음부터 다시 깊은 해석이 필요하다. 혼전 임신은 흉이 아니고 동거하는 커플도 드물지 않으며, 싱글인 친구들도 섹스 얘기를 별스럽지 않게 할 만큼 온 사회가 성에 대해 '오픈-마인디드'(Open-minded)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어느 시대보다 기상천외한 자극과 흉하고 악한 성범죄의 지뢰들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도사린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이 혼돈 속에서 크리스천인 나에게 유감인 것은 교회가 이 카오스의 바깥에서 등을 보이고 선 듯 느껴진다는 점이다. 위에서 열거한 질문이 교인들 삶에 침투하는 상황이고, 그건 곧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며 우리에게 무얼 말씀하시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교회는 습관적이고 게으른 답 이상을 고민하는가? "모르면 모른다는 것을 인정"(25쪽)하고, 함께 본질과 비본질을 가려내려는 배움의 자리가 되어 주는가? 극우건 복음주의건 이름깨나 있는 인사들의 불륜과 성추문이 안팎의 냉소를 자아내는데, 이런 사태를 다루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있는가?

 

교회 공동체가 제대로 '성을 알면 달라지는 것들' 이 얼마나 많을까. 얼마나 많은 상처에 새살이 돋고, 언뜻 무관해 보이는 뒤틀린 데들이 성해질까. 부디 많은 교회와 선교 단체 구성원이 이 책을 함께 읽기를 바란다.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고픈 예배의 소망,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도록 서로 돕는 '몸 된' 공동체의 소명이, '성'에 대한 질문과 고민을 거세한 채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함께 깨닫기 바란다.

 

그보다 앞서, 우리를 비롯한 부부들이 성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기를 바란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도 오랫동안 우리 '관계' 속의 '성'에 무지하고 무책임했다. 밤낮으로 집에 사람들이 있어 성을 향유하는 일 따위 뒷전이었던 신혼 몇 년의 영향이 길고 깊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아는 거라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성관계를 거절하면 남자들이 상처받는다"는 풍문뿐이라 하다가 잠이 들더라도 응할 뿐, 좋고 안 좋고는 그때의 운일 뿐, 서로의 몸과 마음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었다.

 

"너한테 갈 수가 없어. 네가 싫은데 싫다고 말을 못 할까 봐. 억지로 견딜까 봐."

 

호된 권태기로 이혼의 위기를 간신히 넘긴 어느 시기 남편의 말에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대체 우린 얼마나 오래 서로를 배려하느라 상처를 주었을까. 왜 진작 대화하지 않았을까. 그런 우여곡절을 지나며 우리는 많이 달라졌다. 뒤틀린 세상에서 몸과 마음이 벌거벗어도 안전한 관계로 계속 진화해 왔다면, 나이가 들어도 성관계가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성도 관계도 "평생에 걸쳐 성장하는 과정"(256쪽)이라는 것을 알겠다.

 

언제나 희망과 시련을 함께 주는 여덟 살 딸아이는, 요새 본인 동의 없이 찍히는 사진에 예민하다. 혼자 노는 모습을 몰래 찍으려 하면 "엄마 내 사진 찍었어? 나 지금 싫은데?" 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삭제한 거 맞아?" 하며 내 휴대폰을 검열하기도 한다. 남편은 "잘했어, 누구든 네가 싫은데 사진 찍을 수는 없는 거야. 싫다고 해야 해" 하고 거든다. 모자란 어미는, 결정하고 거절할 권리를 존중하는 것부터가 성교육이라면 첫 단추가 야무지게 잘 끼워진 거라는 '희망'으로 서운함의 '시련'을 달래고 있다. 말과 달리 일상이 미더운 부모가 되는 길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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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성교육부터 데이트까지, 어물쩍 넘어가지 않으려면




마지막으로, 더 많은 사람이 성을 솔직하게 다루도록 기꺼이 자신의 삶을 할애한 저자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일부 견해를 밝힐 법한 주제들도 다소 유보적으로 마무리한 장들의 행간에서, 고작(?) 이 정도 수위의 내용을 강의한 것만으로도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척박한 현실이, 저자의 마음고생이 십분 느껴졌다.

 

이 책을 마중물 삼아 우리가 각자의 이야기를 길어 올리고, 사랑과 성에 대해 서로 더욱 솔직하고 따뜻하게 대화하는 것이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지지와 응원의 표현으로 두서없이 긴 글을 보탠다.





*이 글은 뉴스앤조이(2020년 12월 2일)에 실린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IVP 20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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