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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일할 때(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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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브 볼프 『일과 성령』 한국어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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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일에 대한 신학적 탐구는 내 일생의 관심사였다. 나는 일에 관한 박사 논문 노동의 미래미래의 노동(Zukunft der ArbeitArbeit der Zukunft, 한국신학연구소)으로 학자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이 논문은 일을 연구와 고찰의 초점으로 삼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사상가인 카를 마르크스의 노동 철학을 신학적 견지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본 것이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과 성령(Work in the Spirit)이라는 제목의 일 신학에 관한 책, 바로 지금 독자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을 발표했다. 1991년 이 책이 처음 나온 이래, 인간의 일이라는 문제는 나의 많은 연구와 저술에서, 특히 광장에 선 기독교(A Public Faith), 인간의 번영(Flourishing, 이상 IVP) 같은 공공선을 다루는 책에서 계속 등장해 왔다.

 

내가 일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쏟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많은 비율을 일에 쓴다. 결과적으로 일은 노동 조건과 더불어, 우리의 인성을 형성한다. 이는 현대 경제 체제에서 더욱 사실인데, 사람들의 일터인 각 기관이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종류의 노동력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인간의 일은 인간 이외의 세계를 심오하게 바꿔 놓는다. 이는 현대성의 시작과 함께 빨라진 기술 발전의 속도가 계속해서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화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특히 사실이다. 다른 많은 것 가운데서도 지질학적으로 현재 시대를 가리키기 위해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노벨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화학자 크뤼천이 2000년 처음 제안한 용어로,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된 지구 환경 체계에 맞서 싸워야 하게 된 시대를 말한다옮긴이)라는 명칭까지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세계에 4만 마리의 사자가 있는 것에 비해 집고양이는 6억 마리가 있고, 유사하게 아프리카물소는 90만 마리인 데 비해 젖소는 15억 마리에 달한다.”) 인성 형성과 세계 형성으로 요약되는 이 두 과정이 함께, 현대 세계에서 인간의 일에 독보적 중요성을 부여한다.

 

인간의 일이 세계를 바꾸는 동력이라는 것은 카를 마르크스 노동 철학의 핵심에 있는 중요한 신념이다. 그는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의 일을 그런 방식으로 파악하고, 그가 자본주의 다음에 따라올 것이라고 예측한 사회주의에서도 여전히 그럴 것이라고 단언한다. 성경 전통에서도 일은 다른 방식이기는 하나 중심적이다. 이 책에서 내가 지적하는 것처럼, 창세기 2장의 두 번째 창조 기사에서 세상은 자연적 과정을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동산에서 일하고 돌보는인간 사이의 협력으로 존재하게 된다(2:5, 15). 바로 그런 세상, 곧 하나님과 인간의 협력 활동을 통해 존재하게 되는 세상의 창조 목표는 하나님이 거하실 장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수 있는 이유는 부분적으로, 히브리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일하고 지키다더 낫게는 섬기고 보살피다라는 표현이 성막에서 레위인이 하는 일을 묘사하기 때문이다(3:7-8; 8:6; 18:5-6). 인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전체가 땅 위에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것을 지향한다고 해석한다면(21:3), 그리고 만약 에덴동산을 그러한 목표의 원형 이미지로 본다면, 성경 전통에서도 인간의 일은 세상을 형성하는 동력이라는 결론이 따라온다. 즉 누적되는 인류의 일에 부여된 목적은 세상이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창조세계 전체 공동체의 단일한 집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맞다. 성경 전통에서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이 동산을 심으시는 창조주이시고(2:8),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이 위로부터 내려온다(21:2). 그럼에도 인간의 일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인간의 일이 없다면, 하나님과 피조물의 집으로서의 세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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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상을 형성하는 일을 추동하는 것은 더 많은 것, 더 나은 것, 또 다른 것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중독적 갈증,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많은 것에 대한 갈증에 연료를 공급하는 더 큰 수익에 대한 갈증이다. 그 결과, 인간의 일은 하나님과 피조물의 집을 만들고 유지하는 대신 세상이라는 집을 해체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는 매일 잔치를 벌이는 반면, 많은 이들은 그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조차 얻지 못한다. 조기 은퇴를 하는 소수와 달리, 나이 어린 이들을 포함한 다수는 고되고 위험하며 열악한 직장에서 노예처럼 일한다. 이 행성은 하나님의 싱그러운 창조 세계로 보전되기는커녕 조직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부분적으로 이는 우리가 수익을 극대화하도록, 그럼으로써 세상에 상품과 서비스가 차고 넘치도록 디자인된 시스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일이 지향해야 할 바른 목표가 수익 창출이 아니며 상품과 서비스 생산은 더더욱 아니라는 생각을 저버렸다. 인간 일의 바른 목표는 집을 창조하도록 돕는 것이다. 개인과 가족을 위한 가장 작은 단위의 집들뿐 아니라 시골과 도시의 공동체를 위한 집, 그럼으로써 모든 피조물을 품는 하나의 행성으로서의 집, 곧 하나님이 거하고자 하시는 성전을 만드는 일 말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인간의 일을 하나님의 집의 이미지와 연결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그러한 개념이 들어 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일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행성 전체를 하나님의 집이자 인간의 집으로 만들기 위해 오실 그날을 내다보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리스도인 일반 노동자와 사업가 모두에게 인간 일의 참된 목적을 발견하고 추구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미로슬라브 볼프

예일대 신학대학원 헨리 B. 라이트 신학 교수

예일 신앙과문화연구소 설립자 겸 소장


IVP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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