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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운 게 오히려 좋아(윤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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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웅열 목사

책 : 『소란스러운 동거』 박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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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서로의 고유함 안에는 서로의 몸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르고 모두 고귀하다."  

_ 135쪽, <소란스러운 동거>


운이 좋은 주제에

씁쓸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 사회가 장애인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듯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주도하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 때문이다. 사실 이 시위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나 유력한 정치인의 비판 발언 때문에 새삼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후로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에 관심이 생기기보다 장애인의 시위가 만들어 내는 불편함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전장연 주도의 시위가 소란스럽고 과격하여 선량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게 주된 골자로 보인다. 상황과 입장에 따라 시위에 대한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시위를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비교적 운이 좋아서 아직까지 신체 기능이 쓸 만한 이들의 다소 거만한 소리’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든 신체가 퇴화된다. 그 시기가 빨리 오거나 늦게 오거나, 예상한 시기에 오거나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오거나 할 뿐이다. 겨우 운이 좋았을 뿐인데, 자신이 신체 기능이 좋다고 으스대는 건 꼴사납다.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겪을 일이니, 어떻게 하면 서로 불편하지 않게 적응해 나가는가가 중요하다. 사실 이렇게 하려면 생각의 변화, 관점의 변화가 크게 일어나야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어떤 기회(모멘텀)가 필요하며, 그 기회는 대체로 사건이나 경험으로 이뤄지는데, 내 이야기 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나온 『소란스러운 동거』(박은영, IVP)는 그런 기회를 얻기에 제격인 책이다. 4부로 구성된 에세이집으로, 1부는 태어날 때부터 초등학교 시기, 2부는 청소년기와 대학생 시기, 3부는 졸업 후 이야기들, 4부는 비교적 최근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나도 32년째 국가 공인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고, 내가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시원하게 표현해 주는 부분도 있었다. 책 내용 중에 특히 크게 공감 가는 부분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소란스러운 동거: 가족 편

저자 박은영은 ‘소란스러운’ 자신의 이야기를 출생 순간과 15개월 무렵에 장애 판정을 받은 내용으로 시작해서 비교적 어린 시절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 나간다. 병원 치료를 다니며 겪은 힘든 이야기들, 골목에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린 이야기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공립학교를 다니며 겪은 이야기 등이다. 읽어 가면서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과도하게 무겁지도 않았고, 눈물 흘릴 정도로 과하게 격정적이지도 않았다. 장애를 극복해 나가는 “감동 포르노”를 쓰고 싶어 하지 않는 저자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게 아닌가 싶다.


초반부에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5-6장에 걸쳐 나오는 미국에 다녀온 이야기다. 저자의 부모님은 장애가 있는 자녀를 위한 보다 나은 환경과 방법이 있을까 하여 온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5장에서는 불편과 불이익을 겪는 사람에게 미국 사회 구성원 전체가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 눈에 띄고, 6장에는 부모님이 미국에서 배운 장애 극복 치료를 함께하는 일종의 분투기가 나온다. 3년간 저자는 휴학을 하고, 어머니는 휴직을 하면서 함께 운동 치료를 했다. 육체적으로도 힘든 시간이었고 외로운 시기였다. 안타깝게도 기적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저자와 특히 부모님은 혼란스럽지만 그간의 시간을 잘 마무리해야 했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유독 인상이 깊었다. 하나는 미국 상황이 부러워서다. 사회 전체가 불편을 겪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도와준다니, 너무나도 멋진 일이 아닌가! 물론 미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고, 게다가 저자 역시 미국 생활이 오래되었다면 소수 인종이자 장애가 있는 여성으로 차별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하지만, 그래도 장애인을 향한 숨겨진 혐오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한국 사회와는 너무나도 차이가 커 보였다. 또 하나는 장애인 가족의 상황에 공감이 갔기 때문이다. 치료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 보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기에 다소 무리가 되는 요구에도 수긍하는 장애인 본인. 그러나 개선되지 않기에 단념하고 장애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 그 상황 때문에 혼란스러운 순간들. 아마 여러 장애인과 그 가족들 마음에 비슷한 지문들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나와 우리 가족 역시 그런 소란스런 순간을 보냈다.




소란스러운 동거: 교회 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어 살아가는 3-4부의 이야기 중에서는 교회와 관련된 두 가지가 인상 깊었다. 하나는 14장에 나오는 연애와 성 이야기다. 저자가 말하듯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정말로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 특별한 신체 때문에 성관계, 임신과 출산 등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장애여성공감’이라는 단체를 통해 다른 장애여성들과 만나면서 새로운 인식과 고민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교회를 향해 이 고민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한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그것도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중요한 하나의 통로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감정”을 어떻게 반응하고 공감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순결” “독신의 은사”처럼 손쉬운 답변 말고 다른 반응을 기다린다는 저자의 요청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두 번째는 15장에 나오는 말 그대로 소란스러운 동거 이야기다. 저자는 “돌봄이 필요하니 독립하겠다”고 말하며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독립을 경험해야 자기를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2인 가구로, 이후에는 교회의 공동체 하우스에서 지내면서 서로 요구할 건 요구하고, 부탁할 건 부탁하는 생활을 경험했다. 특히 연장자로서 공동체 하우스에서 동생들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저자의 소란스러운 동거 이야기는 독립생활이 서로 ‘의존하는’ 생활이기도 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었다. 다른 공동체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장애여성의 독립 현장이자 돌봄의 현장이 되었다는 것이 더욱 인상 깊었다. 그러면서 교회의 가능성을 꿈꾸어 보았다.


"서로 동질적인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은

더 이상 교회일 수 없다. 

자기에게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따르고 타인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_ 157쪽, <소란스러운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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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러움을 즐겨 나가기를

『소란스러운 동거』를 읽으면서 확신이 든 부분이 있다. 출판사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저자 인터뷰 영상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 책이 기대하는 바는 “장애인을 잘 도와주자” 수준이 아니다. 시혜적으로, ‘나는 정상이니 약한 사람을 도와주고 약한 사람은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가 각자의 약하고 강한 부분을 서로 맞추고 적응하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 적응 과정은 매끈하고 순조롭지만은 않다. 그래서 소란스럽게 된다. 한국 사회든 교회든 소란스러운 걸 악(!)하게 여긴다. 그러나 적응해 가는 과정은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쉬쉬하는 게 아니라 소란스러움을 즐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잠깐 교회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장애는 다양하고, 각 장애인의 상황도 다르다. 서로 적응하기가 번거롭고 소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성령이 강림한 이후로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공유하고, 하나가 되는 공동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적어도 교회만은 서로 소란스럽게 적응해야 하는 당위성과 동력이 있다. 여전히 내가 느끼기에는 교회 내 장애인 섬김 부서는 대체로 발달 장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교회 내 장애인에 대한 기대는 기도로 장애가 ‘회복’되어 간증을 하는 은혜로운 모습이다. 부디 바라기는 『소란스러운 동거』를 통해서 장애인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장애인 당사자나 그 가족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고, 교회 공동체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장애인의 목소리를 듣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윤웅열

목사이며 부활 후 변화될 몸을 꿈꾸는 32년차 선천성 지체장애인.

IVP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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